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019 Flashcards

Exodus

1
Q

Exodus 1:12 (KRV)

A

: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사실 세상이 신자들을 괴롭히지만 근심하는 것은 세상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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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Q

Exodus 1:17 (KRV)

Exodus 1:20 (KRV)

A

: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

우리는 두려움으로 둘러싸여있어요. 미래에 대한. 물리적으로 겁박하는 어떤 두려움. 진짜 용기란,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것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분이 있다는 전제를 하는 것. (!) 바로와 스스로의 존재는 하늘과 땅의 간격처럼 커요. 그러나 그보다 더 두려운 분, 천재의 주재자 되시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어요. 이것이 산파들의 행동동기입니다.

산파들이 상식적으로 왕의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이것은 목숨을 건 행동입니다. 이들의 신앙은 대단한 신앙이에요. 누구의 지혜보다 높습니까? 바로의 지혜보다 높은 지혜였어요. 성경에서 참된 지혜란. 협동목사님 김이석 교수님이, 잠언서에 지혜롭고 힘도 세고 부지런한 그 여인에 대해 설명하셨어요. 구약 학자답게 명쾌히 결론을 내리세요. 잠언의 잠 자는 바늘 잠. 또하나는 대나무 죽 자가 있는데 대나무 바늘 같은 말씀이다. 고대시대에는 뭘 기울 때에 대나무로 바늘을 대신해요. 옷을 꼬매고 만들어요. 잠언이라는 말의 한자적 의미는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 숭숭 구멍이 날 때, 그 잠언의 말씀으로 구멍난 영역들을 기워나가라 이런 뜻이에요. 잠언의 총 주제는 지혜입니다. 지혜의 본 뜻은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이다. 산파들은 무슨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함. 바로도 절대적인 존재에요. 그러나 이 여인들의 심중에는 하나님이 더 경외해야 할 존재에요. 겁먹고 이런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함의 두려움.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게 지혜에요. (!)

: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결국 이 산파들은 뭘 입었어요? 하나님의 은혜. 지난주 야고보서 5:11 절 보았듯이 인내의 화신으로 제시된 욥을 가리켜 어떤 존재라 했어요? 복되도다. 그 복이라는 말이 은혜와 동의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미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부르짖고 목마름 있는 자체가 복인 거에요. 다 상황이 절실하다고 기도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은혜받은 심령만이 절대절명의 선택. 십자가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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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Q

Exodus 1:19 (KRV)

A

: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바로가 알고 거짓을 담은 지혜. 생산력이 좋아서. 욥의 고난. 신앙의 한 차원을 뛰어넘습니다. 지금까지 욥은 내가 어떻게 옳고 틀리게 사느냐의 카테코리였다면 그 차원을 넘어 전에는 듣기만 하였으나 이제는 보노이다. 이 인생의 눈물겨운 환란의 인생살이 자체가 하나님 주권에 있구나. 옳고 틀리고 복받고 저주받고 가 아니라 한 꺼풀 넘어서 내인생은 하나님 주권에 있구나. (!) 물론 윤리적으로 거짓말했어요. 하나님의 뜻과 생명을 살리기 위한 거짓말이에요. 그래서 이 행동은 기생 라합과 함께 히브리서에서 칭찬받습니다. 하는 일이 옳다 인정함 얻습니다. 이 정의는 맞다 틀리다 개념과 전선자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후…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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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Q

Exodus 1:22 (KRV)

A

: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 모든 신민에게 명하여 가로되 남자가 나거든 너희는 그를 하수에 던지고 여자여든 살리라 하였더라

산파가 못했으니까 작전을 바꿨어요. 부모들에게, 그냥 강가에서 가서 버리라. 똑같은 거죠. 나쁘다. 사탄은 죽이는 자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늘어나는 것을 사탄은 정말 참지 못하고 바로 이 때에 모세가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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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Q

Exodus 2:3 (KRV)

A

: 3 더 숨길 수 없이 되매 그를 위하여 갈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이를 거기 담아 하숫가 갈대 사이에 두고

갈대 상자를 만들어요. 거기에 애기를 담아요. 이게 아이를 보호해주는데 갈대 상자. 그냥 버리면 죽잖아. 모세 어머니의 지혜를 발견합니다. 갈대 상자가 우리에게 뭘까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이것은 노아의 방주와 같아요. 노아의 방주는 예수님의 말씀, 구원의 방주. 예수님의 방주는 말씀이죠. 이렇게 다 연결되는 거에요. (?!)

우리가 사람을 키울 때 같은 것을 경험해요. 이 사람을 데리고 있고 싶은데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때가 있어요. 세상으로 보낼 수 밖에 없어. 그 때 갈대상자를 준비해서 사람을 그 안에 넣어서 보내는 거에요. 그러면 그 갈대 상자가 보호해줘요. 성경공부 우리가 하고 있는데, 지금 갈대상자를 만들고 있어요. 구멍나지 않게 물이 들어오지 않게 잘 만들어야해요. (!좋은 동기)

세상의 동기들이 우리 안에 들어오지 않게, 꼼꼼하게 갈대상자를 만드는 거에요. 우리가 성경공부하는데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때가 올 수 있어요. 그 전에 열심히 갈대상자 열심히 만드는 거에요. 이 하나님 말씀이 여러분 지켜줄 거에요. 그런데 빨리 빨리만들어야돼. 다 못만들고 반만 만들면 안되요. 갈대상자. 아름다운 말입니다. 이것 만들어주고 있는 거에요.

나일 강 강가에 두었대요. 바로의 딸 공주가 목욕하러 밖에 나왔대요. 공주가 그 갈대 상자를 본 거에요. 시녀들에게 그것 가져오라고. 상자를 여니 애기가 막 울었대요. 딱 그걸 본 순간, 불쌍한 마음이 든 거야.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알았죠. 근데 하나님께서 공주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이야. 구해줘야겠다. 이런 마음. 정말 구원을 받은 거죠.

옆에서 누가 봤냐. 모세의 누이가 봤다는 거에요. 계속 쫓아갔어요. 이것도 참 이 누이도 훌륭하죠. 그 때 타이밍이 딱 맞게 가서, 애한테 젖먹일 유모를 데려올 까요? 그래 그래라. 친엄마를 얼른 데려와요. 공주가, 얘한테 젖을 먹여라. 돈줄게. 그래서 먹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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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Q

Exodus 2:10 (KRV)

A

: 10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이것도 정말 미스테리 하죠. 강에서 주운 애기를 아들로 삼을 필요는 꼭 없는 거죠. 정말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이죠. 이 바로의 공주의 마음을 바꾸어서 자기 아들로 삼게까지 마음을 만드시니. 얼마나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어. 태풍의 눈. 태풍 안에 태풍이 없어. 다 밖에는 태풍인데 안에는 딱 없어요. 거기에서 성장하게 하신다. 이런 건 정말 하나님만 할 수 있지. 세상의 가장 안전한 곳에서. 구원자가 성장합니다.

이름이 모세인데, 물에서 건져내었다 라는 뜻이라구요. 구원. 모세는 그 이름 자체 안에 구원자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어요. 물에서 건졌다.

다른 하나는 뭐죠? 적의 단점과 장점을 아주 잘 알 수 있었을 거에요. 숟가락이 어디 놓였는지도 알 수 있었을거야. 성경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의 사람 손길에 의해서 하나님 역사가 이어지는 역설적인 사건들이 많아요. 이게 그 중에 하나에요. 하나님의 지혜는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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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Q

Exodus 3:1–5 (KRV)

A

3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너무 신기해서, 모세가, 왜 안타지? 우리 충원이는 갔을거야. 이게 뭐지. 그래서 모세도 호기심이 많아서 딱 갈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갑자기 가까이 오지마. 신발을 벗으라. 벗었어요. 왜냐하면 5절에,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야. 신발을 벗어라. 거룩이에요. 하나님 어떤 분이에요. 거룩한 분이시죠. 찬송가에 홀리 홀리 홀리. 거룩한 분이세요. 가까이 하지 말아라. 거룩한 땅이라고. 신앙에서는 정말 중요한 것이, 우리가 뭘 경험해야 해요? 거룩을 체험해야 해요. (!) 거룩을 체험할 때 우리 신앙이 자라나요. (혹 한 게아니고, 거룩의 신앙) 언제 거룩을 체험해요? 구별해야 해요. 구별하는 것. 거룩하게 무엇인가를 구별하는 거야. 옛날 사람들은 더 신앙적이었어요. 왜냐하면, 옛날 사람들은 두려움이 있었어요. 하나님 안믿어도. 옛날사람들은 저 산에서 불이 나온다봐. 그러면 신이 노하셨다. 그옆에 안가요. 요즘 사람들 같으면 사이언스 체크해야 돼. 예전에는 저기는 함부로 가면 안돼. 구별하는 것들이 잘 되어있었어요. 거룩이 보존되는 거에요. 그래서 거기에서 신앙이 성장해요. 요즘 현대사람들은 어떠냐. 그런 거룩한 영역을 다 밟아놓아서 비 신앙적이에요. 거룩한 것들을 다 깨어놓아서, 거룩한 걸 잃어버리기 때문에 사람이 고독해져요. 허무해져요. (hmm) 거룩한 것중에 거룩한 분은 하나님이시거든요. 인간이 그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 안이 정말 허무해져요.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고독해지게 되는 거에요. 세속화라고 해요. 바로 거룩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를 만났을 때, 제일 처음 가르치는 게 뭐에요? 너 가까이 오지 마. 이 땅은 거룩한 땅이다. 신발을 벗어라. 첫째로, 거룩을 배우라. 너희 신발을 벗어라. 신발을 벗는 자세. 이 자세로 하나님을 만나야 해요. 일상적인 것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이 되어서, 경건한 마음으로, 그 마음을 준비하고 하나님 만나러 가야 해요. 성전갈 때 어떤 마음으로 들어갑니까, 그냥 지나가죠. 아무 생각없이. 또 시간되었구나. 이렇게 가면 안돼요. 그렇게 들어가면 하나님 못만나요. (!) 하나님이 계시지. 내가 신발을 벗는 마음으로. 이런 두려운 마음으로. 여기 하나님 계시는데, 내가 정말 새롭게, 이전의 모든 것들 다 내려놓고, 거룩한 하나님 만나는 거지. 이런 자세로갈 때 그 때 하나님 만날 수 있고 여러분이 거룩해질 수 있어요. 하나님을 거룩하게 대하면 여러분이 거룩해져요. (!) 아무렇게나 취급하면, 여러분이 그냥 낫띵이야. 하나도 안거룩해요. 먼저 모세에게 가르치세요. 거룩을 체험하라. (!) 나는 거룩하다. 네가 거룩한 자세로 나에게 와야지. 이럴 때 우리가 하나님을 진짜 만날 수 있습니다.

신발을 벗는다. 구별한다는 의미에요. 예를 들어 시간 구별할 수 있어요. 예배드린다. 9시 예배드린다. 그러면 그 9시라는 시간을 다른 시간보다 더 거룩하게 구별하는 거에요. 또 안식일이 있다. 그 날은 다른 날 보다 거룩하게 구별하는 거에요. (쉬는 날 뿐 아니라) 그렇게 시간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장소를 구별하는데 이건 교회에요. 꼭 교회가서 드리잖아요. 그럼 그 자리를 구별해요. 이렇게 구별하는 삶을 살면, 그것을 통해 우리가 거룩해져요. 내가 거룩해야지 거룩해야지 한다고 거룩해지는 게 아니라. 정말 거룩해지고 싶으면, 구별하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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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Q

Exodus 2:16–17 (KRV)

A

: 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 아비의 양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무리에게 먹이니라

누군가를 모세가 계속 도와줘요. 17절 보시면, 목자들이, 여인네들만 우물가에 와서 짐승을 먹이니 밀어내는 거에요. 모세가 15절에 우물가에 앉아있었는데, 우물가에 일어나는 이야기가 많아요. 결혼도 합니다. 성경에서 등장하는 우물가는 상징이 생명과 희망이에요. 미래에 대한. 모세가 비록 호화로운 애굽의 문명을 떠나, 궁궐에서 쫓겨났지만, 광야생활 앞에 들어섰지만, 인간적으로 막다른 길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물가에 앉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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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Q

Acts 7:30 (KRV)

A

: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차매. 플레로오. 그 선이 있는데 거기에 다 찼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경영과 계획 속에 있는 시간이라는 거에요. 이 대목에서 40년, 플레로오 를 써요. (!)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하나님의 시간이 아직 안되었어요. 합당한 시간이 안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하나님의 타이밍을 깊이 기도해야 할 과제가 저희에게 주어집니다. 사람만 안달복달 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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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Q

Exodus 2:13–14 (KRV)

A

: 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14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구원자로 좌절이 이르기 시작합니다. 동족으로부터 일어나요. 모세가 실제 가시 떨기가운데 부름을 받고 바로앞에 세워져서 출애굽을 했는데, 가나안 땅의 입경까지 모세를 게속 좌절케 했던 사람들이 이방인이에요 동족이에요. 동족이에요. (!) 하나님의 설명방식은 작은 일에서 큰 일로 발전한다. 우리에게도 같아요. 일상에서 늘 만날 수 있는 사소한 일들도, 어쩌면 하나님께서, 그 사소한 일속에 하나님의 경영에 대한 아이콘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요. 클릭하면 어마어마한 내용들이 담아져있듯이. 오늘 애굽사람이 동족을 친 것과 동족을 구하고자 하는 일이 좌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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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Q

Exodus 3:1

A

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하나님의 산. 하나님의 주권적 표현. 호렙산. 이 호렙산이 무슨 뜻인가요? 폐허 라는 뜻입니다. (!) 그런데 그 폐허가 하나님의 산이에요. 아이러니가 감추어져 있어요. 우리 인생 자체가 폐허에요. 본질상 진노의 자녀. 요즘 우리에게 벌어지는 미투 운동. 죄 때문이죠. 더 핵심적 감정은 교만이에요. 내가 뭐든지 가능하다, 할 수 있다 생각하는 여성을 성의 대상으로만 보는 죄입니다. 사람이 시간 남고 돈 많으면 선한 생각 합니까 죄지을 생각합니까. (!) 네, 우리는 저절로 두면 잡초되는 인생이에요. 우리 본질은 망가진 땅, 폐허에요. (!) 그런데 수식어가, 하나님의 산 이 붙었어요.

