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019 Flashcards
Exodus
Exodus 1:12 (KRV)
: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사실 세상이 신자들을 괴롭히지만 근심하는 것은 세상이에요. (!)
Exodus 1:17 (KRV)
Exodus 1:20 (KRV)
: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우리는 두려움으로 둘러싸여있어요. 미래에 대한. 물리적으로 겁박하는 어떤 두려움. 진짜 용기란,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것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분이 있다는 전제를 하는 것. (!) 바로와 스스로의 존재는 하늘과 땅의 간격처럼 커요.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려운 분, 천재의 주재자 되시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어요. 이것이 산파들의 행동동기입니다.
산파들이 상식적으로 왕의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이것은 목숨을 건 행동입니다. 이들의 신앙은 대단한 신앙이에요. 누구의 지혜보다 높습니까? 바로의 지혜보다 높은 지혜였어요. 성경에서 참된 지혜란. 협동목사님 김이석 교수님이, 잠언서에 지혜롭고 힘도 세고 부지런한 그 여인에 대해 설명하셨어요. 구약 학자답게 명쾌히 결론을 내리세요. 잠언의 잠 자는 바늘 잠. 또하나는 대나무 죽 자가 있는데 대나무 바늘 같은 말씀이다. 고대시대에는 뭘 기울 때에 대나무로 바늘을 대신해요. 옷을 꼬매고 만들어요. 잠언이라는 말의 한자적 의미는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 숭숭 구멍이 날 때, 그 잠언의 말씀으로 구멍난 영역들을 기워나가라 이런 뜻이에요. 잠언의 총 주제는 지혜입니다. 지혜의 본 뜻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이다. 산파들은 무슨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함. 바로도 절대적인 존재에요. 그러나 이 여인들의 심중에는 하나님이 더 경외해야 할 존재에요. 겁먹고 이런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함의 두려움.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게 지혜에요. (!)
: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결국 이 산파들은 뭘 입었어요? 하나님의 은혜. 지난주 야고보서 5:11 절 보았듯이 인내의 화신으로 제시된 욥을 가리켜 어떤 존재라 했어요? 복되도다. 그 복이라는 말이 은혜와 동의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미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부르짖고 목마름 있는 자체가 복인 거에요. 다 상황이 절실하다고 기도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은혜받은 심령만이 절대절명의 선택. 십자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거에요.
Exodus 1:19 (KRV)
: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바로가 알고 거짓을 담은 지혜. 생산력이 좋아서. 욥의 고난. 신앙의 한 차원을 뛰어넘습니다. 지금까지 욥은 내가 어떻게 옳고 틀리게 사느냐의 카테코리였다면 그 차원을 넘어 전에는 듣기만 하였으나 이제는 보노이다. 이 인생의 눈물겨운 환란의 인생살이 자체가 하나님 주권에 있구나. 옳고 틀리고 복받고 저주받고 가 아니라 한 꺼풀 넘어서 내인생은 하나님 주권에 있구나. (!) 물론 윤리적으로 거짓말했어요. 하나님의 뜻과 생명을 살리기 위한 거짓말이에요. 그래서 이 행동은 기생 라합과 함께 히브리서에서 칭찬받습니다. 하는 일이 옳다 인정함 얻습니다. 이 정의는 맞다 틀리다 개념과 전선자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후…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는 구나)
Exodus 1:22 (KRV)
: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산파가 못했으니까 작전을 바꿨어요. 부모들에게, 그냥 강가에서 가서 버리라. 똑같은 거죠. 나쁘다. 사탄은 죽이는 자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늘어나는 것을 사탄은 정말 참지 못하고 바로 이 때에 모세가 태어납니다.
Exodus 2:3 (KRV)
: 3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갈대 상자를 만들어요. 거기에 애기를 담아요. 이게 아이를 보호해주는데 갈대 상자. 그냥 버리면 죽잖아. 모세 어머니의 지혜를 발견합니다. 갈대 상자가 우리에게 뭘까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이것은 노아의 방주와 같아요. 노아의 방주는 예수님의 말씀, 구원의 방주. 예수님의 방주는 말씀이죠. 이렇게 다 연결되는 거에요. (?!)
