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 July 2019 Flashcards

1
Q

Joshua 1:8 (KRV)

A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먼저 영적인 책이죠, 성경이. 풍성한 하나님의 표정을 놓치지 않으려면 상식적으로 읽는 버릇이 있어야 합니다. (!) 멀쩡한 사람에게 두려워하지마, 강하고 담대해. 그럼 화나겠죠? 지금 여호수아가 두려워한다는 거에요.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문제 앖에 연약함과 두려움이 있었고 힘든 부분이 있었구나. 성경은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책도 아니고 본받아라 하는 위인전도 아닙니다. 초라하고 부족한 이들과 방불한 인간을 어떻게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드러내는 책입니다. 성경을 용전으로 전락시키면 안됩니다.

두려움, 연약함, 불순종, 형편없는 바보같은 모습을 얼마든지 드러냈습니다. 과연 여호수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연약함은 무엇이었을까.

여호수아 하면 투철한 군인상이 떠오릅니다. 장군의 이미지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자 하는. 시중에 있는 설교를 들어보면 여호수아를 리더쉽의 교본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리더쉽의 내용으로 소개한 부분이 없어요. 뜻밖에 불안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두번째는 가나안 = 천국 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 이게 맞다면 전쟁이 있어야 할까요? 들어가자마자 싸움판이거든요. 가나안은 천국의 모델이 아니에요. 가나안이라는 정확한 해석을 존 리치라는 분이 쓴 작은 소책자를 통해 지역과 의미에 대해 썼습니다. 천국의 모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순종해가는가 라는 싸움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적부터 주신 땅입니다. 점령이 아니라 순종해서 얻는 땅입니다. 점령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선교도 그런 식으로 이해합니다. (!) 이미 언약으로 주신 땅입니다. 얼마나 순종하는지 드러내는 책입니다. 리더십이 아니라 순종에 관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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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Joshua 1:1 (KRV)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다
Deuteronomy 34:7 (KRV)

A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모세가 누굽니까. 이스라엘의 아버지같은 존재에요. 저희들이 대학다닐 때, 1-2학년 때, 12.6 사태가 일어났어요. 부하가 대통령을 저격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났어요. 권자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나라가 절단나는 것 처럼 생각했어요. 국민이 받았던 충격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 이상입니다. 모세가 죽었어요.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사람이 아니라 갑자기 죽었어요.

신명기 34장을 봅시다.

7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건강한데 그런데 왜 죽어요? 갑자기 죽은 거에요. 그의 임무가 다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셨어요. 2인자인 여호수아의 입장에서는 졸지에 황당한 일을 당한 겁니다. 백성들과 여호수아를 흔들었던 근본적 두려움. 이거 어떡하나. 모세의 처절한 고통을 여호수아만큼 같이 한 사람이 없어요. 이 백성들의 못되고 악한 모습을 참모로서 같이 주욱 지켜보았습니다. 돌멩이 던져서 협박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가장 근거리에서 겪었던 사람이 여호수아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모세가, 내가 백성들을 낳았습니까? 왜 나한테 맡겨서 생고생 시킵니까? 나를 데려가 주십시요. 이 백성의 완악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요. 모세는 죽었어요. 갑자기 떠났어요. 백성들은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이 철옹성으로 지키고 있는 호락호락 하지 안하요. 범인일진대 두려웠을 것입니다.

청년들도, 졸업은 앞두고 있는데 스펙이 있나, 집안에 백이 있나, 학교가 번듯하나, 미래가 잘 안보여요. 30-40대는 아래 위로 치이는 세대입니다. 애들은 커가죠. 나이는 급속히먹죠.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죠. (!) 이럴 때, 여호수아같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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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Joshua 1:3 (KRV)

Joshua 1:8 (KRV)

A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들어갔어요? 안들어갔어요. 시제는 완료형으로 되어있어요. 미래완료형 시제라고 신학에서 말합니다. 성경에 많아요. 반드시 언제 주로 쓰여졌냐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이건 확실히 된 것과 같은 상황일 때. 아무 진척 없고 시작된 것 없지만. 하나님 언약으로 된 것과 같을 때. 강조하는 차원에서. 이 미래 완료형 시제를 씁니다. 지금 이 땅은 점령일 뿐 아니라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아직 진입도 안했는데 줬대요. 될 일입니까 될수도 안될수도 있는 일입니까? 이런 미래 완료적 시제는 반드시 됩니다. 누구의 기도나 예언을 붙드는 게 아니라 기록된 언약을 붙들어야 해요. (!어떻게 이런 것 성경에서 찾죠? 우리에 나에 우리 교회에 관한 예언이 성경이 있을까요?)

