인문학 15 Flashcards
“이슬람이 정치가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복종 | 미셸 우엘벡, 장소미 저
리디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371001172
아야톨라 호메이니*
프랑스의 소설가·미술비평가이다. 졸라의 제자로서 <바타르>(1879) 등을 쓴 후 <거꾸로(À rebours)>(1884)의 탐미주의, <저 아래로(Là-bas)>(1891)의 악마주의를 경유, 중세 가톨릭교에 심취하여 <출발(En route)>(1895), <대성당(大聖堂; La cathédrale)>(1898), <수련자(L'Oblat)>(1903) 등에 의하여 가톨릭교의 음악·건축·제식(祭式) 등의 징표(徵表)를 연구하여 20세기 초엽 혼미한 영혼을 바로잡을 길을 보여줌과 동시에 중세의 신앙과 문화를 여실히 재현하였다.</바타르>
조리스 카를 위스망스
???은 코란과 전통 이슬람 규범인 순나에 기초하여 초기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이슬람 복고주의다.
복종 | 미셸 우엘벡, 장소미 저
살라피즘
중관불교의 이제론이란?
中觀佛敎(중관불교)의 주된 문제 가운데 하나는 眞諦(진제)와 俗諦(속제)의 二諦論(이제론)이다. 진제와 속제를 어떻게 규정하고, 이들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견해가 제시되었으며, 현대에도 여전히 논쟁거리의 하나로 남아있다.
??란 色法(색법)이 있기 이전에 먼저 無(무)가 있었다 (는 뜻이다). 그러므로 有(유)는 無(무)로부터 나왔다. 즉 무는 유의 앞에 있으며, 유는 무의 뒤에 있다. 그러므로 본무라 한다.
본무
???은 불교에서 논파를 통하여 공, 연기, 무자성, 이제론 등을 강조하는 불교교리이다
중관사상
중관사상은 ‘연기의 다른 이름이 곧 공’이라고 주장한 용수에서 비롯된 중관학파의 사상을 가리킨다.
멘델스존은 유대인들이 독일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교육과 문화적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 유대인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치고, 유대교 경전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더 넓은 지식과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 그의 노력은 이후 ???? 운동으로 이어져 유대인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하스칼라
카산드라가 저주받은 이유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아폴론이 그녀의 사랑을 얻는 대가로 그녀에게 예지력을 부여한다. 카산드라는 예지력은 받아들이지만 신은 거절하고, 이에 분노한 아폴론이 그녀의 입에 침을 뱉어 그녀가 하는 말을 아무도 이해하지도 믿지도 못하게 만든다.
복종 | 미셸 우엘벡, 장소미 저
(마지막 ‘????’은 생물학자 코인의 신조어로, 종교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을 뜻한다.)
지금 다시 계몽 | 스티븐 핑커, 김한영 저
신앙신론 faitheism
19세기 프랑스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화가
윌리엄 부그로
장관이 된 즉시부터 천주교를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소교구의 사제가 교육을 담당하는게 흔한 편이었는데, ??는 허가받지 않은 종교 교육을 금지하려 하지만, 보수파의 완강한 저항을 우려한 쥘 그레비가 불인가한다. 1879년에는 세브르 여자고등사범학교[3]를 설립하고, 1880년에 여성 교육법을 통과시키고, 1881년에는 집회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1882년에 긴 법적 사투 끝에 무상, 의무적, 세속적 교육을 보장하는 법안을 인가한다. 반교권주의의 교육 정책을 실시해 가톨릭 교회의 세력 약화에 혁혁한 공을 세울 수 있었다.
쥘 페리
쥘 페리는 프랑스 식민주의의 얼굴마담이기도 했다. 1885년 7월 28일 페리의 연설이 그의 식민주의에 대한 사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는 “우월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는지, 쥘 페리(Jules Ferry)가 이른바 ‘문명화의 사명, 계몽의 의무’로 식민지를 개척해야 한다는 골자의 연설을 한 것에 대해 ‘그것은 의무 이행이 아닌 부정이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조르주 클레망소
프랑스 제54대 총리
에밀 졸라, 장 조레스, 아나톨 프랑스 등의 지식인들과 함께 드레퓌스의 결백을 위해 싸웠던 것으로도 유명하다.[4]
1917년 11월, 프랑스의 전쟁수행 능력이 거의 바닥난 상황에서 76세의 나이로 총리로 컴백. 서부전선을 페르디낭 포슈와 필리프 페탱, 조제프 조프르 등을 중심으로 재정비하고 강력한 전쟁수행 의지를 보이면서 전시 내각을 이끌었다. 쉽게 말해서 20여년 뒤인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윈스턴 처칠 비슷한 역할을 한 셈
조르주 클레망소
정치 은퇴 후 한 기자가 “이제까지 만난 정치인 가운데 최악은 누구였습니까?” 라는 질문에 “아직까지 그런 사람은 만나지 못했습니다”고 대답했는데, 기자가 정말이냐고 되묻자 “이 작자야 말로 최악이라고 생각한 순간 더 최악의 인물이 나타나더군요”
조르주 클레망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