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 April 2019 Flashcards
Matthew 26:8 (KRV)
: 8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등잔 밑이 어둡다 하듯이, 우리가 이럴 수 있습니다. 여인의 행위는 무엇이었습니까. 가장 값비싼 향유를 깨뜨려 부어드렸다. 그 상징 속에 주님의 모습이 있는 것이죠. 소유를 비우시고, 생명을 비우셔서 죄인과도 같은 자들의 죄를 대속하시려는, 대신 지시려는 놀라운 사랑 아닙니까. 그 사랑을 알아보고 응답하였다. 이 여인의 행위는 그 사랑을 깨달은 행위, 그 사랑을 닮은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 주님의 사랑이 전파되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행위를 함께 전파하라.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다.
백마리 중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목자가, 아흔아홉마리를 들에 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것이죠. 한 마리가 아흔아홉마리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데리고 있는 아흔 아홉마리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더 관심이 간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이 문제있는 한 마리가 아흔 아홉마리보다 중요합니까? 계산이 안됩니다. 탕자의 비유도 그렇습니다. 두 아들이 있습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 밑에서 고생하고 수고하며 집안을 지켜 왔던 첫째 아들입니다. 누가 더 귀합니까? 이 비유를 보면 아버지의 가슴을 찢고 나가서 재산을 탕진한 둘째 아들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 묻지 않고 따지지 않고 입맞추고 잔치 벌려 퍼부어줍니다. 못난 자식에게 모든 것을 줍니다. 첫째에게는 염소 새끼 하나도 주지 않았습니다. 고생한 자에게. 탕자에게, 집안 살림을 다 말아먹고 돌아온 자에게는, 가락지를 끼우고, 새옷, 새신을 입히고 온 동네 사람 불러모아 잔치를 벌립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계산이 되지 않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고 있는 것이다. 자격없는 자에게, 퍼부는 사랑이 이런 것이다.
Matthew 26:15 (KRV)
: 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예수를 판다, 팔아넘긴다는 말입니다. 노예 시장. 사람을 파는 일. 노예는 물건으로 취급되는 시대였죠. 얼마면 되냐고. 이런 시대에 주님이 노예처럼 팔리는 순간입니다. 얼마를 주려느냐. 얼마 짜리냐고. 대 제사장이, 달아서 은 삼십을 줍니다. 예수님의 가치가 은 삼십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대단한 돈이 아니죠. 뒤에 보면 마태복음 27:7 에 조그마한 밭 하나를 살 수 있는 돈. 나그네가 죽으면 묘지가 필요한데 요만한 밭. 작은 돈입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그 몇만원 될 까요.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돈. 몇 만원 받고 예수님을 물건처럼 노예처럼 팔았다.
사랑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할 수 있고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사랑을 낭비로 보게 됩니다. 왜 그리 비싼 향유를 쏟아붓느냐. 왜 이걸 칭찬하시지. 다 낭비하는데. 이 공동체는 미래가 없는 것이구나. 다 쏟아부으면 남는게 없는데 이것을 칭찬하시다니. 내 안의 유다의 마음. 내가 헌신하는 것, 헌금하는 것 다 낭비이구나. (!)
마르다 마리아의 이야기. 주님을 섬긴 두 여인의 모습. 주님을 위해 밥상을 차립니다. 살림을 합니다. 돈에 관해 물질에 관해. 우리가 먹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신문에 온통 경제의 문제입니다. 왜 중요하지않겠습니까. 그러나 주의 발아래 앉아 주님 말씀을 듣는 마리아에게, 네가 더 좋은 것을 택하였다. 수고한 마리아를 다 아시면서 네가 더 좋은 것을 택하였다. 낭비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임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숨쉬고 우리가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일, 예배 드리는 일, 이 사순절 절기가 그래서중요합니다. 십자가를 붙들다 보면 건강해집니다. 우리 십자가를 놓치고 살거든요. 돈 보고 세상 근심으로 살았는데 이것이야말로 무익한 것이구나. 죽고 다시 살자. (!) 주님의 사정과 하나되어 새롭게빚어진, 거룩한 낭비의 기간. 정말 중요합니다. 소중히 여기는 자가 됩시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잘못된 유다와 같은 길로 가게 되는 것이죠. 멈춰야 하는데 멈추지 못하는. 돈궤를 다루는 사람이었다. 돈만 버는 사람이 위험한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세상적 지식으로 판단하고 하나님의 일을 낭비로 보고, 알량한 자기 지식으로 비판하는. 유다는 결국 그것으로 자신을 팔게 되고 파멸의 길까지 간 것이죠.