하나님, 이거 말씀하셨잖아요. 표현이 거시기 하지만 그러면 끝나요. 하나님 이것 약속하신 것 아닙니까? (!나는 약속 많이 했는데. 하나님은 말씀 통해서 약속하시니까) 보복이 두려워 붙잡혀 있을 때, 재공격해서 덮치면 어떡하지, 아브라함이 위협속에서 두려워할 때 밖으로 데려나가십니다. 하늘에 별 보이지, 예, 네 민족이 저렇게 될 것이다. 바다의 모래알, 네 민족이 그렇게 될 것이다. 정작 자식도 없었어요. 그렇게 약속하십니다. 기가막혀하니까 사인을 보이시기를 고기 사이로 횃불이 지나가게 하면서 계약서에 도장찍듯이 확실히 하세요. 하나님은 역사의 행위를 약속과 언약을 통해 진행하십니다.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시편을 여는 말입니다. 묵상. 메디테이션. 사실 정확한 번역은 명상입니다. 묵상은 달라요. 청년 몇놈 잡으러 저도 삼각산까지 쫓아갔어요. 두녀석이 명상한다고. 명상이 뭔가요? 눈을 감으세요. 둥근해가 떠오르죠? 눈감으면 반짝반짝한게 떠오르죠. 묵상은, 들짐승이 배고파서 그렁거리며 밤에 잠 안자고 온 들녘을 찾아 돌아다녀요. 한 경점에 먹이감을 포착했을 때. 또 하나는 소가 음식을 먹고 반추합니다. 슥슥 갈아요. 삼켰다 뱉었다. 되새김질. 이 두가지 개념이 묵상입니다. 눈 감고 음~ 하는 한가한 개념이 아니에요. 강렬하게 목이 갈하게 말씀을 묵상하는 그런 행위에요.

이 묵상이라는 말은, 말씀의 강렬한 내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에요. 묵상하여… 다 지켜 행하라… 네가 형통하리라. 성경에는 뜻밖에도 형통이라 표현했으나 전혀 다른 단어로 표현해요. 요셉이 보디발의 종으로 팔렸는데 찬송가 후렴으로 따라붙는 단어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했다. 히브리어로 찰라흐 라는 단어를 써요. 인간적인 번영은 셀라흐 에요. 한글로는 형통이라는 같은 단어로 썼어요. 인간적인 번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진행될 때 쓰는 찰라흐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목마른 짐승처럼, 허기진 짐승처럼, 베뢰아 사람처럼 씹고 삼키고 되새김질 할 때에, 우리 귀에 누구의 섭리와 계획,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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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Joshua 1:12–16 (KRV)

A

12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13 므낫세 반 지파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14 너희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고
15 여호와께서 너희로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 형제도 안식하게 되며 그들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얻게 되거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찌니라
16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소테림을 불렀는데 열두지파 중 세 지파를 따로 소집합니다. 므낫세 반쪽이 나서 반 지파입니다. 요셉의 자손. 또하나는 갓 지파. 그리고 르우벤 지파. 이 세 지파에게 명령하기를, 1진, 2진, 3진은 이 나머지 아홉지파 반 형제들과 강을 건너가서 다 전쟁을 하고 다 안식을 경험한 다음에, 완전히 점령한 다음, 승리를 마쳐놓고 다시 건너와서 너희가 원하는대로 살도록 해라 이런 명령을 해요.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이유가 있습니다.