자기 인생을 그렇게 표현해요. 모세의 인생을 반추하듯, 늘 익숙히 자주 오는 산, 자주 만나는 장소요. 이 산은 어떻게 생겨먹은 게 내 인생과 똑같냐… 그런데 그 앞에, 하나님의 산. 폐허 더미에, 뭔가 기대가 새로운 소망이 일어나고 있어요. 오늘이 그 날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산. (주여… 어떤 것이 하나님의 산이 될까요)

신앙생활이라는 게. 네, 형제님 아 그렇습니까. 이런 것만이 아니고. 또라이들과 부딪히는 일상 중. 주 무대와 사명의 어떤 것들을 그 일상에서 준비하세요. 천지 사방을 돌아봐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소중하지 않은 상황이 없어요. 하나님은, 이 천지를 창조하셨어요. 그래서 온 세상에 가득 빼곡히 하나님의 작품을 널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신학적인 표현으로 일반 은총이라고 해요. 놀랍게도, 일반 은총 자체가 하나님의 메세지와 편지라는 거에요. 시공간이라는 역사의 과정과 시간 속에 펼쳐지는 인생사가 사실은 또 하나의 하나님의 메세지가 펼쳐지는 거에요. 문제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감각이 개발되지 못했어요. 흘러지나가고 스쳐지나가도 그 속에서 감추어진 하나님의 메세지. (!) 어떻게 우리에게 소통하시는지를 봐야해요. (! 기도 꼭, 그 메세지를 찾는 그 기도 꼭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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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Q

Exodus 3:2

출 19:18

A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불이 붙었는데 여호와의 사자가 어디있습니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미드라쉬 라바, 성경은 아니나 성경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여러 자료들을 제공하는 내용인데, “너는 이스라엘이 고난 중에 있는 거서럼 나도 고난 중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왜 거기 있어요? 오랜 세월의 절규, 비통한 역사, 고난 속에 하나님은 동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내가 너의 눈물 안에 있었고, 처절한 부르짖음 안에 있었다. 불이 갖는 상징이에요.

출 19:18

이게 나중에 히브리인들이 출애굽에서 도착했던 시내산, 호렙산입니다.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강림하세요. 산에 불이 붙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나무에 불이 붙어요. 모세는 아직 하나님 앞에 사명과 소명의 의식이 정확히 안들어와있어요. 신앙적으로 안내하시고 다루시는 중요한 방법은, 감당할 만큼만 보여주시는 거에요. 강아지 눈도 안 떴는데 산이 불 타는 거를 보여주는 기겁하고 줄행랑 쳤을 거에요. 그런데 이 메세지를 위해서 감당할 만큼만의 샘플, 계시를 보여주시는 거에요.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확대가 되고 항상 이 두 사건은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다. 점진적으로 시공간 안에서 펼쳐집니다. 내 삶의 언저리에서 툭툭 걸려오는, 아이콘 같은 사인이 있는데, 영적으로 민감할 때 그게 딱 보여요. (!) 무심히 넘길 일이 아니구나. 영적으로 둔하거나 말씀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냐, 무시해버려요.

그러던 어느날, 뻥 터졌을 때 그게 그 사인이였구나. 우리 일상의 주변에 이렇게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보게 하세요. 항상 우리는, 영적인 더듬이, 오감을 여는 행동을 해야해요. 뜯어보고, 바라보고, 씹어보고, 해야 해요. 모든 천지 만물이 그분의 말씀이에요. 지금 이 불꽃가운데 하나님의 사자가 등장하시는 암시는, 지난 400년동안 하나님의 스케쥴로 고역 안에 있을 때 어디 장기 두고 계시지 않았어요. 내가 같이 고행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울부짖음, 고난, 놀랍게도 그 속에 하나님의 사자가 등장하고, 종을 사명으로 불러내기 위해 등장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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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Q

Exodus 3:4-5

Exodus 12:14, 41

A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놀랍게도. 폐허. 호렙산에, 하나님의 산이라는 수식어로 등장하시더니, 그 땅이 거룩한 땅이 되요. 그 일상속에 익숙했던 땅이, 거룩한 땅이래요. 여러분의 삶의 현장이 거룩한 땅이라는 이야기에요. (!) 이원론적인 담벼락을 헐어내야해요. 성속이 너무 명확히 구별되요. 세상일은 하나님 일이 아니에요, 세상일이지. 선교가는 일은 하나님 일이에요. 공부도 하나님 일, 돈 버는 것도, 목적과 기준에 따라 밥벌이 또는 거룩한 하나님 일이 될 수 있어요. 믿습니까. (!)

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41 사백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땅에서 나왔은즉

오늘 모세에게, 출애굽기 3장에, 네가 선곳은 거룩한 땅이다. 너는 앞으로 내 질서와 내 명령하에, 네 인생길을 걸어가야 한다. 못박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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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Q

Exodus 3:7

Exodus 2:23-25

A

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기억의 능력자. 기억나시죠? 우리는 우리를 잊는 한이 있더라도, 육신의 부모가 자식을 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안잊으세요. 이런 주관적인 시각과 표현의 근거를 알아야 해요.

2장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24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5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부르짖어서 구원해주신 거 아니에요. 한시도 약속을 잊은 적이 없어요. 누구의 때만 기다려요, 하나님의 스케쥴만 기다려요. 우리 기도응답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시간이에요. 우리는 기도로 그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드는 것 뿐이에요. 기도의 행위는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드는 것 뿐입니다. (!) 하나님이 자신을 걸고 하신 그 약속을 기억하고 계세요. (!)

자신의 약속을 기억하시고 그 약속의 내용, 그들을 기억하셨어요. 이제 구원하시겠다고 행동하신 가장 중요한 출발지는 그 언약이에요. 아브라함은 망가뜨렸어요. 새를 놓고 쪼갬으로 약조를 맺었죠.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언약. 너든지 나든지 약속을 깨는 자는 이렇게 죽는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깹니다. 13년간 끊어집니다. 누구를 낳았죠? 이스마엘을 낳았죠. 13년 후인 99세 때 나타나셔서 하나님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자랑하는 거에요? 아브라함과 교제를 회복하겠다 동시에 꾸지람입니다. 너 왜 나를 기다리지 않았니. 할례를 명합니다. 육체적으로 죽었다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럼으로서, 백세나 되어 죽은 몸가운데, 상징적으로 죽었어요. 무엇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생산된 아들이 이삭입니다. 약속의 자녀이지 아브라함의 자녀라 말하지 않습니다. 이스마엘은 인간의 실력으로 된 것입니다. (!) 육체의 자녀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난 자.

인간의 실패를 뚫고, 못남과 질척거림을 견디시며 하나님의 언약을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어요. 일관적이고 통일성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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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3:8-10

A

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내가 내려와서…

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제 네가 가라. 하나님의 중요한 행동 모티브에요. 같이 가겠다. 임마뉴엘. 구원이 이렇게 이루어져요. 하나님의 계획속에 이루어져요. 그런데 결국 아들을 보내세요. 내가 하겠다. 그러나 네가 가라. 구원의 정확한 복사판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어려워요? 여러분의 모든 인생고락을 해결하실 능력이 있으세요. 그러나, 네가 해라. 교회를 향해서, 불우한 곤고한 이웃들. 일순간에해결 못하실 것 같아요? 하실 수 있어요. 삼일교회 네가 해라. 이게 하나님의 구원의 모티브요, 일하시는 방식이에요. 옆에 분에게, 네가 해라.

그런데 여기 비밀이 있어요. 신앙생활은 부담을 가져야 해요. 하나님이요, 제가 겪어보니, 하나님은 절대 공짜가 없어요. 느끼세요? 하나님은 공짜 없어요. 신앙 제대로 하는 사람은 부담을 가져요. 절대 날로 먹게 하지 않으세요. 날로 먹는 신앙은 체하고 탈나고 문제 생깁니다. 하나님도 뭐 이런 표현이 그렇지만, 날로 먹으시려면,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시고 응애응애 하게 하시고 십자가 지게 하세요? 짜식들이, 그냥 한꺼번에, 왜 그렇게 안하세요? 안하세요. 지은 죄 댓가를 꼭 지불하게 하시고. 일하시는 방식이에요. (!꽁짜로 정말 많이 받았는데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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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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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내가 누구관대. 모세의 이 표현은, 굉장히 마음 속에 내제된 보편적 인식이에요. 모세는 어떤 미몽에서 못 깨어났어요? 자기가 가진 조건이나 근거로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뒤집어 얘기하면, 아유, 제가 지금 이 나이에 무슨 성화를 보겠다고, 됐습니다. 하나님. 손에 땀 있고 의욕 있을 때 불러주셨으면 하나님도 좋고 나도 폼날 텐데, 파싹 꺼진 불인데 이 인생가지고 뭐하겠다는 겁니까.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은 네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다. 사람끼리나 그거 비교하고 앉았지. 자기 주판 놓고 앉았지. 나는 돈도없고 빽도 없고 인물도 없고. 우리의 그 세속적인 잣대와 평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의 출사표. 내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함께 갈게. 임마뉴엘. 이 임마뉴엘이 예흐 에 임마크. 항상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과 치열한 공방전을 오랜세월 벌입니다. 전 안됩니다. 준비가 덜되었습니다. 자리만 잡으면요. 조금만 더 벌려구요. 그런데 나름 인간이 준비하는 것 관심 안가지세요. 모세처럼, 내가 누구관대. 인간에 근거나 조건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착각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네가 누군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니가 내 백성이면, 내 아들이면되는 거지. 무슨 존재인가 난 관심없다. 넌 그냥 내 아들이야. 이런 인식차이입니다.

그들의 고통을 보고 듣고 아셨어요. 인식하셨어요. 행동하십니다. 인식하면 행동해야 해요. 어떡하냐.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인식이 들어올 때 바로 행동하십니다. 모세의 등을 미세요.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니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거 회의 하고 위원회 만들고 당회 열까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되는 거에요. 이 모세에게 주셨던 약속. 먹장 구름만 가득한 내 인생 언저리에 기도하는 가운데 칭송과 영광과 찬송을 홀로 받으실 하나님 앞에서 응답받고 그 하나님의 약속에 여러분의 고난의 인생이 희망과 소망으로 붙잡히는 축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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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4:2 (K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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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광야 생활 중에 들려있던 평범한 지팡이에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자기 모습 보는 것 같은. 양떼를 몰고 쫓았던 바로 그 지팡이요. 어떤 구원의 역사와 한 민족을 이끌어 낼 사명을 주시면, 패트리어트 정도나 엄청난 무기를 주신다던지 할 텐데, 겨우 이 늘 손에 40년 붙들고 있는 지팡이를 묻습니다. 그런데 이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요. 늘 40년의 일상이 평범한 나날이 없었다면 어느날 비범한 가시떨기의 불꽃의 기적도 없는거에요. 가만히 보세요. 늘, 의식하지 못했던 항상 일상속에 있던 그 일이, 그곳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다니깐요. 그 사실을 놓치지 마세요. 하나님의 일하시는 스타일이요. (!) 뭔가 새로운 것 주는 게 아니라, 늘 손에 들려있던 그 지팡이. 사인을 한 세가지를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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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4:20 (K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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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사명과 소명을 붙든 후, 하나님의 지팡이로 바뀌어있어요. 아론이 모세를 4장 끝에 만나러 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만 역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아론에게도 역사하셔서 모세가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아론에게도 역사하세요. 대안과 대책을 다가지고 계신분이에요.

아주 오래전에 시골에서 농사지으면 아침에, 집에 하인들이 연장도구가지고 밭으로 나가요. 종들은 자기가 다 먹을 거 싸가지고 안그래요. 주인마님, 저 산밑으로 갑니다. 오전내내 종들 갖다줄 밥을 바리바리 만들어요. 고추장에, 막딴 고추에 상추에 한 소쿠리 머리에 이고 돌쇠는 어디로 갔다고 했지.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다 공급해줍니다. 아침에 종들은 뭐만 하고 나가요, 주인 마님 저 어디로 갑니다. 보고만 하면 되요. 먹을 것 다 주인이 공급해줘요. 그렇게 살았더라구요 보니까.

하물며 인간의 삶 속에도, 종이 일을 하러 나가면 챙겨주고 대비해주는데. 선교사님들 떠날 때 걱정들 많이 하죠. 먹고 살 수 있을까. 선교비 제대로 올까. 걱정치 말라. 그건 네 소관이아니다. 보낼때 대책없이 보내지 않는다. 대안 없이 모세의 등을 미는 게 아니에요. 또 한켠에 아론을 설득하세요. 중요한 일을 해야 하니까. 그 때무슨 일 한지 모르지만 아무튼 동생 만나러 가라. 하나님이 설득하세요. 모세의 손에는 이제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있어요. 반평생 모세의 몸에 늘 쫓아다니던 지팡이요. 어떤 결과를 이루어내고 내용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보면 기적이 상식이 되는 게 아니라 상식이 기적이 되는 사람이요. 자연의 법칙도 중요한 질서에요. (!)

순종치 않으면 이 기적을 몰라요. 가나의 혼인잔치, 물떠온 하인만 알더라. 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어처구니 없었을 것 같아요. 근데 그냥 떠다줬어요. 그 기적은 누구만 겪었어요. 물떠온 하인만.