우리가 사람을 키울 때 같은 것을 경험해요. 이 사람을 데리고 있고 싶은데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때가 있어요. 세상으로 보낼 수 밖에 없어. 그 때 갈대상자를 준비해서 사람을 그 안에 넣어서 보내는 거에요. 그러면 그 갈대 상자가 보호해줘요. 성경공부 우리가 하고 있는데, 지금 갈대상자를 만들고 있어요. 구멍나지 않게 물이 들어오지 않게 잘 만들어야해요. (!좋은 동기)
세상의 동기들이 우리 안에 들어오지 않게, 꼼꼼하게 갈대상자를 만드는 거에요. 우리가 성경공부하는데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때가 올 수 있어요. 그 전에 열심히 갈대상자 열심히 만드는 거에요. 이 하나님 말씀이 여러분 지켜줄 거에요. 그런데 빨리 빨리만들어야돼. 다 못만들고 반만 만들면 안되요. 갈대상자. 아름다운 말입니다. 이것 만들어주고 있는 거에요.
나일 강 강가에 두었대요. 바로의 딸 공주가 목욕하러 밖에 나왔대요. 공주가 그 갈대 상자를 본 거에요. 시녀들에게 그것 가져오라고. 상자를 여니 애기가 막 울었대요. 딱 그걸 본 순간, 불쌍한 마음이 든 거야.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알았죠. 근데 하나님께서 공주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이야. 구해줘야겠다. 이런 마음. 정말 구원을 받은 거죠.
옆에서 누가 봤냐. 모세의 누이가 봤다는 거에요. 계속 쫓아갔어요. 이것도 참 이 누이도 훌륭하죠. 그 때 타이밍이 딱 맞게 가서, 애한테 젖먹일 유모를 데려올 까요? 그래 그래라. 친엄마를 얼른 데려와요. 공주가, 얘한테 젖을 먹여라. 돈줄게. 그래서 먹였어요.
Exodus 2:10 (KRV)
: 10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이것도 정말 미스테리 하죠. 강에서 주운 애기를 아들로 삼을 필요는 꼭 없는 거죠. 정말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이죠. 이 바로의 공주의 마음을 바꾸어서 자기 아들로 삼게까지 마음을 만드시니. 얼마나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어. 태풍의 눈. 태풍 안에 태풍이 없어. 다 밖에는 태풍인데 안에는 딱 없어요. 거기에서 성장하게 하신다. 이런 건 정말 하나님만 할 수 있지. 세상의 가장 안전한 곳에서. 구원자가 성장합니다.
이름이 모세인데, 물에서 건져내었다 라는 뜻이라구요. 구원. 모세는 그 이름 자체 안에 구원자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어요. 물에서 건졌다.
다른 하나는 뭐죠? 적의 단점과 장점을 아주 잘 알 수 있었을 거에요. 숟가락이 어디 놓였는지도 알 수 있었을거야. 성경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의 사람 손길에 의해서 하나님 역사가 이어지는 역설적인 사건들이 많아요. 이게 그 중에 하나에요. 하나님의 지혜는 오묘하다.