Matthew 27:3–4 (KRV)
Matthew 27:5 (KRV)
: 3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잘못되었던 거구나. 큰 죄를 저질렀구나. 마음이 정죄되어서. 괴로워서 뉘우쳤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던 것입니다. 예수는 팔려서 빌라도의 손에 넘어갑니다. 일은 끝납니다. 그래서 떨리는 손을 갖고, 자기가 팔아먹고 남은 은 삼십냥을 가지고 대제사장에게 가서 내가 큰 죄를 범하였다. 없었던 일로 하자. 그러자,
네가 당하라. 사단이 이런 것입니다. 안면을 싹 바꾸어서 네가 잘못한 거 아니냐. 니가 그랬으니 니 죄값을 받아라. 마귀인 것입니다. 속으면 안됩니다. 그 돈을, 유다가 이걸 다시가져가지 않습니다. 유다가 은을성소에 던져놓고,
: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돈때문에 내가파괴되고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했구나. 돈 때문에 우리가 시험들지 않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부정하고 훼손하고 신앙을 저버리지 않기 원합니다. 이것이 예수님 팔아먹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을 버리고 나면 괴로운 것이고 목매어 죽습니다. 그가 받은 사랑, 사랑의 능력, 사랑의 추억, 받은 게 있는 것.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받은 자는, 그 사랑 안에 거해야 살 수 있는데, 이 사랑 떠나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유다는 사랑을 보지 못했는가. 우리는 그 사랑안에 거하는자, 그 사랑위에 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약속을 굳게 믿고 그 사랑의 큰 능력을 따라서 그 주님가신 길을 따라 묵묵히 함께 가는 우리 신앙됩시다.
John 18:1–2 (NLT)
: After saying these things, Jesus crossed the Kidron Valley with his disciples and entered a grove of olive trees. 2Judas, the betrayer, knew this place, because Jesus had often gone there with his disciples.
In American churches, they like to call it prayer closet. They say, did you spend some time in your prayer closet? (!Water closet) You go into your closet, close the door and pray. It can be anywhere. This is where I want to have some time to get away from things and seek God.
This is something that is needed and Jesus went to find. It is very interesting that the name of this place is Gesthmane. Place where fruit of olives are squeezed and pressed while olive oil is being produced. Strange place to rest. To squeeze out to press the precious oil. This is the place where Jesus chose to rest. (!)
What it means to be fruitful. We learnt that the fruit we produce is taken by God who uses that fruit for even better things. This is the place where Jesus chose to take rest. Fruit is crushed through difficult process in order to be truly valuable. Place where oil is taken out of those fruits, there is heavy labor to do that. Jesus is taking rest there. (Jesus, my food is to do the will of God. It is my workplace where I sweat. It is my rest.)
Philippians 4:6–7 (NLT)
: 6 Don’t worry about anything; instead, pray about everything. Tell God what you need, and thank him for all he has done. 7 Then you will experience God’s peace, which exceeds anything we can understand. His peace will guard your hearts and minds as you live in Christ Jesus.
Not just by doing things you enjoy or by resting physically, in every situation, pray about everything. Talk to God about what you need and thank him for all he has done. It looks intense. Looks like tears, struggle, difficulties, can you surrender everything? Jesus found this place to rest. Jesus needed and continued to go there to find strength by praying. (!Maybe the reason I feel weakened)
Did you find yourself weakened so much, trying so hard that you cry? You can’t help but cry. Can’t take shower but cry. I was upset because are you questioning how much I am suffering and concerned about. Why are you asking me about crying? He was trying to come across that we often try to solve many things. We go through many things and find solutions. Answer is there and solution was there. But the way to find it was to pray. Peace and rest that is required to see things clearly is to go pour everything to God. (!) It’s a lot of works. It’s going to be messy, but it was necessary to find that answer and true peace.