순종의 비밀이 뭔가. 첫째. 순종의 기적은 첫째. 순종하는 거 자체가 기적이요. (!) 그러면서 동시에 순종을 통해 제일 큰 기적은 하나님 경험하는 것이 제일 큰 기적이요. 순종안하면 죽었다 깨나도 그 비밀의 눈금이 그어지지 않아요. 순종 안하면 그 눈금마저 그어지지 않아요. 확실히 하나님 경험하게 되죠. (!) 안하면 두리뭉실하게,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희뿌옇게. 친밀감을 경험하지 못하죠. 세상에서도 친한게 능력 아니에요. 그 능력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즐거움으로 누릴 줄 알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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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4:25–26 (K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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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죽이려고 한 것도 할례 때문이요, 십보라가 한 것도 보니 할례가 중심 주제에요. 창세기 17장에 최초로 소개되는데. 아브라함이 자녀를 약속받음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생기지 않으니까 아내의 꼬임에 넘어가서 일을 저지르죠. 하갈에게 들어가서 생산을 하고 맙니다. 이스마엘. 86세인데 13년간 아브라함과 성경상에서는 일단 침묵하십니다. 가장 무서운 성도의 형벌은 교제가 끊어지는 것이요. 99세때 나타나셔서 첫단어가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중의적 의미에요. 다시 교제를 시작하시고 책망하십니다. 기다리지 못한 불신에 대한 지적이요. 명령한 것이 할례입니다. 종이나 남자라면 다 할례를 받으라. 생식기 끝을 잘라내는 것인데 너는 육체적으로 죽었다 이거에요. 그리고 그 죽은 몸 같은데서 이삭이 나와요. (!) 실력이 아닌 약속을 따라난 자식입니다. 땅의 약속과 하늘의 약속으로 구분 짓죠 갈라디아에서.

당신은 결국 나로 하여금 피를 보게 하는 남편이군요. 가 아니라 피로 맺어진 법적인 개념입니다. 피로 맺어진 관계. 풍파 많은 광야생활안에서 모세는 이것을 잊은 것 같아요. 그러나 인간이 조건과 행위와 실력으로 이루어질 것이아니라는 구원의 역사를 가르쳐 주시는 것 같습니다. 갖다 댄다. 우설초로 문설주에 피 뿌린다 가 정확히 동의어입니다. 결국 우리의 구원은 그분의 계획과 그분의 스케쥴로, 능력으로 함께하셔서 이루어내신다. (!) 4장에 걸친 굉장히 중요한 구원의 암시에요.

매일 매일 그런 구원의 은혜가 여러분 일상속에서 기도 안에서 일어나기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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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5:1-2 (K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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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 서다

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2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너무 우리는 이미 이쪽에 있어서 하나님 경배해야지 하고 이 시각에서 읽지만 바로의 입장에서 보라구요. 어느날 갑자기 거지같은 사람들 둘이 와서 이게 가당한 장면이에요? 말 안되요.

출애굽기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아직 초반이지만, 단순히 출애굽기를 읽다보면 책 제목처럼 사백년동안 포로생활하던 히브리인들이 모세라는 지도자를 통해 구원받았다, 이게 전체이야기처럼 착각할 수 있어요. 그 플롯 맞습니다. 그러나, 출애굽만이 주제가 아니에요. 5장의 그 의도가 진짜 드러나는데, 혹 제가 슬쩍 힌트드린 것 기억날 것입니다. 나타냄과 드러냄이라는 말씀을 드릴 거다. 사실 출애굽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죽음과 사망에서 건져내셨다는 구원의 스토리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스토리는 온 천하에 하나님의 존재를 스스로 계시하시는 또다른 플롯을 가지고 있어요. 플롯은 스토리와는 좀 차이가 있어요. 스토리는 이야기에요. 육하원칙에 따라 이야기 전개되는 게 스토리. 플롯은 의도적인 짜임새를 이야기합니다. 출애굽기는 정확히 두가지 플롯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의 역사. 다른 하나는, 온 천하에 온 세상에 여호와 그분은 누구신가.

살포시 누구의 입에서 고개를 내미나요, 바로의 입에서. 여호와가 누구관대. 당연히 모르니까 엉뚱한짓 하죠. 세상은 하나님 몰라요. 이 두가지 플롯이 성경 곳곳에 있는 중요한 원리인데, 우리도, 어떤 사고가 터졌어요. 스토리는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났는데 어떻게 해결이 되어가는가, 어떻게 해결이 되었는가. 그런데 뜻밖에도 그것을 해결해 나가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드러나요. (!) 아픈 이야기를 다시 꺼내서 죄송하지만, 근래 우리 교회 겪어진 일만해도 그래요. 사건 발생했어요. 어떤 과정을 통해 진행되고 매듭이 이루어져있는가. 우리가 감당했어야 할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속에서 전혀 다른 밑낮을 보고 실체를 확인하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되짚어 가는 가운데 본질의 착념하는 은혜를 또 누렸습니다. 그런 거에요.

우리가 자칫하면 일이 닥쳤을 때 어쩌지, 해결해야 하는데. 당연하죠. 어떡하지. 해결해야지 할 수밖에 없죠. 그러나 항상 두가지의 플롯을 보아야 한다는 거죠. 하나님이 그러면 이 사연을 통해서, 공동체나, 가정에, 또 개인에 주시는 메세지는 뭘까. 여기까지 들어가지 못하면 진짜 하나님의 본론을 놓치는 수가 많습니다. (!소피아 마이클 사건, 뉴스위크/ DA 사건, EPA 사건, DC, Hunt… 어떻게 해결되었나 뿐 아니라 두번째 플롯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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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Q

Exodus 5:15 (KRV)

Exodus 5:16–18 (KRV)

A

15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가서 바로에게 호소하여 가로되 왕은 어찌하여 종들에게 이같이 하시나이까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 애굽의 간부들일까요 아니면 이스라엘 노예중 책임자일까요. 후자입니다. 노예들 간에도 직급이 있었던 것 같아요. 벽돌 몇장 구웠는지 기록하는 기록원들. 누구한테 찾아가요. 바로에게 찾아갑니다. 이게 문제에요. 이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면 점점 무거워지는 생의 무게 앞에, 누구에게 부르짖어야 해요. 나에게 부르짖으라 내가 만나주겠고. 시편 기자는,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다. 산을 향하여. 산마다 만들어놓은 우상단지 앞에 눈을 들었어요. 산마다 굴 만들어서 그 안에서 신들을 부르며 경배했습니다. 시인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산이나 산신령이나 이런 게 아니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다. (!) 빗대어 하는 것입니다.

생의 무게가 더해질때마다, 우리는 바로를 쫓아다녀요. (!) 세상의 최고의 실력자. 그걸 좇아 다녀요. 해결이 되던가요? 16절.

16 종들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고 그들이 우리더러 벽돌을 만들라 하나이다 종들이 매를 맞으오니 이는 왕의 백성의 허물이니이다
17 바로가 가로되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자 하는도다
18 이제 가서 일하라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씨라도 너희가 벽돌은 여수히 바칠씨니라

바로에게 갔더니 노동을 감하고 안식을 주었나요? 그래도 우리는 계속 바로 좇아다녀요.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 심중에는 세상의 방식, 실력자, 믿을 만한 데 좇아다녀요. 그런데 해결 안되요. 옆에 분에게 해결 안된데. 출애굽기 주제에요. 여호와만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거에요. (!)

22
Q

Exodus 5:19–21 (KRV)

A

19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이 너희의 매일 만드는 벽돌을 조금도 감하지 못하리라 함을 듣고 화가 몸에 미친 줄 알고
20 그들이 바로를 떠나 나올 때에 모세와 아론이 길에 선 것을 만나
21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로 바로의 눈과 그 신하의 눈에 미운 물건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감찰하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일터로 캠퍼스로 출발할 때, 이야, 오늘은 어떤 하나님 모습을 만날까? 싱그러운 생기있는 마음으로 늘 설레임 속에, 살아가야 하는게 정상이에요. 하나님께 집중하면 그렇게 되는데, 세상일에 자꾸 집중하면, 오늘도 가야지. 현실이니까 이러면서. 그것도 훌륭하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매일 우리에게 조금씩 열어보이시는 하나님의 (!) 은혜를 그런 기대와 새로운 생기있는 설레임으로 매일 경험하는 겁니다.

23
Q

Exodus 6:1 (KRV)

A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 내리라

모세에게 경험시켜요. 이 하나님의 메세지를 가지고 누구에게 가요, 바로에게 갈 사람이고 백성들에게 전달할 사람이에요. 비근한 예로, 물건을 경험한 거랑, 홈 쇼핑 쇼 호스트 사회자라고 할 뻔했네, 그분들 방송을 가끔 봐요 왜냐하면 설교도 저렇게 해야하는데. 이게 어디서 차이가 나냐면요, 자기가 써본 사람은, 눈빛과 말하는 것이 달라요. 근데 좋을 거에요, 하고 하면 누가 사요. 다 벗어요, 이거 하얘진 것 봐요. 누가 경험해요, 모세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

400년 동안 대제국에서 4대를 살았어요. 하나님 누구신지 모르죠. 1부에서 한 예화. 한 친구가 미국에 유학겸 갔다가 교회를 맡게 되었는데, 마켓 하나가 우리 나라 규모와 차원이 다르죠. 들어가면 커다란 공장들어간 것 같아서. 도저히 못찾겠더래요. 스테이플스 인데, 짧은 영어로 키가 큰 흑인에게 이거 찾는데 어딨냐고. 종업원이 보통 우리나라만 해도 턱으로 가리킨다던지 손으로 가리킨다던지 하잖아요, 직접 다 가서 안내해주는데, 발로 하더래요. 이걸 어떻게 항의를 할까. 그런데 순간 머리속에 복잡한 생각. 이게 얘들의 문화인지, 나를 인종 차별하는 건지 모르겠더래요. 항의를 했을까요 못했을까요. 못했죠. 두가지 이유. 일단 영어가 짧고. 싸우려면 능통해야죠. 두번째는, 이게 인종차별인지 문화인지 몰라서 못했대요.

모르니까 쫄더라. 모르니까 위축되더라. 모르면 쫄게 됩니다. 위축되요. 담대함이 사라져요. 하나님을 모르면 마찬가지에요. 전쟁하다가 뗏목 만들어서 강을 건너요. 그 장교가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부력과 무게를 잘 계산해서 장비싣고 사람을 태워 보내는데, 두 파가 나누어졌어요. 미쳤어 다 죽이려고 하느냐. 그런데 논리적으로 경험적으로 이건 절대 가라앉지 않는다. 확신하는 사람만 태워요. 꽤 큰 강이에요. 건넜을까요? 건넜죠. 경험적으로 아는 사람이니까. 이 계산대로 이 정도무게는 버텨낼 수 있다. 타고 건너요. 경험도 없고 논리와 이론도 모르면. 강변에서 서서 욕만하다가 건너는 거 보고 벙찌게 된거에요. (!)

24
Q

Exodus 6:3 (KRV)

A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정말 여호와 이름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안불렀나요. 아브라함이 와이프를 누이동생이라 하고 들어갔는데 바로가 굉장히 혼이 났어요. 금은 보화까지 챙겨서 나왔어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는 일절 꾸중이나 야단이 없어요. 바로가 굉장히 혼났어요. 아브라함 레벨은 강아지 눈뜬 시기에요, 뭘 야단 쳐요. 그러나 신앙의 미세하나마 눈금이 하나 생겼어요. (!) 와. 계속 언젠가부터 나와 같이하시는 신이, 일단 바로보다는 센 분이구나. 눈금하나 생겼어요. (!장학금, 그 다음 비자, 그 다음 아내를 통한 새 신분.) 태권 로봇이요. 애들 인식에는 태권 로봇이 제일 세요. 그런 거에요. 사람이 죄악덩어리 연약한 지라 하나님이 훅 들어오면 감당이 안되요. 1 기가 바이트도 안되는데 테라바이트 지식을 집어넣으면 안들어가요. 죄인 용량에 맞게 조금씩 열어주세요. 오래참으사. 길게 끌고 가시죠.

왜 히브리서 11:8 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고 했죠? 가다가 무슨 일을 만날지 모르고 갔다는 거에요. (!) 3절도 마찬가지에요. 여기 알리다라는 말은, 그들이 나를 아직 겪지 못했다 말이에요. 이제 그 경험을 누구에게 체험케 한다구요, 모세에게. 히브리 백성들에게. 나아가서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존엄하심, 영광의 크기를 내보이겠다는 거에요. 이 이야기는, 앞의 모든 성경의 표현과 모순되지 않아요.

우리 인생을 두 단계로 이끌어가십니다. 첫째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아가는 과정속에 있어요, 그러나, 아직 모르는 영역이 남아있죠. 어느 장로님, 부부생활에 대해 이런 명쾌한 정의를 내리셨는데, 30년 넘게 살았는데도 잘 모르겠어요. 정답이에요. 그게 인간 끼리의 아우성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정승화라는 시귀처럼, 인간의 모든 고통 눈물은 결국, 자기 알아달라는 투정에 불과하다. (!) 부인할 수 없이 맞는 우리의 연약함이에요. 이 이야기도 그런 차원에서 흘러가요.