Exodus 3:1–5 (KRV)
3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너무 신기해서, 모세가, 왜 안타지? 우리 충원이는 갔을거야. 이게 뭐지. 그래서 모세도 호기심이 많아서 딱 갈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갑자기 가까이 오지마. 신발을 벗으라. 벗었어요. 왜냐하면 5절에,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야. 신발을 벗어라. 거룩이에요. 하나님 어떤 분이에요. 거룩한 분이시죠. 찬송가에 홀리 홀리 홀리. 거룩한 분이세요. 가까이 하지 말아라. 거룩한 땅이라고. 신앙에서는 정말 중요한 것이, 우리가 뭘 경험해야 해요? 거룩을 체험해야 해요. (!) 거룩을 체험할 때 우리 신앙이 자라나요. (혹 한 게아니고, 거룩의 신앙) 언제 거룩을 체험해요? 구별해야 해요. 구별하는 것. 거룩하게 무엇인가를 구별하는 거야. 옛날 사람들은 더 신앙적이었어요. 왜냐하면, 옛날 사람들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하나님 안믿어도. 옛날사람들은 저 산에서 불이 나온다봐. 그러면 신이 노하셨다. 그옆에 안가요. 요즘 사람들 같으면 사이언스 체크해야 돼. 예전에는 저기는 함부로 가면 안돼. 구별하는 것들이 잘 되어있었어요. 거룩이 보존되는 거에요. 그래서 거기에서 신앙이 성장해요. 요즘 현대사람들은 어떠냐. 그런 거룩한 영역을 다 밟아놓아서 비 신앙적이에요. 거룩한 것들을 다 깨어놓아서, 거룩한 걸 잃어버리기 때문에 사람이 고독해져요. 허무해져요. (hmm) 거룩한 것중에 거룩한 분은 하나님이시거든요. 인간이 그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안이 정말 허무해져요.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고독해지게 되는 거에요. 세속화라고 해요. 바로 거룩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를 만났을 때, 제일 처음 가르치는 게 뭐에요? 너 가까이 오지 마. 이 땅은 거룩한 땅이다. 신발을 벗어라. 첫째로, 거룩을 배우라. 너희 신발을 벗어라. 신발을 벗는 자세. 이 자세로 하나님을 만나야 해요. 일상적인 것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이 되어서, 경건한 마음으로, 그 마음을 준비하고 하나님 만나러 가야 해요. 성전갈 때 어떤 마음으로 들어갑니까, 그냥 지나가죠. 아무 생각없이. 또 시간되었구나. 이렇게 가면 안돼요. 그렇게 들어가면 하나님 못만나요. (!) 하나님이 계시지. 내가 신발을 벗는 마음으로. 이런 두려운 마음으로. 여기 하나님 계시는데, 내가 정말 새롭게, 이전의 모든 것들 다 내려놓고, 거룩한 하나님 만나는 거지. 이런 자세로갈 때 그 때 하나님 만날 수 있고 여러분이 거룩해질 수 있어요. 하나님을 거룩하게 대하면 여러분이 거룩해져요. (!) 아무렇게나 취급하면, 여러분이 그냥 낫띵이야. 하나도 안거룩해요. 먼저 모세에게 가르치세요. 거룩을 체험하라. (!) 나는 거룩하다. 네가 거룩한 자세로 나에게 와야지. 이럴 때 우리가 하나님을 진짜 만날 수 있습니다.
신발을 벗는다. 구별한다는 의미에요. 예를 들어 시간 구별할 수 있어요. 예배드린다. 9시 예배드린다. 그러면 그 9시라는 시간을 다른 시간보다 더 거룩하게 구별하는 거에요. 또 안식일이 있다. 그 날은 다른 날 보다 거룩하게 구별하는 거에요. (쉬는 날 뿐 아니라) 그렇게 시간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장소를 구별하는데 이건 교회에요. 꼭 교회가서 드리잖아요. 그럼 그 자리를 구별해요. 이렇게 구별하는 삶을 살면, 그것을 통해 우리가 거룩해져요. 내가 거룩해야지 거룩해야지 한다고 거룩해지는 게 아니라. 정말 거룩해지고 싶으면, 구별하라구요.
Exodus 2:16–17 (KRV)
: 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 아비의 양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무리에게 먹이니라
누군가를 모세가 계속 도와줘요. 17절 보시면, 목자들이, 여인네들만 우물가에 와서 짐승을 먹이니 밀어내는 거에요. 모세가 15절에 우물가에 앉아있었는데, 우물가에 일어나는 이야기가 많아요. 결혼도 합니다. 성경에서 등장하는 우물가는 상징이 생명과 희망이에요. 미래에 대한. 모세가 비록 호화로운 애굽의 문명을 떠나, 궁궐에서 쫓겨났지만, 광야생활 앞에 들어섰지만, 인간적으로 막다른 길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물가에 앉히십니다.
Acts 7:30 (KRV)
: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차매. 플레로오. 그 선이 있는데 거기에 다 찼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경영과 계획 속에 있는 시간이라는 거에요. 이 대목에서 40년, 플레로오 를 써요. (!)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하나님의 시간이 아직 안되었어요. 합당한 시간이 안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하나님의 타이밍을 깊이 기도해야 할 과제가 저희에게 주어집니다. 사람만 안달복달 할 수 있거든요.