르우벤 지파는 성경에 표현하기를 이 르우벤은, 야곱의 열두아들 중 장남이에요. 근데 장남 구실을 못하고 서마와 못된짓을 하죠. 장남의 자리에서 내몰려요. 이 사람은 야곱의 유언을 보면 엄청난 다혈질입니다. 이 사람 손에, 굉장히 많은 살육이 일어납니다. 싸움하는 데는 서러워할만큼 전쟁에 능한 지파에요. 갓지파는 이름 자체가 군대라는 뜻이에요. 선봉에서 서요 전쟁에는. 용맹한 기질을 가진 군인 집안이에요. 진적이 없어요. 므낫세 반 지파는 이름 자체가 용사라는 뜻. 기드온이 있어요. 세 지파 공통점은 전쟁에 능해요. 그래서 조상적 부터 전쟁했다 하면 이기는 거에요. 이기다 보니까 땅도 좋고 좋은 땅을 차지하고 또 노획물이 많아요. 역할에 따라 분배하다 보니까 항상 분배가 많았어요. 그럼 살림 살이가 괜찮죠.

사람이 근데 배가 부르면 약속을 주장합니까 아니면 슬슬 잊어지게 됩니까. 민수기 때 모세 때 이 세 지파가 와서 욕을 해요. 뭐 꼭 강 건너가서까지 싸울 이유가 있냐 우리가. 이스라엘 땅은 요단을 중심으로 저쪽 이쪽이라는 표현이요. 지중해 반대쪽입니다. 이쪽은 굉장히 비옥한 땅 천지에요. 이 세지파가 요단을 코앞에 두고 안건너려고해요 모세 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뚜르뚜르뚜르. 구태여 강 건너가서 구차하게 싸울 필요 있겠느냐. 배가 부르니 안이한 생각이 발동되고 뭘 놓냐면 하나님께로부터 주신 약속을 놓게 됩니다. 모세 때, 한 가지 부탁합니다. 그래도, 너희가 용맹한 형제들인데 셋 빠져나가면 핵심이 다 빠져나간다. 형제들이 얼마나 실망하겠냐, 가나안 땅 안들어가도 좋으니까 전쟁만 해라, 도로 건너와서 너희 원하는대로 살아라. 이 얘기입니다. (!!주여…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

모세 때부터 약속해진 거에요. 요단 직전에 상기시킵니다. 이것 잊지 말자. 전쟁은 해줄게. 사는 건 이쪽에서 산다. 경계선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 실리와 이익 때문에 약속을 놓아버린 사람들이에요. (!) 뜻밖에도 그리스도인들에는 경계선에 의외로 많아요. 절실하고 절박할 때는 은혜를 주장하고 약속을 붙들어요. (!리치) 그런데 등따시고 배불러지고 평안해지면, 므낫세 반지파, 르우반, 갓 지파의 행태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상기시켜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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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Joshua 1:16–17 (KRV)
Joshua 13:13 (KRV)
Psalm 106:34–36 (KRV)

A

16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17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 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아 걱정마세요. 갈게요. 싸워줄 테니까. 여기 들어가서 안살고, 이쪽 동편에서 돌아가서 살테니까 그것만 다짐해주시고 걱정마세요. 그렇게 정말 되었나요?

13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더라

못한게 아니고 쫓아내지 아니하였어요. 시편 기자가 정확하게 들추어냅니다.

34 저희가 여호와의 명을 좇지 아니하여 이족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35 열방과 섞여서 그 행위를 배우며
36 그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이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매력적인 문화. (!) 쫓아내기에는 너무 달콤했거든요. (!) 쫓아내지 않았고 그것이 거대한 세력으로 일어나서 올무가 되었어요. (!) 그리스도안에 삶 사는 공동체에게 주는 준엄한 경고입니다. 사소하고 작아보여서 남겨두죠. 시간이 지나고 죄성과 결부가 되면 우리가 떨쳐낼 수 없는 괴물로 일어나요. 이게 역사의 무서운 역사성입니다. 엄청난 괴물로 일어나요. 결국 나중에는 쫓아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의 삶. 특히 가나안의 싸움은 성결의 싸움이요. (!) 성결은, 성경이 말하기를,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존하는 것을 성결하다고 합니다. 그 안에는 윤리적 도덕적 문제가 있어요. 가장 선명한 성결의 가치는 하나님의 은혜만 의존하는 그 태도를 성결하다고 합니다. 신랑 신부의 최고가치는 성결이요. 당신만 100% 사랑해. 이고백이요. 그것을 성결하다 해요. 이런 경우 가능할까요. 여자가 삐져요. 알고보니까 남편이 옆집 여자를 1% 사랑해요. 당신은 99% 사랑하는데 쫀쫀하게 1% 가지고 삐지고 그래. 전부 아니면 전무에요. 사랑은 올인이에요. 성결하다고 얘기해요. 그리스도인의 성결은,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은혜의 속성이에요. 가나안 싸움의 가장 큰 가치입니다. 우리 내면에 공동체에 그 싸움이 계속 들어올 거에요.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오직 그리스도께만 은혜로 의존하는 귀한 고백의 걸음을 걷도록 기치를 높게 들고 걸어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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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Q