This kind of quiet place, how often do you seek out? How often we go to our Gethesmane? We have to go there. I’m going to go there and pour myself out seeking rest. When you say I want to take rest and peace, I think about going out for dinner. Go spend time with family. Go read books. Go to this class. None of these are bad things to avoid. But when you need rest and you feel difficult, you need help from the Lord. It might become an issue to do something else. (!)
Trying to find God’s answer as father of two kids. Praying for my wife. He had to find time to do this. It was his priority. In the Bible, Jesus relaxed. Jesus took a nap. He went to dinner party stop thinking about all these and he was frustrated about all these. He did not take any rest. He surrendered continuously to God. (pouring out, like my download folder, continually, as I do that, just clean cut, live life that is transparent, not piling things up, both physically and spiritually.)
I just need time to rest. She says can you do something productive? I get upset about this. I couldn’t really get it. What you are doing is ok but not going to help you a long run. You will have to face this issue, you still face tomorrow. Why not reading Bible, why not praying? Thank God for my wife. (!)
Isaiah 56:7 (KRV)
Psalm 133:3 (KRV)
John 11:25–26 (KRV)
: 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사진들 보면서, 하나님 역사는 어떠냐면요. 실수하지 않으세요. 사람이 실수하죠. 때로는 내려가는 것 같으나. 그것은 멀리 뛰기 위함이고. (!) 고난은 뭘 주냐면, 인내하게 하는 힘을 주고요. 연단을 시켜서 새로운 소망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14년 지나니까 정착의 땅을 주셨다 생각합니다. 작지만 소중한 땅. 잘 우리가 지키고. 잘 지키면,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시겠죠. 이번에 와보니까 벌써 다 차서, 좋은 징조이고. 아시아에서 많은 사람들 오니까 더 인터내셔널 한 센터가 되어서 좋고. 이번에 아프리카, 인디아 다녀왔는데, 영국이 한 일이 상당히 크다. 역사의 대로를 연 것이구나. 주욱 그렇게 왔어요.
교회가 뭐죠?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죠.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교회는 천국의 열쇠이다. 천국에 가자면 열쇠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늘, 교회 가깝게 살기 원합니다. 이 곳은 천국의 열쇠 같은 센터가 되어라.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는 거죠? 우리 신앙의 삶의, 훈련의 목적은요, 천국에 가기 위함이다. (?!) 신앙이 깊어지면 알게 됩니다.
우리 신앙의 길을 분명히 예수님이 말씀하신 곳이, 이것 외에 없어요. 우리 신앙의 가장 큰 문제는 뭐냐면, 세계관에 관한 거에요. (?!) 다른 말로 하면 종말론에 관한 거에요. 종말론 뭐가 있죠? 개인의 종말과 우주적인 종말이 있어요.
죽인 것을. 주욱 왔어요. 항상 우리가 얘기하는 것은 뭐냐면, 잘 보자. 로마서 1장. 이것 하나만 잘 풀어도. 변증이 많이 된 것이다. 왜 예수를 믿어야 하죠? 왜 구원을 받아야 하죠? 왜 이런 말들이 다 필요하냐고. 1장에 나와 있어요. 하나님은 그냥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 이 구약이, 바울에게 가르친 가장 큰 깨달음이에요. 이것 모르면 사랑의 하나님을 알 수 없어요. 로마서 1장의 진노의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면. 다 이해가 안되요. 18절, 하나님의 진노. 죄 아래에 있는 인간 영혼에 관한 이해를 분명히 시켜야지, 예수 죽인 것을 진정 알아야 십자가가 보이듯이, 하나님 진노를 알아야. 왜 인간이 구원이 필요한가. (!개인적으로, 정말 너무 필요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사랑을 그 때 알게 된다.