Exodus 2:13–14 (KRV)
: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구원자로 좌절이 이르기 시작합니다. 동족으로부터 일어나요. 모세가 실제 가시 떨기가운데 부름을 받고 바로앞에 세워져서 출애굽을 했는데, 가나안 땅의 입경까지 모세를 게속 좌절케 했던 사람들이 이방인이에요 동족이에요. 동족이에요. (!) 하나님의 설명방식은 작은 일에서 큰 일로 발전한다. 우리에게도 같아요. 일상에서 늘 만날 수 있는 사소한 일들도, 어쩌면 하나님께서, 그 사소한 일속에 하나님의 경영에 대한 아이콘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요. 클릭하면 어마어마한 내용들이 담아져있듯이. 오늘 애굽사람이 동족을 친 것과 동족을 구하고자 하는 일이 좌절되요.
Exodus 3:1
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하나님의 산. 하나님의 주권적 표현. 호렙산. 이 호렙산이 무슨 뜻인가요? 폐허 라는 뜻입니다. (!) 그런데 그 폐허가 하나님의 산이에요. 아이러니가 감추어져 있어요. 우리 인생 자체가 폐허에요. 본질상 진노의 자녀. 요즘 우리에게 벌어지는 미투 운동. 죄 때문이죠. 더 핵심적 감정은 교만이에요. 내가 뭐든지 가능하다, 할 수 있다 생각하는 여성을 성의 대상으로만 보는 죄입니다. 사람이 시간 남고 돈 많으면 선한 생각 합니까 죄지을 생각합니까. (!) 네, 우리는 저절로 두면 잡초되는 인생이에요. 우리 본질은 망가진 땅, 폐허에요. (!) 그런데 수식어가, 하나님의 산 이 붙었어요.
자기 인생을 그렇게 표현해요. 모세의 인생을 반추하듯, 늘 익숙히 자주 오는 산, 자주 만나는 장소요. 이 산은 어떻게 생겨먹은 게 내 인생과 똑같냐… 그런데 그 앞에, 하나님의 산. 폐허 더미에, 뭔가 기대가 새로운 소망이 일어나고 있어요. 오늘이 그 날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산. (주여… 어떤 것이 하나님의 산이 될까요)
신앙생활이라는 게. 네, 형제님 아 그렇습니까. 이런 것만이 아니고. 또라이들과 부딪히는 일상 중. 주 무대와 사명의 어떤 것들을 그 일상에서 준비하세요. 천지 사방을 돌아봐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소중하지 않은 상황이 없어요. 하나님은, 이 천지를 창조하셨어요. 그래서 온 세상에 가득 빼곡히 하나님의 작품을 널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신학적인 표현으로 일반 은총이라고 해요. 놀랍게도, 일반 은총 자체가 하나님의 메세지와 편지라는 거에요. 시공간이라는 역사의 과정과 시간 속에 펼쳐지는 인생사가 사실은 또 하나의 하나님의 메세지가 펼쳐지는 거에요. 문제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감각이 개발되지 못했어요. 흘러지나가고 스쳐지나가도 그 속에서 감추어진 하나님의 메세지. (!) 어떻게 우리에게 소통하시는지를 봐야해요. (! 기도 꼭, 그 메세지를 찾는 그 기도 꼭 해야겠다)
Exodus 3:2
출 19:18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불이 붙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어디있습니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미드라쉬 라바, 성경은 아니나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여러 자료들을 제공하는 내용인데, “너는 이스라엘이 고난 중에 있는 거서럼 나도 고난 중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왜 거기 있어요? 오랜 세월의 절규, 비통한 역사, 고난 속에 하나님은 동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내가 너의 눈물 안에 있었고, 처절한 부르짖음 안에 있었다. 불이 갖는 상징이에요.