25
Q

Exodus 6:4–5 (KRV)

Exodus 6:6–7 (KRV)

A

4 가나안 땅 곧 그들의 우거하는 땅을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백성들은 잊었더라도. 기억의 명수. 여호와 하나님. 잊지 않으세요. 극단적인 표현까지. 어미가 젖먹이를 잊는 한이 있더라도. 이 표현이 말이 안되죠. 내가 어떻게 너희를 잊겠느냐. 결코, 눈물 고통,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잊을 수 없으세요. 매일 눈을 뜨고 아침이 밝으면 원틋 원치 않듯, 삶의 선택을 합니다. 제일 우선 적 선택이 뭡니까? (!) A 와 B 라는 회사. A 라는 형제, B 라는 형제. 갈등과 번민을 하게 됩니다. 함정에 빠져요. 어디에 유익과 이익이 될까. 그런데 그게 선택의 기준이 되서는 안되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향하신 약속과 사랑을 성실히 행하시기 때문에. A 와 B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나 택하라는 건 아니에요. 마음 속에, 이러다가, 이 결과가 위험해지면 어떡하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사랑에 대한 확고한 믿음만 있다면 A B 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뭘 택하든 하나님이 성공하신다. 우리 생애를 통해 하나님 실패 안하시죠. 이 확신 있다면. 롯과 아브라함. 척박한 땅 장막생활하고. 롯은 당연히 거부될 조건밖에 없었어요. 결국에 누가 복 받아요? 아브라함이요. 선택을 잘해서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복을 받은 거지. (!) 하나님은 이런 실전과, 히브리 노예들에게 여호와를 드러냄으로 조금씩 이들을 설득해 가시는 거에요.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7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찌라

하나님 백성 되는 게 중요해요. 애굽에 있던 가나안에 있던 중요하지 않아요. (!)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체험케 하시기 위해, 구원이라는 방식을 사용하세요. (!그렇다면 일부러 어둠과 밝음으로 인도하신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우리가 삶이 100이라면 얼마나 그 점유율이 높아져가고 있는가. 축구로 말하면. 인생주변에 염려 분노 불안 슬픔 모든 먹구름을 쫙 끼게 만들어요. 그럼 인간은, 대번, 본능적으로 어떠냐면 이거 해결해주세요. 여기에만 몰두가 되도록 되어있어요. 그래야 하나님 찾으니까. 그런데 고통에서 빼내는 게 진짜 목적이 아니라 먹장구름을 통해 하나님은 누구에게 시선을 집중시킵니까. 하나님께 시선이 가도록, 백성들이 하나님 보도록. 근데 우리는 해결에만 집중한다는 거죠. 기독교는 거기에만 머무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너머. 하나님은 어떻게 이기신다구요. 넉넉히 이기신다구요. 넉넉히. 휘페리 니카오. 앞에 전치사가 있어요. 그 너머, 승리. 이긴다는 개념은 상대적인 승패의 개념이 아니라 그것을 넘은 세계입니다.
오래 전에, 중국으로 넘어간 범죄자 하나가 있어요. 악질이에요. 무서운 죄를 지어서, 한국 경찰이 파견되고 118일만에 검거했어요. 근데 걱정해요. 이거 붙잡아도 이자식이 불까. 붙잡히자마자 술술술 모든 질문에 범죄 사실을 수월하게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이런 돌변한 태도에 수사관들이 놀랐어요. 왜 마음이 바뀌었냐. 이런 녀석이 아니잖아. 뜻밖의 얘기, 중국까지 왔던 형사 한 분이, 만나자마자 두마디, 고생했다. 몸 아픈데는 없냐? 철옹성같은 차가운 마음이 허물어진 겁니다. 고생했다. 도망다니는 거 고생이에요. 잡는 거만 고생 아니에요. 만나자마자 아주 인간적으로, 너 왜 이런 식으로 했냐, 너 잡느라고 내가 집에도 못가고. 고생했다, 몸 아픈데는 없냐. 넉넉히 이긴다는 건 이런 거에요. (!) 하나님 사랑이 흘러넘쳐서 너그러운 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처럼 빡센 하나님 아니에요. 의도적으로 야단치시겠죠, 그러나 언제나 자기 백성들에게. 야고보서 둘째시간,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는 하나님. 그 후히 는 마치 그것밖에 할일이 없는 하나님 처럼. 열렬히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계세요. 저쯤 되면 나에게 와야 하는데. 쟤 항상 타이밍을 놓친다… 모든 초점이 그 자녀에게 가 있는거에요. 지금도 기다리고 계세요. (!골프장 약, 다시 불러서 얘기하는 것)

제일 좋은 기도는, 화려한 수식어로 꾸며내는 기도가 아니에요. 실체 하나님을 눈앞에서 모세가 하나님과 뭐처럼 기도해요? 친구처럼. 상대방 말할 틈도 안주고 냅다 소리만 지르지말고, 기가막혀서 쟤 또 내 말 안듣고 가네. 부르짖는 기도 한국사람 잘해요. 그런데 듣는 기도 잘 못해요. 반쪽 알고 있어요. 다가오셔서 일러주시는 섬세한 사랑의 실체를 (!) 여러분 기도속에서 만나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26
Q

Romans 11:11 (NLT)

A

11 Did God’s people stumble and fall beyond recovery? Of course not! They were disobedient, so God made salvation available to the Gentiles. But he wanted his own people to become jealous and claim it for themselves.

This is how Paul explained. It is so that salvation can go to many others. Even to the jealousy of Jews. Paul himself persecuted the church a lot. Basis of that anger could be said of jealousy. Self-righteousness and faith by deeds and by merit make us burdened. They lost the grace. At some point, they forgot. (How can we achieve lots of deeds at the same time do not lose the trembling grace of salvation.) Sweats and hard work put debt to God and they themselves become so heavy.

Because of transgression. Failure of Jews. How many people had gone away before the commission came to me. Holy mission to me disqualified. Unthinkable. You HAVE TO BE ON GUARD. When you become arrogant and lose grace then they lose everything, calling for your own abandonment. (!! SADDEST IS, YOU DO NOT EVEN KNOW WHAT YOU ARE DOING IN ARROGANCE.) Keep your humility and grace. Do not look down on Israel as because of their stumbling you are here. Although you were wild olive tree branch, you became transplanted into the true olive tree.

By grace, there is remnant like Paul himself. While all others could not be a part of the history, by grace Paul was chosen. When we follow grace and rely on the grace, we can keep the identity as people of God. Agony toward my brothers who failed. Israelites thought that if they are Israelites then by nationality and collectively they automatically gain salvation. (Isn’t it the same way that Michael was thinking?) No matter how big body the organization may have, salvation is the personal relationship with God and in light of faith, these two should not be mixed. (!)

27
Q

Exodus 7:1–2 (KRV)

A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찌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2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할찌니라

재밌는 박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세요. 그러면 모세는 누구에게 말하게 되어있습니까? 아론이요. 세살 터울이요. 유치한 생각했지만, 세살 터울이면 엄청 싸웠겠다. 어쨌든 세살 더 많은 아론이 말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는 바로에게 가서 말해요. 바로는 세상의 대표. 왜 일정한 장단으로 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적 명령이에요.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는 아론에게, 아론은 모세의 입이 되어 세상을 향해 전해요. (!) 여기서 세상은 가던 부던, 받아들이던 거부하던 듣게 됩니다. 여기서 바로는 “완악하여” “걍팍하여” 듣지 않는 것이 반복됩니다.

28
Q

Exodus 7:4–5 (KRV)

A

4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더하여 여러 큰 재앙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찌라
5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결국 이 모든 역사의 오로지 초점은, 어떤 하나님 이야기의 얼개에요. 내 백성, 내 사랑, 내 군대. 출애굽할 때 백성 공동체를 후반, 14장에 가면, 여호와의 군대라고 표현을 합니다. 우리는 사실상 이 세상 구조에서 누구의 군대에요? 하나님의 군대에요. (!) 어떤 면에서 우리는 어둠의 권세잡은 자들과 전면전 앞에서 대치상태에있는 거에요. 군대라고 해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에 진입하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들고 막아요. 여호수아가, 너희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문제가 있죠. 항상 사고의 기준, 광야의 허비된 40년의 총체적 문제가 그 질문안에 있어요. 기준이 뭐에요. 나. 우리. 넌 우리에게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 38년 총 시내산 이르기까지 40년 허비했던 이유입니다. 삶의 중심이 나에요. 야곱처럼. 그러자 그 군대장관이 뭐라고 도리어 다른 답을 하냐면,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와의 군대는 천상의 조직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아니다. 이 가나안 땅은, 이제부터 내가 대장해야한다. 그래서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왔다. 광야의 삶을 비껴서 야단하는 것이죠. 광야에서는 너희들이 주인되어서 필요할 때만 나를 써먹었는지 모르지만 네 발의 신을 벗으라, 이제부터는 내 명령 아래 가야 한다. 가나안 땅은 거룩한 땅이다. 하나님 백성이 머무는 땅은 구별된 곳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삶의 원리에 적용되어야 합니까? 하나님께 순종하는 땅입니다. (!) 지금 정작 마지막에 열매맺고자 하는 것은 내 백성, 내 사랑, 내 군대를 내가 이끌어 낼 것이다.

29
Q

Exodus 7:6 (KRV)*** Saul, Goodness, Wake up with prayer

A

6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곧 그대로 행하였더라

신앙 생활에서 제일 중요하게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서슴없이 가치관이라고 믿어요. 그 가치관의 프레임이 중요한데, 그 용어 선택이나 단어표현들이중요하다고 봐요. 단어는 단순한 명제가 아니라 그 안에 의미를 담고 뜻을 담고 깊어지면 사상이 되요. 크리스챤의 용어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가장 헷갈리는게 선에 대해 헷갈려요. 신앙적으로 옳은 선이 무엇이냐. 오늘 명료하게 말씀드리려구요. 기독교적인 옳음은, 하나님이 하라는 게 옳은 거에요. 언제 그런 말씀. 하나님은 옳은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언제나 옳다. 이게 선의 기준이에요. 헤렘법으로 사울에게 진멸하라. 남겨두었어요. 제사지낼 때 쓰려고. 무슨생각? 착한 생각, 기특한 생각했어요. 그건 옳은 게 아니에요. 선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하라는 게 선이에요. 전 생애에 걸쳐 정말 중요한 가치로 들어와야 해요. (!)

여러분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는 인생보다는,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걸 구하고자 발견하고자 말씀듣고 기도의 자리로 매주 나오는 거죠. 고달픈 시간이지만. 금요일 황금같은 꿀 같은 이 시간에. 그 섭리앞에 눈뜨고 싶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30
Q

Exodus 8:1 (KRV)

둘째 재앙: 개구리가 올라오다

A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스펙 좋고 인물 좋은 사람들이 지천에 깔려있어도 하나님 관심은 여러분에게 있어요. 내가 지명하여 구속하여 불렀다. 이사야서. 무슨 뜻일까요? 놀라운 얘기에요. (!) 우리는 하늘에 뿌려놓은 수많은 별들 중 하나처럼 아무렇게나 세상에 던져지고 뿌려놓은 존재가 아니에요. 구속하여 지명하여 불렀다는 것은, 여러분의 하나하나 안에 창조의 위대한 목적이 설계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믿어야 되요. 제 표정을 좀 보고 믿으세요. 이 본문을 재차 반복해서 읽는데 세상말로 훅 들어오더라구요. 정말 그렇구나. 우주의 세계보다 위대한 사실을 내가 잊어먹고 사는 구나. 구속하여 지명하여 불렀다고 되어있어요. 얼마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충 취급하지 아니하시고 구체적으로 취급하시는가를 좀 느껴야해요. 모든 감각 세계를 동원해서 하나님의 구석구석 나를 움켜쥐고 함께 동행하시기 원하는 그 뜨거운 호흡과 따뜻한 손길을 강력하게 느껴야 해요. 확 거기에 눈이 열어지면, 사실 다른 것 안보여요. 거기에 올인하고 거기에 몰두하게 되어있어요. 천지는 간곳이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게 되어있어요. 언제나 하나님의 관심은. 세상으로 돌고 뒤집어진다 할지라도, 파란만장한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백성에 있어요. 세계사를 공부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헛것입니다.

왜 이 세상에 이 판을 뒤흔들고 계시지? 선교사적 구속사적 관점에서 만왕의 왕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왜 나를 신부로 택하시고 초라한 나에게 찾아와서 신랑 되시기를 그토록 열애하시는가. 다가와 들어야 합니다. 나의 백성을, 사망과 도탄에 빠진 음부 믿에서 구해내는 거에요. 내 백성을 보내라. 이것 설득하는데 하나님 참 대단하신 분이에요. 이런 표현도 참 죄송스럽지만 하나님 참 대단하세요. 능력이 많아서도 대단하시지만, 더 대단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끈적거리고 뜨거운 사랑의 인내. 이것 보면요, 아 정말 대단하시다. 어디서 저런 사랑을 경험할까. 악착같이 움켜잡으시고 목적지까지 가져다 놓으시는 집념과 끈기를 보면 아, 정말 대단하시다. 하여간 정말 대단한 분이 계세요. 탄성이 나와요. 잘은 모르고 그냥 아는 사이니까, 노래 부를 시간이네, 노래 부르자 이런 거에요. 이놈의 자식 어떻게 잘못될까봐 옷자락이라도 붙들고 다니시는 그분의 온기를 경험하면요. (!) 어떻게 표현할까요. 정말 그분을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돼요. 좋은 남자친구만 만나도 입이 간질간질하게 자랑하고 싶은데, 주님을 자랑하세요. 주님, 정말 멋진분이에요. 내 남편이 된다면, 어떻게 자랑 안하고 살아요. 삶의 전도로, 삶의 찬양으로 드러나는 거 아니겠어요? (!) 신학적인 존재와 주제보다도 더 중요한 게 하나님을 그렇게 경험하는 삶. 온기를 느끼고, 정말 내속에 들어와 계신다는 깊은 진실 앞에 대면할 때. 내 온 생애 모든 방향으로 그 분을 노래하고 자랑하지 않을 수 없어요. (!) 너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어? 말 마. 정말 생생하게. (!) 세일즈를 해도 자기가 그걸 써보고 체험한 사람의 표정은 말투가 달라요. 입이 조용필 입 같아져요. 너 말이지. 말투와 표정이 다 달라져요. 뭔지는 모르는데 뭔가 씌였구나. 이렇게 되는 거죠.

장로님들과도 대화하면서 청년들을 칭찬했어요. 여러분들이 얼마나 복받은 분들인지 몰라요.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이 명령을 끈덕지게 하시는 이유는, 이 백성들로 나를 경배케 하라. 예배는 의무라고 얘기하는데, 틀립니다. 누가 의무라고 합니까. 의무로 드려요? 잘못 알고 있어요. 예배는 특권이에요. 의무가 아니에요. 예배는, 의무가 아니다.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특권을 가지고 있으면요, 행복해져요. 세상의 라이센스 하나만으로 뻐기고 잴 것이 얼마나 많아요. 이것은 세상에서 만들어낼 수 없는, 인간이 생산해 낼 수 없는 특권이 예배자로 서는 특권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만 올 수 있는 자리에요. 예배자를 찾으신다. (!) 예배 드리고 싶다고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에요. 특권을 가진 자만, 은혜의 보좌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미국 시민권 하나만 있어도 혜택이 얼마나 많아요. (!정말?!) 부통령이 가서 직접 포로를 데려오고 전용기를 띄워요. 이면식 목사님. 캐나다 시민권. 30분 전에 알았대요. 자기 하나 데려갈려고 캐나다에서 헬기 두개를 띄웠어요. 혹 데리고 오다가 한대가 고장나면 바꿔 타기 위해서. 근데 진짜 고장났대요. 나라에서 대접해요. 영주권만 있어도 누리는 혜택이 어마어마해요.