복잡하게, 어렵게, 이상하게, 빌빌 꼬아 전하지 말고. 무슨 이론이 그렇게 학문이 논리가 필요한 것 처럼 하지 말고. 벧전 3:15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해 물어오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라. 예비할 게 없어요 사실. 롬 10. 하늘로 올라가겠느냐. 없다고. (!) 땅으로 음부로 내려가겠느냐고. 거기도 없다. 너희의 전할 말씀은 네 옆에, 네 입에 있다. 예전에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입으로 전했습니다. 초점의 모든 것은 어딨습니까. 왜 예수를 믿어야 하죠? 물음 없이는 해답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론의 초점은 뭐냐면요,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는 것이에요. 그분의 사랑과 은혜 알 수 있어요. 다른 접근법, 다른 해석과 이해란 공허한 것이에요. 여러분 선배들이 잘 가르쳤죠. 우리 교회가 부흥한 것이에요. 잘못 전하면 다 죽이죠. (!) 다 망하죠. 잘못 이해하면 다 죽죠. 다 죽어요. 진리 안에 있는 사람은 절대 죽지 않죠. (!) 진리의 문제에요. 진리의 문제입니다. 왜 꼭 예수가 필요하고 하나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야 합니까. 로마서 1장에 있는 거에요. 진노의 근거는 뭐에요? 18-21 절이다. 다 이미 해답을 주었는데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는 것이죠. 알고도 믿지 않으면 화가 있다. 알고도 전하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
그 결론은 뭐에요? 우리 안에 알만한 것을 주시고 (!) 하나님께서 지으심을 다 앎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죄짓고, 우상을 만들고, 죄를 더 만들고, 성적 타락하고 이런 악한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 이 종국의 결말은 사형이다. 영벌이다.
사랑, 사랑 하면 가볍고 공허해요. 진노를 이해해야 해요.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 분노를 이해해야 한다. (!)
길. 우리 인생이 헤매이는 것은 이 진리를 알지 못하면 길을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헛된 것을 좇고, 모든 정열을 쏟아놓는 것. 돈에 미치고, 정욕의 노예가 되고, (money, sex and power) 인생은 간단한 것입니다. 세계관에 관한 문제, 종말론에 관한 문제이고, 개인의 종말에 관한 문제인 것. 죽음에 가는 그 세계에 있는 것이라고. (!)
아시아를 순회하면서 이 세계를 지으신 분이 있다고 하면 있다고 하는 게 답답합니까 없다고 하는게 답답합니까. 이 우주를 지으신 분. 뭐가 바보같은 대답입니까. 시 53편, 어리석은 자가 하나님 없다 한다. 그런 대답 할 수 있다는 거에요. 그 어리석은 대답은 인간이 신을 만든 것이라고. 객관적 관념을 투영해서 만든 것이라고. 유령이 이리저리 배회하였죠. 그 분이 우리 삶을 심판하신다. 심판하지 않는다. 어떤 게 더 좋습니까? 심판해야죠. 그래야 정의가 드러나니까. 억울한 사람 없을 것이니까. 그죠? (그게 더 좋아서 사실 나도 믿었다!) 성경의 메세지는 시작서부터 끝까지 희망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는 것이 희망적입니까 없는 것이 희망적입니까? 있는 것이 희망적입니다. 문제는 뭐냐면, 그 세계를 준비하고 사느냐 살지 않느냐이고 천국으로 지옥으로 가는가가 문제이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개인의 종말이라는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약속은 소망입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길이고. 그런데,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이것을 세상은 어렵게 가르칩니다. 말 못하는 엄마가 가르치니까 자식도 말을 못해. 핵심을 끄집어 내어 가르치지 않으니까. 엉뚱한 것으로 인간 영혼을 오도한다. 뭐라고. (이번 연도 나에게 주신 말씀)
John 13:19 (KRV)
John 13:28–29 (KRV)
John 13:30 (KRV)
: 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이 말속에는 뭘 봅니까. 제자들이 아무도 몰랐다. 아무도 알지 못했다. 누가 배반할지. 옛날에 티비 예능프로그램 중에 이런 것, 엑스맨을 찾아라. 누군가의 지령을 받은 한 사람이 자신을 숨기고 지령을 수행하는 것.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찾아내야 합니다. 사단의 지령을 받은 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찾아내야 하는데, 아무도 모르고 오직 주님만 아십니다. 배반의 끔찍한 일을 행할자 아무도 모른다. 오늘 날 교회 안에서도 이런 훼파, 무너뜨릴 자가 들어와 있는데 아무도 모르는 그런 상황과 같습니다.
주님이 아시는데, 끝까지 유다를 바꾸어 내시려는 것이죠. 몸소 보이시고 끝까지 가르치시고,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배반자까지도. (!)