출 19:18
이게 나중에 히브리인들이 출애굽에서 도착했던 시내산, 호렙산입니다.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강림하세요. 산에 불이 붙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나무에 불이 붙어요. 모세는 아직 하나님 앞에 사명과 소명의 의식이 정확히 안들어와있어요. 신앙적으로 안내하시고 다루시는 중요한 방법은, 감당할 만큼만 보여주시는 거에요. 강아지 눈도 안 떴는데 산이 불 타는 거를 보여주는 기겁하고 줄행랑 쳤을 거에요. 그런데 이 메세지를 위해서 감당할 만큼만의 샘플, 계시를 보여주시는 거에요.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확대가 되고 항상 이 두 사건은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다. 점진적으로 시공간 안에서 펼쳐집니다. 내 삶의 언저리에서 툭툭 걸려오는, 아이콘 같은 사인이 있는데, 영적으로 민감할 때 그게 딱 보여요. (!) 무심히 넘길 일이 아니구나. 영적으로 둔하거나 말씀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냐, 무시해버려요.
그러던 어느날, 뻥 터졌을 때 그게 그 사인이였구나. 우리 일상의 주변에 이렇게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보게 하세요. 항상 우리는, 영적인 더듬이, 오감을 여는 행동을 해야해요. 뜯어보고, 바라보고, 씹어보고, 해야 해요. 모든 천지 만물이 그분의 말씀이에요. 지금 이 불꽃가운데 하나님의 사자가 등장하시는 암시는, 지난 400년동안 하나님의 스케쥴로 고역 안에 있을 때 어디 장기 두고 계시지 않았어요. 내가 같이 고행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울부짖음, 고난, 놀랍게도 그 속에 하나님의 사자가 등장하고, 종을 사명으로 불러내기 위해 등장하는 거에요.
Exodus 3:4-5
Exodus 12:14, 41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놀랍게도. 폐허. 호렙산에, 하나님의 산이라는 수식어로 등장하시더니, 그 땅이 거룩한 땅이 되요. 그 일상속에 익숙했던 땅이, 거룩한 땅이래요. 여러분의 삶의 현장이 거룩한 땅이라는 이야기에요. (!) 이원론적인 담벼락을 헐어내야해요. 성속이 너무 명확히 구별되요. 세상일은 하나님 일이 아니에요, 세상일이지. 선교가는 일은 하나님 일이에요. 공부도 하나님 일, 돈 버는 것도, 목적과 기준에 따라 밥벌이 또는 거룩한 하나님 일이 될 수 있어요. 믿습니까. (!)
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41 사백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땅에서 나왔은즉
오늘 모세에게, 출애굽기 3장에, 네가 선곳은 거룩한 땅이다. 너는 앞으로 내 질서와 내 명령하에, 네 인생길을 걸어가야 한다. 못박습니다. (!)
Exodus 3:7
Exodus 2:23-25
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기억의 능력자. 기억나시죠? 우리는 우리를 잊는 한이 있더라도, 육신의 부모가 자식을 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안잊으세요. 이런 주관적인 시각과 표현의 근거를 알아야 해요.
2장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24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5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부르짖어서 구원해주신 거 아니에요. 한시도 약속을 잊은 적이 없어요. 누구의 때만 기다려요, 하나님의 스케쥴만 기다려요. 우리 기도응답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시간이에요. 우리는 기도로 그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드는 것 뿐이에요. 기도의 행위는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드는 것 뿐입니다. (!) 하나님이 자신을 걸고 하신 그 약속을 기억하고 계세요. (!)
자신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그 약속의 내용, 그들을 기억하셨어요. 이제 구원하시겠다고 행동하신 가장 중요한 출발지는 그 언약이에요. 아브라함은 망가뜨렸어요. 새를 놓고 쪼갬으로 약조를 맺었죠.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언약. 너든지 나든지 약속을 깨는 자는 이렇게 죽는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깹니다. 13년간 끊어집니다. 누구를 낳았죠? 이스마엘을 낳았죠. 13년 후인 99세 때 나타나셔서 하나님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자랑하는 거에요? 아브라함과 교제를 회복하겠다 동시에 꾸지람입니다. 너 왜 나를 기다리지 않았니. 할례를 명합니다. 육체적으로 죽었다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럼으로서, 백세나 되어 죽은 몸가운데, 상징적으로 죽었어요. 무엇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생산된 아들이 이삭입니다. 약속의 자녀이지 아브라함의 자녀라 말하지 않습니다. 이스마엘은 인간의 실력으로 된 것입니다. (!) 육체의 자녀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난 자.