세상에서 관심가지고 얻어내려고 하면 가질 수 있는 자격이에요. 그러나 예배는 노력해도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아니에요. 내가 너를 지명했나니. 하나님이 지명하신 특권입니다. 우리 생이 70-80년 인데. 제일 무서운 형벌은 러시아 이야기에서 나오는 무의미. 팠던 자리 또 파고 또 메꾸고. 성취도 없고 결과도 없고. 재앙이에요. 무의미. 그런데, 우리는, 예배자라는 특권을 가지고 분명한 구체적인 목적에 따라 부르시고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은 내 백성밖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 백성들을 성숙시키고 길러내기 위해 다양한 세계사적인 사정들을 펼쳐놓으십니다. 모든 인류의 역사는, 구속의, 선교의, 그리스도의 역사입니다. (!) 위축된 여러분들의 영혼에, 말씀과 기도의 날개를 달고 하나님의 보좌로 독수리의 날개침처럼 비상하는 그런 축복이 있기 원합니다.

31
Q

Exodus 8:2 (KRV)

A

2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지경을 칠찌라

하나님은, 그런 의도 때문에, 이 세상이 알아먹도록 기회를 주어가면서 그들이 철썩같이 의지하고 부와 다산의 복을 준다고 믿고 숭상하던 애굽의 여러신들을 재앙이라는 방식을 통해 단계적으로 부서뜨리고 심판을 해 나가시는 거에요. 하나님은, 이런 거 한꺼번에 능히 하실 수 있는 분이세요. 그러나 이런 방식을 택하지 않고 단계적으로 들어가요. 가장 놀라는 사람은 바로가 아니고, 모세에요. 모세는 뭐라고 했어요. 못갑니다. 안됩니다. 안갑니다. 늦었습니다. 그만합시다. 앞에서 얼마나 징징거렸어요. 모세를 기어코 등떠밀어놓고 모세를 별로 쓰지 않습니다. 아론이 거들어요. 지팡이로 역사하세요. 바로만 완고한줄 아세요? 모세도 완고한 존재입니다. 그러면서 차츰차츰 무너집니다. 깨져나가는 거에요. 어쨋든 하나님이 대단하시네. 하나님 백성 안에 눈금을 하나씩 만들어가세요. 어떨 때는, 내 인생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흉흉한 크고 작은 일들은 우리에게 심판이 아니에요. 시청각 자료와도 같은 것들을 사인으로 우리에게 흘깃 흘깃 던져주실 때 센스 있게 잘 깨달아야 해요. (!) 못 깨달으면 나중에 몰아서 덤탱이를 씌워지겠죠. 바둑에서 고단수들이 던져두는 그런 기초돌처럼. 천재 감독들이 영화 구석구석에 메세지들과 기호들을 감추어놓아요. 살인의 추억이라든지. 그 시대의 어떤 기호를 담고 있는가. 우리 눈에 자꾸 들춰 보여져야 합니다.

32
Q

Exodus 12:1–2 (KRV)** Reflecting the Past and Now

유월절

A

1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지금까지는 히브리 노예들이 어느 시간표로 맞게 살아야 했을까요. 애굽의, 바로의 시간표입니다. 물리적인 시간을 넘어 히브리 노예의 삶은 미래도 없고 과거도 끔찍한 혹독한 노동과 고난의 연속과 반복일 수 밖에 없는 지긋지긋한 반복이에요. 바로의 시간표에요. 애굽의 시간표에요. 희망 없이, 과거를 되돌아보기조차 끔찍한, 더더욱 미래의 희망은 없는, (!) 고난의 고통의 반복일 수밖에 없는 현재의 시간 밖에 없어요. 무슨 희망을 말하고 소망을 생각합니까. 이것이 바로의 시간표에요. 히브리 노예들이 구원받기 전 있던 시공간. 하나님이 이들을 구원하시기 전에 그 시간표를 바꾸어요. 이제 이 백성들은 누구의 시간표로 삶이 진행됩니까? 하나님의 시간표.

회사에 나가든지 학교에 가든지, 세상이 내미는 이 애굽같은 시간표에 끊임없는 반복 속에 살아가고 있어요. 도취가 되고 마취가 되는 거에요. (!) 수능 끝난 후 몇백명 와서 열시 가까이까지 거의 발룬티어로 헌신한 연예인들을 통해 많은 격려를 받았어요. 제 시간이 10분 정도 있어서 그런 말, CS Lewis’ Screwtape letters 보면,

“The humans do not start from that direct perception of Him which we, unhappily, cannot avoid. They have never known that ghastly luminosity, that stabbing and searing glare which makes the background of permanent pain to our lives.” (What a way to think of the glory of God from the perspective of the enemy!)

“Our policy, for the moment, is to conceal ourselves. Of course this has not always been so. We are really faced with a cruel dilemma. When the humans disbelieve in our existence we lose all the pleasing results of direct terrorism and we make no magicians. On the other hand, when they believe in us, we cannot make them materialists and sceptics. At least, not yet. I have great hopes that we shall learn in due time how to emotionalise and mythologise their science to such an extent that what is, in effect, belief in us, (though not under that name) will creep in while the human mind remains closed to belief in the Enemy.”

사탄 끼리 대화하기를 선배 마귀가 후배 마귀를 다 소집해서 앉혀놓고 가르쳐요. 우리의 전략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을어떻게든 함락시키는 게 전략인데, 절대 인간들로 하여금,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우리의 전략을 눈치 채지못하게 하라. 슬그머니 우리 곁에 편한 옷처럼 들어와 있는게 정말 많아요. 마비. 중독. 의식도, 스타일도 마비가 되어있어요. 선인지 악인지 모르고, 사회 전반에 깔리니까 이래야 하는가보다 어어어 하고 이렇게 살아갑니다. 눈치 채지 못하게 하라.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 했던 헤어나올 수 없는 일상. 주는 밥 먹고 시키는 노동해야해요. 과거를 반추할 가치나 의미가 없어요. 하나님이 이 공동체를 연대기를 바꿔버립니다. 빼앗겼던 하나님의 시간표를 찾아오는 것. 그러한 차원에서 연대표를 바꿉니다. 오늘 이 밤에 이 결단을 해야 해요. 맞어. 내가 너무 떠 밀리고 살았어. 이거 아닌 거 아는데. 더이상 머뭇거릴 수 없어. 하나님의 시간표 안으로 내 연대기를 바꿔야해요. 새로운 출발의 시간을 지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냥 날짜 잘 흘러가는데 무심한 세월은 반복되어 가고 있는데, 별일없이 산다 라는 가사처럼. 영적인 눈금 앞에 세워졌을 때 내가 누구의 시간표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애굽의 시간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시간표에 내 인생이 들어와있나.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33
Q

Exodus 12:5 (KRV)

A

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첫째 흠이 없어야 해요. 흠좀 있으면 안되요? 속죄물이기 때문이에요. 흠이 없어야 속죄가 됩니다. 장차 누구의 예표입니까? 그리스도의 예표요. 흠이있으시고 죄가 있으신데 우리의 죄를 속량하실 수 있으세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게 아니라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거에요. (!) 전혀 다른 이야기에요. 습관상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 기도할 때도 있어요. 틀린 표현이에요. 대신해서. 그 대신하는 사람이 흠이 없어야 해요. 장차 오신 누구를 염두해둔 법입니다. 흠이없는 어린양.

34
Q

Exodus 12:7-8 (KRV)* Remember, OLI sharing, Fire in the bush

A

7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많이 설명했지만 그림이 준비되었나 몰라요. 좌우 설주와 인방. 문설주는 좌우. 인방이 위에 부분입니다. 한군데 빠졌내요. 문지방. 피를 안발라도 됩니까? 이왕이면 다 바르죠. 희생제물은 문지방에서 잡습니다. 거기에서 잡다 보면 피가 자연히 묻을까요 안묻을까요. 자연히 묻죠. 한걸음 더 들어가서 왜 문지방에, 문설주에, 또는 인방에 피를 바르도록 했을까요. 굉장히 저도 궁금했어요. 이번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어느 구약학자의 글을 보며 깊은 깨달음을 은혜로 얻었습니다.

보통 문이 갖는 개념. 문 하면, 세상에서는 이 집에 대해서 안과밖을 가능해요. 세상에서는 이 집안으로 첫째 맞닥뜨리는 곳이에요. 집의 끝은 문이에요. 문을 얻으면 그 집을 정복하는 겁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어린양을 상징하는 이삭을 잡으려고 했을 때,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말리시면서 창세기에 보면, 네 씨가 성문을 얻을 것이요. 바깥과 이 쪽을 구분짓는 통로같은 가장 바깥 접촉지입니다. 성과 집은 끝나는 거에요. (!그래서 문을 고쳐야.)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무교병 = 누룩이 없는 빵
쓴 나물 = 과거 애굽의 삶을 기억하라

그들이 광야에서 항상 하나님은 기억하라. 지난 20년동안 부어주신 어마어마한 복들이 있는데 그것 잊어서는 안되요. 작년 세대들의 무조건적인 희생과 양보와 헌신이 없었다면, 마룻바닥에 눈물로 꿇었던 기도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보이지 않는 이면의 뿌리를 기억해야해요. 우리에게 적용을 한다면,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헌신해 주고, 1세대가 다시 되어주고, 밑거름이 되어주고, 눈물의 투자를 해줘야 해요. 열매만 우리가 어떻게 따먹고 살아요. 오늘 꽃피운 영광을 위해 수십년 전 차디찬 마루에서 눈물을 감내했다면 이 세대가 다시 1세대가 되어서 그런 그루터기가 되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억해야 해요.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준엄한 책망이 뭐에요. 잊었도다. 잊었도다. 잊었도다. (!어떻게 기억할 수 있습니까. 사진 보고 싶다…)

35
Q

Exodus 13:17 (KRV)

구름 기둥과 불 기둥

A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찌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우리 시각에서는 40년이 낭비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명확히 이유를 밝히세요. 늘 지름길이 좋은 건 아니에요. 짧은 길로 갈려면 조건과 실력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돌려야 해요. 이렇게 머나먼 고달픈 여정도 사실은 바로 우리들을 위한 배려에요. (!) 나는 왜 이렇게 더딜까. 내 친구들은 승진하고 쭉쭉 뭐든지 빠른데, 나는 왜 아직 4학년일까. 고민 안하는 청춘이 어딨겠어요. 누구나 그런 고민을 해요. 나는 왜 매번 늦지? 고등학교도 5년씩 다니고. 나름 하나님의 이유가 있어요. 골탕먹이려고 그런 게 아니에요. 지름길로 갔다가는 해변가에 자리잡은 악명높은 블레셋이 자리잡고 있어요. 철기문명을 경험하고 있는 무시무시하고 흉폭한 블레셋이 가로막으면 애굽에서 히브리 노예들에게는 철기문명을 전수하지 않았어요. 변변한 무기도 없고 4대에 걸쳐 밥먹고 시키는 일만 했던 철저히 피동적인 사고의 4대의 익숙한 족속입니다. 전쟁 되겠어요? 돌리는 거에요.

36
Q

Exodus 14:3 (KRV)

A

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할찌라

바로가. 어떻게 말하기 딱좋다. 너희들은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었구나. 그런데 이 코스를 누가 인도해요? 하나님의 기적적인 방식을 통해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데 바로가 딱볼 때에는 너는 독안에 든 쥐다. 이런 형국이요. 그런데 이걸 의도하셨어요.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내 자녀들이고 내 백성들이라면, 그들의 고통을 정녕 보고 알아서 모세를 준비하여 어린양의 피의 공로로 끌어냈다면 조금더 편한길, 안전한 길,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고 왜 가는 곳 마다 결핍을 만나게 했냐구요. 놀랍죠. 하나님은 주특기가 남 골탕먹이는 게 주특기인가,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이 정황이 꼭 뭐 당하는 것 같다구요? 독 안에 든 쥐 꼴로 비추어 진다구요. 참 속상하죠. 신원할 곳이라고는 하나님 밖에 없는데 하나님, 이게 도대체 무슨 꼴입니까? 할 것 다 하는데, 왜 되는 일마다 더디죠? 쟤는 지름길로 쭉쭉 가는데. 갑작스러운 팽창은 붕괴를 내포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요. 뭐든지 다져서 단단하게 가야합니다. 그게 복입니다. 다 겪고 거쳐서 병치레도 해야 왠만한 감기 몸살 툭툭 털고 갈 수 있어요. 붕괴는 어느날 갑자기 오지 않아요. 쭉쭉 가는 것 부러워하지 마세요. 선망하지 마세요.

후배들이나 청년들 만나면, 항상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의 시간 없이 오지 않는다. 물리적인 지리한 시간 없이 오지 않아요. (!) 은혜도 그렇게 와요. 하나님은 그렇게 이 백성들은, 군대말로 뺑뺑이 돌리면서 가는 곳 마다 헉헉거리게 만들고 결핍을 만나게 해요. 그 과정속에서 늘 함께했던 매개체, 불기둥과 구름기둥이요. 이 역사가 참 재미있어요.