: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살림을 맡았던 유다. 할 일 그거 빨리 하라. 이렇게 들었다. 앉은 자중 아는 자가 없고. 요한의 복음, 요한 안에 있는 부끄러운 고백, 슬픈 고백일지 모릅니다. (!) 이순간 이게 무슨말인지 알았더라면, 그 비극이 일어났을까. 주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그 뜻을 잘 알기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고, 늘 깨어있는 자가 되어야 하고, 유다처럼 강퍅하지 않고 가난해져서 주님의 말씀을 삼가 들어야 한다.
: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낮과 밤. 그게 아니라 유다는 주님의 그 사랑을 알지 못했고 마지막 최후의 권면까지 받지 않고 주님이 떼어주신 떡을 받고 주님을 팔러 나갔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유다는몰랐다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몰랐다. 주님은 그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셨다.
요한복음 13:30
고린도전서 10:12
그가 왜 그 사랑을 저버렸을까? 그는 주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주님이 하는 행위들이 조롱같고 엉터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의 뒤틀린 야망과 욕심, 그리고 부정직함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던 것이다. 그래서 끝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부하여,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나갔다. 그러나 유다에게는 이것에 대해 변명이 있을 수 없다. 그는 그리스도가 제자로 선택하신 사람이었고, 그의 자유의지로 인하여 제자가 되었고, 또한 그의 자유로 배반자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서 있으나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로 말미암아 우리도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 우리도 주님 곁에 있어도 주님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랑을 모르면, 유다와 같이 헐값에 주님을 팔매, 자기를 팔 수 있다. 우리가 설 길은 단 하나지만 우리가 넘어지는 길은 수만가지이다.
: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요한복음 13:31-32
31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왜 십자가가 영광일까?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에 반드시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나갈 때 최고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다. 주님은 어두운 골짜기 너머 영광의 봉우리를 보신 것이다.
요한복음 13:34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께서는 동일한 말씀을 왜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예수가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니 새 계명일 수밖에 없다. 죽음이 목전에 다가와도 자기의 사정에 빠지지 아니하고 제자들을 한결같이, 조건 없이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의 사랑을 닮아서 사랑해야 하니, 이것은 구 계명이지만 동시에 새 시대의 신선한 새 계명이다.
제자들은 최후의 순간에도 서로 누가 크냐고 다툼을 하는 그런 죄적인 인간의 표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다.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실정도로 너무나 깊게 사랑하셨다.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자들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며 어렵지 않은 일이다. 세상도 이런 사랑을 한다. 그러나 예수가 제자들에게서 보기를 원하는 사랑은 이런 세상적인 사랑이 아니다. 예수는 제자들이 예수의 사랑으로 온전히 변화하여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3:36
36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결국 죽음의 그림자가 그를 사로잡은 최후의 순간에는 다른 제자들과 다름없이 주를 버리고 도망갔으며, 더 나아가 주를 저주하며 부인하였다. 베드로 자신이 자신을 아는 것보다 베드로를 더 잘 아셨던 주님은 베드로가 그날 밤 주를 부인할 것을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그 말씀에 너무나 놀랐으나, 결국은 그 말씀대로 되어버렸다.
예수를 따르는 것이 영웅적인 행위(a heroic act)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은 베드로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예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고, 또한 그의 부르심과 나의 응답함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선물이지, 우리의 용기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간적인 능력에 대한 낙관적인 추측이 우리를 인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알고, 끊임없이 주님의 도움이 필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우리의 모습의 모든 것은 우리 주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이다.71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믿을 수 없는 용기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겸손히 주님께 의지하여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해야 한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은 바로 하나님 사랑의 품 속(the bosom of the Father’s love)이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보여주셨던 그 끝없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지 않기에 예수를 따라갈 수 없다. 우리가 이 희생의 사랑을 알 때 주님이 가시는 곳, 하나님의 사랑의 품 속으로 우리도 갈 수 있다.
예수의 위대함은 비겁자(coward) 안에서조차 영웅의(heroic) 모습을 보시는 것이다;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시는 것뿐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실지를 보시는 것이다.