인간의 실패를 뚫고, 못남과 질척거림을 견디시며 하나님의 언약을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어요. 일관적이고 통일성이 있어요.
Exodus 3:8-10
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내가 내려와서…
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제 네가 가라. 하나님의 중요한 행동 모티브에요. 같이 가겠다. 임마뉴엘. 구원이 이렇게 이루어져요. 하나님의 계획속에 이루어져요. 그런데 결국 아들을 보내세요. 내가 하겠다. 그러나 네가 가라. 구원의 정확한 복사판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어려워요? 여러분의 모든 인생고락을 해결하실 능력이 있으세요. 그러나, 네가 해라. 교회를 향해서, 불우한 곤고한 이웃들. 일순간에해결 못하실 것 같아요? 하실 수 있어요. 삼일교회 네가 해라. 이게 하나님의 구원의 모티브요, 일하시는 방식이에요. 옆에 분에게, 네가 해라.
그런데 여기 비밀이 있어요. 신앙생활은 부담을 가져야 해요. 하나님이요, 제가 겪어보니, 하나님은 절대 공짜가 없어요. 느끼세요? 하나님은 공짜 없어요. 신앙 제대로 하는 사람은 부담을 가져요. 절대 날로 먹게 하지 않으세요. 날로 먹는 신앙은 체하고 탈나고 문제 생깁니다. 하나님도 뭐 이런 표현이 그렇지만, 날로 먹으시려면,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시고 응애응애 하게 하시고 십자가 지게 하세요? 짜식들이, 그냥 한꺼번에, 왜 그렇게 안하세요? 안하세요. 지은 죄 댓가를 꼭 지불하게 하시고. 일하시는 방식이에요. (!꽁짜로 정말 많이 받았는데 ㅠㅜ)
Exodus 3:11-12
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내가 누구관대. 모세의 이 표현은, 굉장히 마음 속에 내제된 보편적 인식이에요. 모세는 어떤 미몽에서 못 깨어났어요? 자기가 가진 조건이나 근거로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뒤집어 얘기하면, 아유, 제가 지금 이 나이에 무슨 성화를 보겠다고, 됐습니다. 하나님. 손에 땀 있고 의욕 있을 때 불러주셨으면 하나님도 좋고 나도 폼날 텐데, 파싹 꺼진 불인데 이 인생가지고 뭐하겠다는 겁니까.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은 네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사람끼리나 그거 비교하고 앉았지. 자기 주판 놓고 앉았지. 나는 돈도없고 빽도 없고 인물도 없고. 우리의 그 세속적인 잣대와 평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의 출사표. 내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함께 갈게. 임마뉴엘. 이 임마뉴엘이 예흐 에 임마크. 항상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과 치열한 공방전을 오랜세월 벌입니다. 전 안됩니다. 준비가 덜되었습니다. 자리만 잡으면요. 조금만 더 벌려구요. 그런데 나름 인간이 준비하는 것 관심 안가지세요. 모세처럼, 내가 누구관대. 인간에 근거나 조건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네가 누군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니가 내 백성이면, 내 아들이면되는 거지. 무슨 존재인가 난 관심없다. 넌 그냥 내 아들이야. 이런 인식차이입니다.
그들의 고통을 보고 듣고 아셨어요. 인식하셨어요. 행동하십니다. 인식하면 행동해야 해요. 어떡하냐.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들어올 때 바로 행동하십니다. 모세의 등을 미세요.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거 회의 하고 위원회 만들고 당회 열까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되는 거에요. 이 모세에게 주셨던 약속. 먹장 구름만 가득한 내 인생 언저리에 기도하는 가운데 칭송과 영광과 찬송을 홀로 받으실 하나님 앞에서 응답받고 그 하나님의 약속에 여러분의 고난의 인생이 희망과 소망으로 붙잡히는 축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Exodus 4:2 (KRV)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광야 생활 중에 들려있던 평범한 지팡이에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자기 모습 보는 것 같은. 양떼를 몰고 쫓았던 바로 그 지팡이요. 어떤 구원의 역사와 한 민족을 이끌어 낼 사명을 주시면, 패트리어트 정도나 엄청난 무기를 주신다던지 할 텐데, 겨우 이 늘 손에 40년 붙들고 있는 지팡이를 묻습니다. 그런데 이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요. 늘 40년의 일상이 평범한 나날이 없었다면 어느날 비범한 가시떨기의 불꽃의 기적도 없는거에요. 가만히 보세요. 늘, 의식하지 못했던 항상 일상속에 있던 그 일이, 그곳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다니깐요. 그 사실을 놓치지 마세요. 하나님의 일하시는 스타일이요. (!) 뭔가 새로운 것 주는 게 아니라, 늘 손에 들려있던 그 지팡이. 사인을 한 세가지를 말씀하십니다.