37
Q

Numbers 9:15–23 (KRV)

길을 안내한 구름 (출 40:34–38)

A

15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곧 증거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 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16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에는 불 모양이 있었 는데
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유진하였고
19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20 혹시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을 좇아 유진하고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였으며
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진행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 오르면 곧 진행하였으며
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 오르면 진행하였으니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구름 기둥. 어쩔 때는 섰다고 하고 덮었다 라고도 하는데, 둘 다 진리이죠. 원문을 정확히 보면 밤에는 불기둥처럼 보였다. 그 광야의 노정의 의미는 뭘까요? 텐트치고 솥걸고, 애들 하루종일 걸어서 난리치는데, 쌀은 아니고 빵이든 만나든 하자 그러면 구름움직인다 하면 어떻게 해요. 나 이제 못가. 못간다 하면 어떡해요. 거기서 죽는 거에요. 이거를 몇년? 40년. 그럼 생각해보세요. 과연 이런 인도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원하고 바라셨던 바가 무엇일것 같습니까? 순종. 그러니까. 거기가 광야냐, 초원이냐, 이게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쪽을 택해야 복 받을까 저쪽 택해야 복받을까, 선택이 자기 기준에 근거된 것처럼 착각해요. 기도도. (!이거 먹을까 저거 먹을까.) 아브라함과 롯. 롯은 택해서 갔는데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더라. 문예적 표현. 그게 하나님 주신 복인 줄 알았다구요. 그렇게 이해했다구요. (!) 그는 잘 살아냈어야 맞습니다. 마지막에는 다 재가 되요. 평생을 걸쳐서 쌓고 이룬 것들이 다 재가 됩니다. 허망하죠. 그래서 베드로 후서는 롯의 일생을 한마디로, 이 의로운 롯이. 행위가 아니라 신분적으로 의로움. 날마다 심령이 상하니라. 누리고 살고 만지고 살고 쌓고 폼잡게는 되었는데 그게 행복하지 않았어요. 속은 썩어들어가고 있었어요. (!) 그러면서 마음에 공허가 밀려오죠. 이야, 이게 사는 건가. 내가 바랬던 그 행복일까. 이거 아닌데. 결국 그의 불길한 예고대로, 소돔과 고모라는 숟가락 하나 건지지 못하고 재가 됩니다.

여전히 흙먼지 날리는 팔레스타인 땅, 아브라함은, 물리적인 기준으로는 안되었어야 해요. 너는 눈을 들어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어디가든지 너에게 복을 줄 것이다. 장소가 복입니까, 그 사람이 복이 되는 게 중요합니까? 선택을 내가 해서는 안되요. 가끔이라도 강조하는 것, 문제해결하는 사람 보다 문제해결 받는 사람이 되라. (!) 이스라엘 공동체가 이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광야 땡볕 벌판 아래에서 무슨 훈련받아요?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 답도 없고 길도 안보이지만 그분이 멈추는 곳에 나도 멈추고 그분이 서는 곳에 나도 서고 가는 곳에 나도 가고. 내 정황이 어떠하든. 어 지금 막 끝발오르는데, 무슨 끝발인지는 모르지만 구름 움직이면 가야해요. 인도의 상징, 임재의 상징입니다. 그것 훈련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 많죠. 광야는 다 단절합니다. (!) 네가 할 수 있는 것 없어. 오직 나만 따르라. 40년 훈련받아요. 그래도, 가나안 들어가서 말 들어요? 안들어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끔찍한 존재에요. 정말 말 안들어요. (!) 구름이 덮었다는 건, 여기서 구원이라는 단어의 실마리가 열어집니다. 우리의 죄를, 못남을, 그분의 보혈로 덮는 것입니다. 그분의 용서와 덮음으로 우리는 그분을 좆아 오늘도 또 걸어갈 수 있는 뻔뻔함을 가질 수 있는 거죠.

완벽한 모습으로 나오려고 하지마시고, 처참한 삶의 정황에 내몰려 있더라도, 가장 경건한 것은, 여전히 주를 바라보는 거에요. 도리가 없어요. 우린 그 주의 용서하심과 긍휼하심 말고는 답이 없어요. 노 답. 예수만이 구원이요, 예수만이 우리의 못남과 추함을 덮을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최고의 상. 어린양의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축복입니다. 매주 매순간. 주님 저는 예수 필요합니다. 오늘도 이밤, 주님 흘리신 보혈의 공로가 필요한 밤입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내하시는 주님의 인도를 따라 깊은 강으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38
Q

Exodus 14:13 (KRV)

A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왜 안두려워요? 두려움을 나무란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대안적 하나님의 선언이에요. 상황을 보면 두려울 수 밖에 없지만 걱정 마라. 두번째, 가만히 서서. 이 본문을 읽다가 멈춰 있었을까요.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제일 하기 힘든 것은 가만히 있는 거요. 어떻게 가만히 있어. 여러분같으면 가만히 있기 쉬워요? 그럴 수 없어요. 뭔가 이 최절명의 상황 속에서 액션하고 방법을 찾아야지. “가만히 서서.” (!) 보통 믿음이 없이는 안되는 행위에요. 바위처럼. 파도가 덮쳐오더라도, 뚝심을 가지고 가만히 있는 거에요. 네가 해봐라, 말처럼 쉽나. 이러지 마시고.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지켰기에 이 교회에 여기까지 남았다고 생각해요. 가만히 안있어요. 자꾸 꿈틀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거 아냐. 별별 두려움이 사고의 분열과 방상과 공포와 정신을 못차리게 하는 거에요. 어떡하지 어떡하지. 가만히 서서. 가만히 서서. 우리 그거 합시다. 가장 적극적인 거에요. 그렇게 믿습니다. 너희는 눈을 들어 애굽을 보았지?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너희가 보라.

39
Q

Hebrews 11:8 (KRV)

A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분명 내가 내게 주는 땅으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했어요. 왜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했죠?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가 한번도 겪어보지도 못한 일들과 땅이에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가라는 거에요. 누가 함께 해주신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 그 일들이 어떻게 해결되고 이걸 믿으라는 게 아니라 어떤 길을 만나던, 너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우리가 그분을 봐야해요. (!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동행하시는 하나님.

40
Q

Exodus 14:16 (KRV)
Exodus 14:21 (KRV)
Exodus 14:19–20 (KRV)
Exodus 14:31 (KRV)

A

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마른 땅으로. 육지로. 마른 땅의 약속을 하십니다. 이 주제는,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모티브가 됩니다. 노아의 홍수로 온 인류가 심판 아래 있을 때 뭘 보고 구원을 확인했나요? (!집, 주님 틀린 길이라면 허락지 않게 하소서. 제가 두렵지 아니하겠나이다) 세속의 상징이에요. 그 바다가 온 뭊을 덮어 있을 때, 바다에서 붉은 용 이런게 등장해요. 이 홍해라는 것은 암스푸 라는 말인데, 붉은 바다라는 뜻. 벽이 되게 하고 마른 땅을 주시는데. 바다가 당장 갈라졌다고 당장 마른 땅 됩니까? 잘 보시면, 하나님이 얼마나 절묘하게,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애 노인 어른, 약한 사람, 여자, 전부 이백만명이 바다 한복판을 걸어가야 하는데 갯벌을 어떻게 건넙니까 게다가 마른 땅이라는 말 안에는 놀라운 전략이 감추어져있어요. 마른 땅이 아니었다면 뒤따라 들어왔겠어요? 뻘 밭에? 애굽에게는 전략적 미끼가 되요. 우리에게는 구원의 길이 되죠. 마지막 한 사람까지 다 통과한 후, 벽으로 서있던 바다는 애굽을 수장시킵니다. 수몰시킵니다. 밤새 동풍 바람은 뜨거운 바람을 이야기해요. 동풍표 선풍기로 밤새 바다를 말려요. 게다가 보호하시기 위해 어떤 조취를 취하시는가,

19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20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 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 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 편이 이 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구름기둥으로 손대지 못하도록 완전히 막으세요. 밤새 동풍으로 바다 밑을 말리시고 그 길로 같이 지나가게 해요. 애굽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빌미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이것이 신약의 선언입니다. 바다가 갈라진다. 바카. 찢어진다. 자기 몸을 찢어서 새롭고 산 길을 열으셨어요. 생명의 길입니다.

마지막 결론입니다.

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두려움이 변하여 하나님을 경외함이 되었어요. 찬양 가사에도그런 고백.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노래 되었고, 전날의 두려움 변하여 우리의 기도가 되었다. 칠흙같은 문제를 뚫고 마른땅을 확인하고 기도의 길 걷는 구원의 복된 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1
Q

Exodus 17:1 (KRV)
반석에서 물이 나다 (민 20:1–13)
Exodus 17:2 (KRV)
Exodus 17:3 (KRV)

A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하나님이 이거 물 없는 거 몰랐을까요? 몰랐으니까 여기까지 인도하셨겠지? 아니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모르실리 없고 이 목적지는 정확히 방금 읽으신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왔어요. 그런데 절대 결핍이 있어요. 인생 살다 보면 이런 일 자주 만나요. 매일 겪는 일일 수도 있어요. (!절대결핍, 도버) 이 상황에서 불평 안할 사람 몇이나 될까요? 저도 불평할 것 같으데요? 제 한 몸 같으면 참지만, 저와 같이 성도가 몇명인데, 왜 이런데로 인도하셨습니까? 갈등의 상황을 면밀히 보자구요. 분명, 하나님이 도착케 하신 곳이 분명한데, 절대 결핍이에, 하나님이 모르실리 없어요. 결핍과 연약함의 상황 속에, 거기에 반드시 하나님의 의도성이 있어요. 의도성이 과연 무엇인가, 끝부분에 나와요. 스포일 안하겠습니다. 지난 주일날 4부예배 때, 스포를 진짜 몰랐어요. 하루종일 곤욕을 치렀습니다. 외국에서는 맞아서 병원 간 기록 도 있습니다.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두 가지를 얘기했네요.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또 누구와 다투느냐? 여호와와 다투느냐. 여호와와 모세. 모세와 항변하는 것은, 모세가 하나님이라는 말이 아니라, 지도자 모세를 향한 원망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었어요. (!) 참 큰 은혜를 받았어요. 백성들의 원망속에 무슨 은혜?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는 게 일단 은혜에요. (!) 설교를 마치고 나면 이런 걸 섬뜻 섬뜻 경험합니다. 나는 분명 그런 의도로 설교 안했는데 핀트 와 안맞는 전혀 다른쪽에서 은혜를 받고 그런 간증을 한두번 듣는 게 아니에요.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구나. 나름 성경적 의도를 준비한다 할지라도.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해요? 정확하게 짚었어요. 무슨 말인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해? 게다가 이 백성들의 상태를 조밀하게 설명드릴텐데. 애굽에서부터 400년의 노예생활에서 모세를 필두로 무리바에 오는 때까지 많은 사연을 겪으며 하나님을 경험했어요. 어마무시한 기적과 은혜들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허기진 상태도 아니에요. 만나를 허락하셔서 배를 불리셨습니다. 처음으로 무리바에 도착해서 현실적인 상황은 물이 없는 거에요. 우리 같아도 과거의 하나님의 우리와 동행해주신 행적을 유추해볼 때 (!) 이까짓 정도야 해결 하실 분일까요 해결 하고도 남으실 분이라는 것을 넉넉히 알 상황인데 바로 불평을 원망을 통해내는 게 전공입니다. (!)

이상한게 하나 있어요. 끊임없이 결핍이 있을 때마다 원망을 퍼붓는데, 하나님이 일절 뭐라 하지 않으세요. 그냥 두세요. 그 때 그 때 마다 오히려, 자기를 드러내세요. 내가 어떤 하나님인지. 자기 계시라고 하죠. 조금씩 조금씩 눈뜨게, 경험하게,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웁니다. 사실 이 인식은, 이스라엘 시대만 있었던 인식이 아니에요. 우리 안에도 똑같은 경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요. (!) 뭘 배워야 하냐면, 우리 인생의 사건 사연 사고 때로는 절대 결핍이 부딪힐 때마다 하나님은 이것을 오히려 자기를 드러내시고 자기를 계시하는 방법으로 사용하신다는거에요. 무슨 목적이 담아져 있죠? 우리를 교육하는 목적이요. 하나님의 의도는 사실상, 출애굽도 마지막 목적도 아니고 광야를 통과시키는 것, 가나안에 들이는 것도 사실 마지막 목적이 아니에요. (!) 하나님의 진짜 목적은 나 자신에게 있다구요. 한 사람 각자에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 이것이 이 무리바 물 사건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굉장히 중요한 관전 포인트에요.

중요하니까 설명합니다. 이 지역까지 르비딤 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택해온 길이 아니에요. 인도하셨고 모세는 백성들을 이끌어 여기까지 도달하게 했습니다. 근데 물 없어요. 이거 모르셨겠어요? 아셨을 꺼에요. 100프로 아셨어요. 이 의도적인 행로를 하나님은 설계하셨을까. 설계자. 계속 우리를 설계해 가세요. 우리를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 드러내시고 경험케 하시고자 하는 교육용 목적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인생을 해석하는 시선이 달라야 하는 이유. 답답한 상황, 지리한 상황, 끊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이 알까요 모를까요. 아심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머물게 하고 그걸 만지작 거리게 만드는 것은, 뭘 위한 거에요? 거기서 나에게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구요. 믿습니까? 잊어버리지 마세요. 내 인생에, 눈물 겨운 지리한 사건도.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시고 나에게 자신을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분인지 계시하시고 드러내시기 위한 하나의 기호에불과했구나. 인생을 새롭게 이렇게 바라본다면, 많은 곳곳에 하나님 메세지가 감추어져 있어요. 이거 보는 게 아주 쏠쏠합니다. 영적 더듬이가 민감하면 그게 제때 제때 걸리고 보여져요. (!) 기도에 집중하고 성경을 읽는 꾸준한 습관을 가져야 해요. 영적으로 민감할 때 그게 잘 드러납니다. (!)

3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애굽의 향수, 예사랑, 매력, 옛 연인의 사랑의 추억을 못 내려놓아요.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하느냐.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못 갖고 있어요. 살릴려고 인도했는데, 죽인다고 아우성쳐요. 그리고는 옛 여인의 체취를 잊지 못하고 떨쳐내지못하고 추억하면서 애굽을 언급해요. 옛것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광야에서 떠올린 기억이요. 여기보단, 거기가 낫다. 비교수치는 전적으로 물질적에 기반한 것입니다. 언어 속에서 항목이 등장하죠. 자녀, 가축. 물질적인 것으로 애굽을 소환하죠. 오늘이 비참할 때, 왕년에… 내가 그래도 잘나갔는데. 이런 사람들이 100프로는 오늘이 아니라는 얘기거든요. 애굽을 소환해 냅니다. 넣어주고 새롭게 만들고자하는 초점은 그 기억을 걷어내고 하나님이 얼마나 충만한 분이시고 만족한 분이시고 전부이시며 그분이 대답인지를 이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서 가르치고자 하십니다. (!) 이것이 물 사건이에요.