John 14:16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한 마디로 순종이다. 요한에게 있어서 사랑의 시험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으며, 그 시험은 순종이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아무리 나쁜 환경 가운데 처하고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사랑하는 자의 뜻에 순종한다.
우리의 약함을 아시는 주님은 우리 홀로 이 어려운 길을 헤쳐나가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보혜사’를 보내신다고 약속하신다. 돕는 자, 격려자, 위로자 등의 의미이다. 진리의 영, 성령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지상사역을 마감하시고 아버지께로 가셨을 때, 이 성령은 제자들에게 보내져서 제자들과 함께 영원히 거하고, 제자들 안에 있게 된다.
“내가 너희에게 힘든 과제를 주지만, 너희가 무엇을 해야할지 안내해주고, 또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실 파라클레토스도 보낸다. 성령이 너희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진리를 위한 싸움을 싸워나갈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사랑의 주님은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오늘도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신다.
요한복음 14:22-23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순종하며 믿는 사랑하는 자에게 예수는 자기를 드러내신다.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하나님의 계시는 사랑에 달렸다. 우리가 하나님께 더 많이 순종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많이 이해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그 어떤 높고 강한 것이나, 왕이나 대통령, 부자나 유명한 자, 학식 있고 위대한 자들에 감격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남자, 여자, 소년, 또는 소녀에게 저항할 수 없이 끌리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그 누구와 거처를 함께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 중에서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거처를 함께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심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온 우주의 귀족(aristocracy)으로 삼으신다.
우리 안에 너무나 큰 절망감과 공허감으로 우리의 마음이 어두워질 때, 곁에 주님이 계시지 아니한 것 같고 홀로 남겨진 것 같을 때, 오늘의 주님 약속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죽음의 현실 앞에 주님의 약속은 사랑의 약속이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사랑의 끈으로 묶어 영원히 함께 하시며, 그 안에 거하시며, 거처를 함께하시기를 원하시는 나의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주님은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성령을 주시고, 세상의 거짓된 평화가 아닌 주님의 참된 평화를 주신다. 그러므로 죽음의 현실이 눈앞에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우리 마음에 주님을 사랑하지 않음을 근심하지, 우리 앞의 죽음의 현실은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들을 때에 마음이 더욱더 겸손해져서 하늘의 이 귀한 생명의 진리를 놓치지 않고 마음속에 영영히 새기는 자들이 되기 원합니다.
요한복음 15:19
마태복음 5:11-12
: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사실 그리스도를 제일 앞에 두는 자에게 핍박은 항상 찾아온다.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은 이처럼 말한다: “세상은 천사가 천사가 된다고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미워한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인격에 대해서 유감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평화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세상을 격분시킨다.”
우리가 예수를 따름으로 말미암아 멸시와 증오를 받는다면 우리 주님이 겪으신 멸시와 증오를 우리도 동일하게 겪는 것임을 알고 주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할 때 위로와 용기를 얻고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증오와 하나님의 사랑 사이에 서 있다. 세상은 미워하였으나 주님은 그 미움을 미움으로 갚지 아니하시고 세상에 가장 큰 사랑을 주셨습니다.
예수의 죽음이 당신의 죄를 어떻게 사해주는지를 당신은 이 세상에서 결코 알 수 없다.-아마 하늘에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믿어야 하고 흠모해야 할 신비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을 바라본다면, 왜 예수가 죽으셨는지 첫 눈에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사랑, 사랑 그 자체, 끝없는 사랑, 정복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사랑, 영원토록 거하는 사랑이셨기에 죽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인간의 그 어떤 죄나 반역으로 냉담해지거나 좌절할 수 없고, 인간을 여전히 사랑해야만 한다. 그들에게로 나아가 그들을 찾고 구해야만 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고통과, 수치와 죽음 그 자체도 그들을 위하여 고난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 사랑은 단지 영원토록 거하는 절대적이고 완벽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5:24
로마서 1:28
: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 우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죄는 오직 예수를 미워하는 것, 결과적으로 예수를 보내신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주님을 미워하는 것이 죄이다. 하나의 큰 계명이 사랑이라면, 하나의 큰 죄는 미움이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이것이 바로 죄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기 위해 오신 아들, 전 생애 동안 가장 낮은 자리에서 종의 형체를 쓰고 자기 부정의 사랑의 길을 걸으신 하나님의 아들, 이 주님에게 십자가로 보답한 것은 죄 중의 죄이다. 더욱이 이 죄는 같은믿음의형제들이하나님을섬기는예로믿어의심치않고행한일이다.