Exodus 4:20 (KRV)
20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사명과 소명을 붙든 후, 하나님의 지팡이로 바뀌어있어요. 아론이 모세를 4장 끝에 만나러 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만 역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아론에게도 역사하셔서 모세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아론에게도 역사하세요. 대안과 대책을 다가지고 계신분이에요.
아주 오래전에 시골에서 농사지으면 아침에, 집에 하인들이 연장도구가지고 밭으로 나가요. 종들은 자기가 다 먹을 거 싸가지고 안그래요. 주인마님, 저 산밑으로 갑니다. 오전내내 종들 갖다줄 밥을 바리바리 만들어요. 고추장에, 막딴 고추에 상추에 한 소쿠리 머리에 이고 돌쇠는 어디로 갔다고 했지.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다 공급해줍니다. 아침에 종들은 뭐만 하고 나가요, 주인 마님 저 어디로 갑니다. 보고만 하면 되요. 먹을 것 다 주인이 공급해줘요. 그렇게 살았더라구요 보니까.
하물며 인간의 삶 속에도, 종이 일을 하러 나가면 챙겨주고 대비해주는데. 선교사님들 떠날 때 걱정들 많이 하죠. 먹고 살 수 있을까. 선교비 제대로 올까. 걱정치 말라. 그건 네 소관이아니다. 보낼때 대책없이 보내지 않는다. 대안 없이 모세의 등을 미는 게 아니에요. 또 한켠에 아론을 설득하세요. 중요한 일을 해야 하니까. 그 때무슨 일 한지 모르지만 아무튼 동생 만나러 가라. 하나님이 설득하세요. 모세의 손에는 이제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있어요. 반평생 모세의 몸에 늘 쫓아다니던 지팡이요. 어떤 결과를 이루어내고 내용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보면 기적이 상식이 되는 게 아니라 상식이 기적이 되는 사람이요. 자연의 법칙도 중요한 질서에요. (!)
순종치 않으면 이 기적을 몰라요. 가나의 혼인잔치, 물떠온 하인만 알더라. 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어처구니 없었을 것 같아요. 근데 그냥 떠다줬어요. 그 기적은 누구만 겪었어요. 물떠온 하인만.
순종의 비밀이 뭔가. 첫째. 순종의 기적은 첫째. 순종하는 거 자체가 기적이요. (!) 그러면서 동시에 순종을 통해 제일 큰 기적은 하나님 경험하는 것이 제일 큰 기적이요. 순종안하면 죽었다 깨나도 그 비밀의 눈금이 그어지지 않아요. 순종 안하면 그 눈금마저 그어지지 않아요. 확실히 하나님 경험하게 되죠. (!) 안하면 두리뭉실하게,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희뿌옇게. 친밀감을 경험하지 못하죠. 세상에서도 친한게 능력 아니에요. 그 능력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즐거움으로 누릴 줄 알아야 해요.
Exodus 4:25–26 (KRV)
25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죽이려고 한 것도 할례 때문이요, 십보라가 한 것도 보니 할례가 중심 주제에요. 창세기 17장에 최초로 소개되는데. 아브라함이 자녀를 약속받음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생기지 않으니까 아내의 꼬임에 넘어가서 일을 저지르죠. 하갈에게 들어가서 생산을 하고 맙니다. 이스마엘. 86세인데 13년간 아브라함과 성경상에서는 일단 침묵하십니다. 가장 무서운 성도의 형벌은 교제가 끊어지는 것이요. 99세때 나타나셔서 첫단어가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중의적 의미에요. 다시 교제를 시작하시고 책망하십니다. 기다리지 못한 불신에 대한 지적이요. 명령한 것이 할례입니다. 종이나 남자라면 다 할례를 받으라. 생식기 끝을 잘라내는 것인데 너는 육체적으로 죽었다 이거에요. 그리고 그 죽은 몸 같은데서 이삭이 나와요. (!) 실력이 아닌 약속을 따라난 자식입니다. 땅의 약속과 하늘의 약속으로 구분 짓죠 갈라디아에서.