42
Q

Exodus 17:7 (KRV)

A

7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끊임없는 인생의 빗나간 요구죠. 그들은 사실 상 예수님이 함께 계신데도 현현하고 계신데도 불구하고. 마치 누가 연상나요? 제목만 맞춰보세요.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벳세다 들판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백성들이 배타고 가버나움. 호숫가 건너까지 찾아왔어요. 예수님께 물은 것이, 언제 왔습니까? 방법까지 사실상 물은 거에요. 예수님의 신적인 아들의 존재에 대해 잘 몰랐어요. 예수님께서 그들의 속내를 정확히 간파하신 것이, 너희가 나를 쫓아온 까닭은 표적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 표적은 예수님이 자신의 죽으심을 표지판처럼 설명하는 내용이었는데. 들판에서 한끼 식량으로 절대 불가능한 상황에서 먹이신 것은 자기 자신이 하늘의 생명의 떡임을 드러내는 표적이었는데 나를 따르는 이유는, 제자들까지도,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 애굽에서 나온 이 백성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43
Q
Exodus 17:8 (KRV)
아말렉과 싸우다
1 Corinthians 10:1–4 (KRV)
Deuteronomy 25:17–18 (KRV)
아말렉의 이름을 없애라
Exodus 17:16 (KRV)
A

8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애굽 다음 떠오르는 신흥 강국입니다. 잘 훈련되었습니다. 오합지졸인 이스라엘, 노예들일 뿐인에요. 히브리 노예에게는 무기라고는 철기문명 가르치지도 않았어요. 근데 싸워라, 하나님이 밀어부쳐요. 모세는 전쟁을 지휘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여호수아에게 네가 가라 이렇게 덤탱이 씌웁니다.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두 손을 들었다. 기도했다는 없지만 두 손을 들었다는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산 아래서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오합지졸을 데리고 아말렉을 싸워야해요.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도 아닌 가당치 않은 상황. 답이 없는 전쟁이에요. 모세는 손을 들고 있습니다. 노인네가 손을 언제까지 들고 있어요. 피곤하니까 자연히 내려오겠죠, 그러는 가운데 전쟁의 신기한 현상하나를 아론과 훌이 발견해요. 전쟁 이상하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고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겨요. 아말렉 눈을 파던지 해가지고 지들끼리 치고받고 어쨌든 이스라엘이 이겨요. 그런데 피곤해서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여지없이 박살나기 시작해요. 이 전쟁이 현장에 승패가 있지 않구나. 아론과 훌이라는 두 참모가 간파를 한거죠. 공부도 열시간 앉아있다고 되는게 아니라 원리를 깨달아야죠. 오래 앉아있는 애들 많아요, 성적 안나와요. 공부도 원리를 알아야해. 현장에 승패가 아니구나.

우상 숭배를 경고함
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구름과 바다, 홍해입니다. 신약에서는 논문식으로 썼어요. 그게 세례다. 홍해를 건너야 구원받는 거 아니에요. 구원받는 사람의 표가 세례이죠. 신분상, 누가 되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았다는 거에요. 그 구원받은 백성에게 결핍이일어나고 부족함이 생기고, 심지어는 아말렉이라는 강력한 대적과 전쟁도 벌여야 해요. (!)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 배웠어요. 그러나 물량적인 복을 약속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건 종교죠 종교.

가나안이라는 새로운 목적지를 향하는 순간 새로운 전쟁에 내가 부딪힌다구요. 결핍이 발생하고. 이것을 통해 하나님 배워나가는 작업이라는 것 알았어요. 동시에 이 전쟁은 무슨 의미냐. 특별히 아말렉으로 명시된 이것은 구원받은 나에게 무슨 존재이냐? (!)

17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영적으로 약해졌을 때 약한 자들을 물고 시비 거는 존재가 아말렉이요. 어떤 상대적인 대적이 아니라, 내가 홍해를 건너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지만 (!)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는 옛사람의 추억을 향수를 떨쳐내지 못하는 육신의 그림자를 얘기하는 거에요. 그런 거 많죠. 오늘 이밤에, 우리는 두 가지 말씀을 붙들고 기도제목 삼았으면 합니다. 첫째는, 이 르비딤에 도착하여 무리바의 결핍의 물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반석을 치라 명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궁극적 약속을 성취하시는 섬뜩한 사랑을 받습니다. 아말렉은, 새로운 땅을 걷는 약속의 노정중 애굽을 그리워하는 육신의 그림자. 상대적인 적보다 내안의 적. 그 적을 검을 빼어들고 전쟁하라. (!) 그 전쟁 홀로 싸우도록 하는 전쟁이 아니에요. 16절 다시보세요.

16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우리의 성화도! (!) 내가 애쓰는 게 아니라 반석에 터져나오는 성령에 붙들려 (!) 하나님이 대대로 싸우시겠다. 십자가를 걸고 약속하신거에요. 내가 반드시 내가 너를 끝까지 이끌고 가겠다. 한주를, 또 복된 주일을 열망을 다해 사모하고 목말라 사모하는 주의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

44
Q

Exodus 16:1-4 (KRV)

만나와 메추라기

A

1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이월 십오일이라

떠난지 지금 한 한달 되었어요. 제일월 십오일에 떠났으니까, 한 달 전만해도 애굽땅입니다. 때에 따라 먹을 수 있고, 나름 종살이지만 익숙한 터전을 가지고 있었어요. 일곱 여덟명 캠핑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숫자가 아무것도 없는 진공상태와 다름없는 광야에 덩그러니 던져져 있는 것입니다. 물도 먹을 것도 없어요. 원망이 이상합니까, 자연스러운 겁니까?

이 본문을 읽다가, 저한테 물었어요. 너같으면 가만히 있었겠냐? 개중에 한국사람이 하나 끼어있었다면 장난 아니었을 것 같아요. 이 원망은 이들의 현실적인 의미에서 이상하지 않다고 봐요.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럴 줄 몰랐을까요? 그럴리는 없죠. 아이구 여기 구원해내 보니까 아무것도 없네? 그런 하나님일까요?

여기에서 이 원망이 무엇에서 시작되냐면 결핍. 원망. 문제는 이 과정을 인지하지 못할 리가 더더욱 없단 말이죠.

Exodus 16:2 (KRV)
2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내 모습이고 여러분 모습이요. 오 그럴 줄 알았어 감사합니다 이럴 사람 없어요. 이게 뭐야, 그냥 여기 살라고 내버려 두지. (!클로이 존)

Exodus 16:3 (KRV)
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기억이 과장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야 합니다. 어느 부분에서 과장이죠? 거기서 떡을 배불리 먹었대요. 정말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봐요. 그들은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너무 사는 게 힘들어서 오랜 시간 모든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보고 알고 듣고, 기억나세요? (!) 그런데 지금 오늘이 너무 힘드니까, 인간의 못된 심리가, 과거도 핍절한 것은 별 차이 없는데 그것이 이들의 기억속에 과장되고 있어요. 인간은 늘 그래요. 과거의 기억의 과정. 어떤 시절의 기억입니까? 애굽의 기억이요. 불과 한 달전이요. 너무 생생한 기억이요. 수십년 지난 시간도 아니고. 그 시간을 기억못할까요? 잠자리 안편해요. 먹는 것 하나 저축 못해요.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각양 각색의 인생군상이 다 모여 뜨거운 광야를 걸어가고 있었을 텐데, 어찌 이들의 원망을 믿음 없어서 라고 찍어 내릴 수 있을까요?

여기 본문의 의도는 믿음 없다에 초점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도가 다른 곳에 있어요. 예측 못하고 그랬을까요?

Exodus 16:4 (KRV)
4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 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중요한 의도가 있어요. 이 시험하겠다는 말은 아주 중요합니다. 수요예배 1부에 사사기 강의를 일곱번째 하는데요, 어느 순서냐면, 기드온의 사사순서에 이르렀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은 고리처럼 반복됩니다. 배부르면 죄져요. 그러면 옆의 나라를 키우세요. 미디안, 블레셋… 그래서 이스라엘을 압제하게 만들어요. 전형적인 패턴, 또 살려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일관되게, 한 구원자를 일으키시어, 하고 사사를 보내십니다. 구원자, 사사 기드온 전에 예언자를 일으키시는데, 세 가지 메세지를 주어요. 첫째,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건져내지 않았느냐. 두번째, 내가 이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었지 않느냐. 총칼로 안 빼앗고 내가 너에게 준 땅이다. 세번째, 그럼에도 너희는 불순종하였다.

이 선지자가 구원자가 일어나기 전, 앞서 일으킴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세 가지 메세지를 던지는 이유는 뭘까요, 깨우쳐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시험하사 라는 말은 테스트 보다는 어느쪽의 의미가 가깝냐면, 첫째, 네가 누군지 알며, 둘째 네가 살길을 어떠해야 함을 깨우쳐 경험시키는 것이 시험하다입니다. 이스라엘의 실력을 보려고 시험하는 단순의미가 아니라, 너가 깨우쳐서 참된 행복으로 살 길을 내가 경험토록 해주마. 시험한다는 진의미입니다. (!)

45
Q

Exodus 16:4 (KRV)
Exodus 16:12 (KRV)
Exodus 16:16 (KRV)
Exodus 16:21 (KRV)

A

4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 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비같이 내린다. 출애굽기 9장에 한번 나옵니다. 재앙이, 애굽 전역을 덮을 때 뭐같이 내렸어요? 비같이. 9장의 비같이 내림은 죽음과 파멸과 재앙이요. 재앙의 차원의 비였어요. 오늘 출애굽기 16장은 뭐가 비처럼 내려요? 생명과 은혜가 비같이내려요. 한 씨씨엠 가사도 있는데. 고영훈 씨 엔딩송인데 우리 함께 기도해, 이런 영적인 힘이 있어요. 하나님을 실제 역사속에서 웅장하게 경험한 그런 맛이 있어요. 곡도 좋지만. 부흥이라는 곡은 전설적인 씨씨엠 아니겠어요.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만나에요. 이 만나를 어떻게 거둘 것은 명령하시는가. 수요 1부 때도 말씀드렸는데, 성경을 하나님 시선에서 보시면, 하나님은 반전 전문가에요. 인생 경영이 밋밋하게 끌고 가시지 않고 화들짝 놀라게 반전의 반전으로, 재밌게, 물론우리 입장에서 죽는다 산다 왔다갔다 하지만, 재밌게 이끄세요. 천국에 가면 지루할 거다 생각하시는 분, 정말 재밌을거에요. 은혜를 베푸시는 방법도 상상할 수 없는 묘수로 깜짝깜짝 눈을 뜨게 하지 않습니까. (!)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해질 때 고기 먹었어요. 그리고 계속 메추라기라는 고기를 먹어요.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라 내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저녁에는 슬픔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영광으로 눈을 뜨겠다 이거에요. 이 모든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습니까?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을 통해. 우리가, 애굽의 통곡을 뒤로하고 구원을 입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은혜와 생명의 만나를 경험해요. 어느 사람도 경험치 못했던 최초의 현장을 경험해요. 저게 뭐냐? 히브리어로 만 이에요. 만나. 풀어쓰면 저게 뭐냐? 캥거루는 뭐에요, 배에 주머니 있는데 스몰 사이즈를 담고 다녀요 호주가보니까. 원주민 말로 캥거루, 저게 뭐냐? 그런 뜻이라고 누가 그래요. 만나라는 말은, 그 어원이 히브리말에 저게 뭐냐? 누구만이 알아요? (!) 먹고 살아서 경험한 사람만이 저게 뭐냐를 알 수 있는데, 놀랍게도 세모법의 문법을 보면, 저게 누구냐 라는 의미도 되요. 이 만나가 요한복음 6장에가서 예수 그리스도로 정의가 될 수 있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그 분이 누구냐? (!) 인류의 끊임없는 질문. 시뻘건 이 들판의 향연을 통해 우리에게 설명하고 싶은 것입니다.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

장막이라는 말은 공동체의 상징이에요. 왜 그들은 안거두러 나갔을까요? 이 사람들은 먹고 싶은 욕망이 없나요? 이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 어느 때나 존재했던 사회적 약자. 움직여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자기몫만 거두면 안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주례할 때 다섯가지 복을 비는데 물질의 복을 꼭 빌어요. 우리 청년 형제는 오천명 분을 혼자 먹을래요 오천명 먹여 살릴래요? 주례받을 때는 다 오천명 먹여 살린다고 해요. 그 후에는 잘 몰라요. 타고 날 때부터, 약하게 태어난 사람들. 연약한 지체들을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후, 우리 곁에 늘 두셨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논리로만, 니가 실력 없고 뒤떨어지니까 굶는 게 당연해 이게정의일까요? (!)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아셨습니까?

21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하나님이 먹으라고 준 것만 내 것이 되는 거에요. (!)

46
Q

Exodus 16:7 (KRV)

A

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하나님께서 영광을 보이세요. 그 때마다 놀랍게도 인간의 불순종과 결핍뒤에 하나님 영광이 나타나요. 출애굽기 33장에, 백성이 하도 속썩이니까 영광을 보여달라고 하세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지나가십니다. 그 말은,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일반 섭리와 순리를 통해 이미 영광을 채워주시고 보여주신다는 이야기에요. 여러분이 영광돌리고 싶으면 답은 간단합니다. 어떻게 영광돌려요? 내 인생의 곤고함, 원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속에서 주님 향하여 무릎꿇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내가 영광을 보여주겠다 라고 표현해요. 이 기도하는 시간이, 인간의 기본적 결핍을 통해 하나님 무릎에 앉는 시간이요, 하나님은 영광을 보여주세요. 늘 누구의 결핍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까? 인간의 부족 안에서 하나님의 무릎으로. 영광이 한쪽만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잘되서 영광돌리는 것도 영광이지만, 이 광야에서 말하시는 영광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무릎안에 앉고, 결핍의 순간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꿇어지는 것이 영광입니다. 그 영광은 아버지의 기쁨과 희열을 이야기합니다. 얘가 힘드니까 나에게 왔구나. 아버지는 기뻐요. (!) 영광을 드러낸다 라고 여기서 정의합니다. (!)