주를 십자가로 몰고 간 자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하는 시대의 종교인들이었다는 영적 진리를 잊지 않고, 행여 우리가 이러한 무서운 죄에 빠질까를 두려워하기 원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찾으시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우리의 사랑임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 돌과 같이 굳어져 버린 완고하고 교만한 마음이 있다면, 주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요한복음 16:7-8
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책망한다(reprove, convince, elegchein)’는 말은 증인의 반대 심문(cross-examination), 재판에 있는 사람 또는 토론의 상대를 위해 사용하는 단어로서, 상대가 잘못을 인식하거나 시인할 때까지, 혹은 알지 못했던 주장의 힘을 인정할 때까지 그를 반대 심문한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는 죄를 감지하지 않고는 구원자를 찾지 않으니, 우리에게는 죄의 감지가 필요하다. 의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없으면 죄인은 절망으로 죽게 될 터이니, 우리에게는 의에 관한 믿음이 필요하다. 죄는 결국 불행한 결말을 맺을 것이고 마침내는 정복될 것임을 알지 못한다면, 당황한 병사는 오랜 전투를 희망 없다고 포기할 것이므로 우리는 심판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와 사랑의 상징, 십자가가 서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어주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서 있다. 이 은혜의 신비를 거절하는 것보다 인간의 마음에 내재하는 악을 더욱 선명히 증명하는 것은 없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믿는 주님은 승리자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다. 복음서 전체가 우리 주님이 영원히 사단을 패배시키셨다는 싸움(duel)의 이야기이다. 그 싸움은 광야에서 외로운 유혹으로 시작되어서 주님의 지상 사역 가운데 만연했고 십자가로 극에 이르렀다. 십자가는 이 세상 역사의 위기였다: 이 세상 임금이 하나님의 아들과 마지막 싸움에 자신을 겨루었다. 만일 그가 이겼더라면 악이 지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패배했기에 하늘에서부터 번개와 같이 떨어졌다. 성령은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시고 이미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심판하셨다.
주님의 놀라우신 희생은 우리 가운데 성령의 새 시대를 열어주셨다. 이 하나님의 영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서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신다.
이 모든 성령의 역사는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내려온 하나님의 축복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오늘도 성령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요한복음 16:13
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계시하신다. 성령의 계시는 점진적으로 진행 (progressive process)된다. 주님은 이를 것이 많으셨으나 듣는 자들이 감당하지 못하여 다 말씀하실 수 없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적 수용력에 맞추어서 우리를 훈련시키신다. 진리는 듣는 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이해할 수 있는 만큼만 선포된다.
성령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진리를 더 깊게 드러내신다. 성령이 드러내는 진리는 ‘예수 안에 있는 진리’에 추가된 진리가 아니라(엡 4:21), 예수 안에 있는 진리가 더 깊게 드러나는 것이다.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와 중요성의 계속적인 열림(opening)이다. 우리가 예수와 가까운 삶을 살수록, 더욱 예수를 잘 알게 된다. 우리가 예수를 닮을수록 예수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말해주실 수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수록 더 많은 진리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진리는 조화롭게 간다.
진리는 인간의 발견이 아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에게 진리를 밝혀주시는 성령은 예수가 그 피 값을 치르고 남겨진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성령은 그때의 예수의 제자들과 동일한 상황에 처해있는 수많은 이 시대의 제자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준다. 성령이 교사이고, 예수가 교과서이며, 순종이 지식의 필수적인 조건인 이 하늘의 학교에서 우리가 참을성 있고 열렬한 학생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의 인도 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요한복음 16:22
고전 13:12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종국에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고전 13:12) 주님을 볼 수 있게 되는 휴거(rapture)를 기다리게 한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그를 본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의 고난은 근심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믿음의 눈을 열게 하여 부활의 주님을 보게 하고 기쁨이 가득하게 인도한다.
우리가 암흑 가운데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조금 있으면 기쁨 가운데 주님을 보리라는 이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