당신은 결국 나로 하여금 피를 보게 하는 남편이군요. 가 아니라 피로 맺어진 법적인 개념입니다. 피로 맺어진 관계. 풍파 많은 광야생활안에서 모세는 이것을 잊은 것 같아요. 그러나 인간이 조건과 행위와 실력으로 이루어질 것이아니라는 구원의 역사를 가르쳐 주시는 것 같습니다. 갖다 댄다. 우설초로 문설주에 피 뿌린다 가 정확히 동의어입니다. 결국 우리의 구원은 그분의 계획과 그분의 스케쥴로, 능력으로 함께하셔서 이루어내신다. (!) 4장에 걸친 굉장히 중요한 구원의 암시에요.
매일 매일 그런 구원의 은혜가 여러분 일상속에서 기도 안에서 일어나기 원합니다. (!)
Exodus 5:1-2 (KRV)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 서다
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2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너무 우리는 이미 이쪽에 있어서 하나님 경배해야지 하고 이 시각에서 읽지만 바로의 입장에서 보라구요. 어느날 갑자기 거지같은 사람들 둘이 와서 이게 가당한 장면이에요? 말 안되요.
출애굽기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아직 초반이지만, 단순히 출애굽기를 읽다보면 책 제목처럼 사백년동안 포로생활하던 히브리인들이 모세라는 지도자를 통해 구원받았다, 이게 전체이야기처럼 착각할 수 있어요. 그 플롯 맞습니다. 그러나, 출애굽만이 주제가 아니에요. 5장의 그 의도가 진짜 드러나는데, 혹 제가 슬쩍 힌트드린 것 기억날 것입니다. 나타냄과 드러냄이라는 말씀을 드릴 거다. 사실 출애굽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죽음과 사망에서 건져내셨다는 구원의 스토리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스토리는 온 천하에 하나님의 존재를 스스로 계시하시는 또다른 플롯을 가지고 있어요. 플롯은 스토리와는 좀 차이가 있어요. 스토리는 이야기에요. 육하원칙에 따라 이야기 전개되는 게 스토리. 플롯은 의도적인 짜임새를 이야기합니다. 출애굽기는 정확히 두가지 플롯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역사. 다른 하나는, 온 천하에 온 세상에 여호와 그분은 누구신가.
살포시 누구의 입에서 고개를 내미나요, 바로의 입에서. 여호와가 누구관대. 당연히 모르니까 엉뚱한짓 하죠. 세상은 하나님 몰라요. 이 두가지 플롯이 성경 곳곳에 있는 중요한 원리인데, 우리도, 어떤 사고가 터졌어요. 스토리는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났는데 어떻게 해결이 되어가는가,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가. 그런데 뜻밖에도 그것을 해결해 나가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드러나요. (!) 아픈 이야기를 다시 꺼내서 죄송하지만, 근래 우리 교회 겪어진 일만해도 그래요. 사건 발생했어요.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되고 매듭이 이루어져있는가. 우리가 감당했어야 할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속에서 전혀 다른 밑낮을 보고 실체를 확인하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되짚어 가는 가운데 본질의 착념하는 은혜를 또 누렸습니다. 그런 거에요.
우리가 자칫하면 일이 닥쳤을 때 어쩌지, 해결해야 하는데. 당연하죠. 어떡하지. 해결해야지 할 수밖에 없죠. 그러나 항상 두가지의 플롯을 보아야 한다는 거죠. 하나님이 그러면 이 사연을 통해서, 공동체나, 가정에, 또 개인에 주시는 메세지는 뭘까. 여기까지 들어가지 못하면 진짜 하나님의 본론을 놓치는 수가 많습니다. (!소피아 마이클 사건, 뉴스위크/ DA 사건, EPA 사건, DC, Hunt… 어떻게 해결되었나 뿐 아니라 두번째 플롯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