수많은 사연, 힘든 사정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시간 되기 원합니다.

47
Q
Exodus 20 (KRV)
제단에 관한 법
A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가? 출애굽 시켜서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예배케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부름 받은 후에, 하나님이 첫번째 해주신 말씀이 너는 네 백성에서 이끌어내서 이곳에서 나를 섬길찌니라. 그 섬긴다는 말이 예배케 한다. 백성들의 그 첫날밤과 모세의 첫날밤은 달랐어요. 모세는 이 호렙산의 기억과 맥락을 가지고 있죠. 백성들은 피동적으로 이끌려나와서 그냥 하룻밤 유숙하는 장소로 인식했을 거다. 직접 본 건 아니지만, 모세는 그 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 같아요. 참 하나님 놀라운 분이다. 나를 봉창두드리는 소리로 양 치다가 부르시더니, 정말 이루시다니. 어떤 분이실까. (!) 잠을 못 이루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두 부부가 자기 집 마련하던 첫날 밤, 아이들의 첫날 밤과, 이 두 부부가 저축하고 저축해서 자기 집 가진 첫날 밤이 다를 까요 같을까요? 다르죠. 이게 꿈일까. 이 아이들 때문에 구박받던 셋방 살이, 자제시키고 눈치보고, 주마등 처럼 지나갔을 거에요. 근데 아이들은 그냥 좋아요, 새집이다. 이사 안가도 되는 거야? 철없는 질문을 던지며 뛸거에요. 엄마 아빠는 짐정리하고 방 닦으면서 눈물 나는 거죠. (!)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모세가 느꼈을 첫날밤은 백성과 사뭇 달랐을 거에요. 이 백성들을 놓아주소서. 사흘길 가서 하나님께 경배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겠다는 얘기를 제일 먼저 합니다.

근데 바로 입장에서는, 어떻게 들렸을까요? 아니 얘네들이 자다말고 무슨 소리인가? 예배라고는 한번도 안드리던 종들이, 뜬금없이 오랜만에 모세라는 인간이 나타나서, 광야로 가서 예배를 드리겠다? 허락할 수 없는 요구에요. 결국 하나님의 강력한 손대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은 그 예배를 어떻게 드려져 가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거에요.

48
Q

Exodus 20:23 (KRV)

A

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이게 곧 깨집니다. 어디가서요. 32장 즈음 가서 이 설명이 해설까지 다 마쳐지지마자 산 아래 내려가니까 뭘 만들어놨어요? 금송아지요. 나를 비겨서 라는 말은 하나님 처럼 여겨서. 무엇 무엇과 같이. 우리는, 어떤 것도 새기지 말고, 만들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유는, 우리는 누구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죠? 하나님의 형상대로요. 우리 속에는 분명 하나님 형상이 있어요. 아담은 에덴 동산의 첫번째 신의 대리자였어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이 뭘 만들고 하나님이라고 절하면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절하는 꼴이 되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창조주이신데, 자신이 뭘 만들어놓고 거기다 대고 소원을 빈다, 어불성설이죠. 말이 안되죠. 뭘 새겨서 절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오해해서는 안되요. 예술품 만들면 안된다 이거 아닙니다. 예술적 차원에서 만드는 것은 괜찮지만 경배의 대상이 되서는 안된다. (!) 본당 앞에 선한 의도를 가지고 어마어마한 돌로 주기도문과 십계명을 새겼어요. 성경 돌비석 둘. 그 옆에는 한 5층-8층 까지 높이가 되는 큰 돌비석을 세워놨어요. 작지 않은 교회였어요. 그 의도는 원래 이런 뜻이었어요. 예배 마치고 본당에서 나가면 그 돌비석을 보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겠다고 각인 시키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뜻이 좋죠. 의도가 동기가 좋죠. 근데 얼마 있자니까 새벽 예배 후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져요. 예배 끝나고 연세드신 시골에 계신 어르신들이 옛날 습관을 따라서 자꾸 이 돌비석을 중심으로 도는 거에요. 답돌이 하는 거죠. 한 원로 목사님이 보시고 저거 당장 때려 부시라고. 몇억짜리 작품인데, 크레인이 와서 때려 부시고 없어졌어요. 제 목회 여정에 아주 잊지 못할 사건이었습니다.

자꾸 주변을 도세요 할머니들이. 아무리 선한 의도로 만들어 놓아도 인간은 자꾸 그것을 비겨버려요. 누구처럼, 하나님 처럼. 어떤 것도 새겨놓지 말라는 것이 인간의 속성을 알기에 말씀하시는 거에요. 일상속에, 우리 주변에, 많이 만들어져요 사실은. (!) 개혁이라는 것은, 자꾸 세월이 쌓아질수록 얹어지는 순수했던 동기들 마저 자꾸 점검하고 부시고 없애뜨리는 거에요. 예수님만 남도록. 히브리서에 개혁될 때까지. 예수님의 실체만 남을 때까지. 개혁은 제도 뜯어고치고 사람 바꾸고 이거아니에요. 비본질적인 것들 삭제하고 거두어내서 본질만 남도록.

우리가 자꾸 동기를 생각해서 그런 것들 만들다 보면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고 대체한다니까요.

49
Q

Exodus 20:25 (KRV)

A

25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예배속에 다른 것들이 섞여서는 안된다. 제단 만들 때 정으로 손대지 말라 이것도 내포되어있어요. 너무 인본적이고 인위적인. 사람의 의도적인 작용들이 너무 많이 끼어들어가요. 이런 예배자로. 순수하게,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예배. 성령께서 강력하게 임재해서 받으시는 예배. 쉽지가 않아요. 예배자의 마음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 상한 심령이요. 그대로 나오라. (!)

꾸며서 나오지 말라. 그대로 나오라. 못 난 모습 그대로 나오라. 우리는 꾸며서 나와요. 기뻐하시는 예배가 아니에요. 내 모습 이대로. 이말씀이 성도들의 심령속에 예배자의 마음으로 회복되는 동기되기 원합니다. (!)

50
Q

Exodus 15:24–26 (KRV)

A

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신명기에 나무에 달리면 저주받은 자. 갈보리 언덕에 세워질 십자가의 그림을 이야기합니다. 이 물이 뭐죠, 마라의 쓴물이요. 죽음의 물이요. 먹지 못해요. 마치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얻었듯이. 또다른 형태로 압축한 그림이 이 그림입니다. 나무를 지시하고 그 나무를 물에 던집니다.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쌔. 테스트하는 것보다 프루브. 증명해 내는 것입니다. 구원없이는 빵점 짜리다. (!) 시내산의 광야여정의 중요한 시각입니다.

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지켰나요? 못지켰어요. 왜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시죠. 나뭇가지를 가리켜 물에 던지게 함으로, 즉 아들을 이 땅에 내어놓으시고 갈보리 언덕에 나무에 매어다심으로 치료하셨어요. 십자가 방법 외에는 치료할 수 없었어요. 오직 십자가의 방법으로만 인류를 건져내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어떤 본성이 있냐면, 항상 이 불평과 불만이 팩트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아요. 사회생활, 직장에서, 또는 교회 안에서도 종종 일어나요. 감정 말고 팩트를 이야기해. 왜냐면 팩트가 감정인데? 팩트는 그냥 현상이에요. 진짜 우리가 생각하는 거는 감정이 팩트에요. (!)

순종을 하면 뭐가 보여요? 길이보여요. 안하기로 하면 핑계가 만들어져요. (!) 조건이 팩트입니까 감정이 팩트입니까? 그렇습니다. 누구랑 얘기하는데 기분이 상해요. 그런데, 가만히 복기를 해보면 결국 상황이 잘못이 아니라 내가 그거를 오해하려고 그냥 기분이 처음부터 나빴어. 부부지간에도 비일비재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이야기 들어보면, 뭐가 정말 사실일까? 생각을 좀 바꿨어요. 감정이 사실이다. 상황이 사실이 아니고 상황은 현상이에요. 진짜 팩트는 우리의 죄악으로 물든 감정이에요. (!) 싫어하고. 나쁘게 보려고 하고. 이런 태도들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걸어가면서 무서웠겠죠. 정말 하나님은 뭘 훈련시키고 싶어하셨을까요. 상황과 상관없이. 텅빈 광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관계속에서만이 진정한 풍족을 경험할 수 있다 이거에요. (!물질로 내가 부하고 풍족을 경험하고 이런 것 아닙니다!)

51
Q

2 Timothy 3:16–17 (KRV)

A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온전케 하려 함이라. 자주 등장하는데 아르티오스라는 말입니다. 준비하다가 은혜 많이 받았어요. 완전과 온전은 다른 개념이다 라는 말씀. 퍼펙트 완전. 온전은 더 높은 개념이에요. 아르티오스 헬라말에는 몇가지 개념이 녹아져있어요. 첫째는, 어떤 환경이나 요구에 대해서 알맞는 존재, 적합한 존재가 되는 것. 둘째,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온당한 정상적이고 건전한 상태. 그런데 헬라사람들의 온전의 이해는 더욱더 절묘한 개념이 녹아져 있어요. 짝이 된다. 수학에서 나오는 개념, 짝수의 개념이요.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말씀이 주어진대요. 그말은 누구와 짝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와 짝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누구의 짝수에요. 그리스도의 신부라잖아요. 짝수에요. 그 신랑인 그리스도에게 적합하고 알맞는 짝꿍이 되게 하기 위해서. 온전케 하기 위해서. 섬세하고도 따뜻한 개념으로 버무려 만들어 가는 거에요. 우리 실체를 드러내고. 깎아낼 것 내고, 다듬을 것 다듬어 내고, 짝꿍이 되어 짝수되게 하는 것. 온전의 개념이에요. 가장 강렬한 예증은 성경에 있습니다. 둘째 탕자가 언제 온전해지죠? 도덕적으로 새롭게 되어서요? 아니요. 아버지의 아들의 자리로 돌아갈 때 온전해집니다. (!) 아흔 아홉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으러 가죠. 이런 미련한 목동. 아흔 아홉은 어쩌라고. 그런데 백이라는 한 공동체가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한 마리가 채워지고 돌아와야 온전한 공동체가 되는 거에요. 철학적인 숫자에요. 수학하는 분은, 수학은 숫자놀음이 아니라 철학입니다. 이 말이 맞거든요.

52
Q

Exodus 15:27 (KRV)

A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이것이 장차 격한 노정을 겪어야 할 백성들이지만 그들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말을 보겠는지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물론 고생 이 후에 많이해요. (!) 이 엘림의 그림은 이들이 마지막에 어떤 결말을 손에 붙들게 될 것인가 암시하는 그림입니다. (!아기사자, 진정한 사자로.) 수르 광야를 통과하고 있거나 마라의 쓴 물 만난것 같은 황당함 속에 있을지 몰라요. 그러나 그 마라의 쓴물의 부르짖음을 통해 한 나무를 가리켜 물에 집어던지게 합니다. 십자가의 대속으로 눈물로 마음을 쏟아 기도할 때 열 두 샘물을 봐야해요. 지금 사막과 골짜기 지나는 내 인생에 반드시 종려나무그늘 아래 내 삶을 놓는 기적을 나에게 약속할 것이다. (!) 영적이든 육신의 문제이든 반드시 이 자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대원외고, 프리맨 스칼라쉽, 제시카, 목회자, 대가족, 건축가…) 무궁무진한 수십만의 페이지가 펼쳐지며 어마어마한 내용들이 담아져있죠.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째 여정, 수르에서 마라, 마라에서 엘림. 엘림 교회들이 많아요. 시중에 나가보면. 좋죠.

안성 수양관의 어깨동무 사역부가 오랜 고민 끝에 귀한 일을 했는데 저는 그 이름이 참 좋아요. 어깨를 함께 하고 한국 교회를 주의 나라를 동역한다는 의미가 너무 좋습니다. 개척교회 삼각 교회 어려운 목사 부부를 안성 수양관에 모시고 여러 프로그램으로 그들에게 쉼고 심령의 부흥과 교제의 시간을 나누도록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저의 제자가 몇명 참여했는데 이런 얘기, 미국에서 10년 넘게 공부하고 목회 하시다가 무지 고생하셨습니다. 한국에서도 5년 넘게 임지가 없어요. 오란데가 없어요. 마음 고생 많이 하셨죠. 그러다가 저 경상도 지역의 조그마한 농촌 교회. 91살된 새신자 한 분 들어왔대요. 보통 시골 교회 형편이 그래요. 저는 힘들까봐 얼마나 힘들어. 목사님 제가 가식이 아니고, 요즘 처럼 행복한 때가 없어요. 그분들을 만나고 연세에 상관없이 말씀 전하고 새신자 들어온다는 게 너무좋다. 수천명 목회가 부럽지 않을만큼. 자기가 처절하게 임지 없이 고통 겪는 가운데 하나님이 자기 시선을 바꾸어주셨대요. 물론 이 엘림의 열두샘물, 칠십그루의 종려나무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영적으로 환치시켜서 적용한다면 우리의 삶이 그렇게 극적으로 달라지는 것 많이 없어요. 은혜받으면 갑자기 금덩이 잡고 그럽니까. 내 시선을 바꾸시고 예전에 보지 못했던 그 복을 보는 거에요. 그분이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경험치 못했던. 농촌 교회 엄청 척박하죠. 얼굴 하얀 부목사가 까매지고 검버섯도 나고. 그런데 그 광야에서 터뜨려주신 샘물. 위로부터 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풍족치 못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눈뜨게 되자 우리가 만나는 열두 샘물, 칠십그루의 종려나무를 보게 되는 거에요. (!)

이 밤에도 여러분 인생에도 고단한 광야의 길에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기도의 길 끝에 열두 샘물과 칠십 종려나무를 만나 해갈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