Joshua 2:10–11 (KRV)

A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중요한 단어, 우리가 듣자. 로마서 10장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라합의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어요. 들음으로 난 믿음이요. 열왕기에 보면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죠.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께 처음으로 구했던 것이 뭡니까, 지혜요. 부도 귀도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했구나. 그 때는, 그 지혜는 뭘까요. 렙쇼메아, 딴 지혜가 아니라, 잘 듣는 마음.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는, 잘 듣는 귀를 구했어요. 잘 듣는 마음이요. 성경의 지혜는 잘 듣는 마음이요. 심지어는 누구의 소리까지요, 한 가련한 창기의 아픔의 소리까지 들어요. 아기 하나를 두고 유명한 재판의 일화. 생모가 내가 포기하겠습니다. 기록된 바 자궁에서 불타는 모성의 소리를 들었다. 잘 듣는 귀가 있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귀에요.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 중요하지만,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열망이 열려있다는 거에요. 귀가 열려있다는 거에요. (!)

지금은 여러분 모르는데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복입니다. 청년 때부터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즐거워하는 심령이 된 사람은 그 복이 평생따라가요. 참 신기해요. 여러분 복받은 줄 아세요. (!) 집에 앉아서 티비를 여기저기 틀어보세요. 매력적인 티비가 얼마나 많아요. 이게 왠일이에요, 왜 여기 와 앉아있어요. 이게 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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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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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6:25 (KRV)

Hebrews 11:31 (KRV)

A

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가나안에서 가장 처절한 몸부림으로 살았던 한 여인. 국가적 기준으로 따질 때는 안해야 할 짓을 했어요. 게다가 자국의 군인들이 와서 심문할 때 윤리 도덕적으로 거짓말을 해요. 한 군데만 읽어드릴게요.

히브리서 기자는 이 라합의 행동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봅시다.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나는 이 싸움 예수님 피로 합니다. 이 믿음으로 한 거에요. 야고보서는

사자를 접대하여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니냐? 행함으로요. 다 들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소문을 들은 대로, 거기에 운명을 건거에요. (!) 믿음의 결단을 한 거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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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Q

Matthew 1:3–6 (KRV)

A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처절한 인생살았던 라합의 이름이 그리스도의 왕의 족보에 떡하니 올라와 있는 이것, 구원이에요. 구원받을 수 없는 조건 없는 인생이 이렇게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구원받습니다. 그 말이 6:25 의 그가 오늘까지 우리중에 있느니라. 바로 가나안의 점령은, 그런 조건으로 들어가는 거에요. 들어갈 수 없는 조건인데 그리스도의 은혜로 들어간다 이거에요. 어떤 내용입니까. 왜 홍해를 건너는데 왜 요단 건너요. 차이가 뭐였죠? 홍해는 말그대로 세례요.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으로 구원을 입는 사건이요. 요단은 구원 입은 사람들이 얼마나 순종하는가. 그래서 매일 전쟁이었어요. 이 초입에, 라합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우리 같이 라합처럼 죄 많은 연약한 인생들이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 땅에서 이제 왕의 족보가 되어가는 싸움이요. (!) 그가 오늘까지 있느니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결국, 이 여인을 통해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얼마나 지난 40년간 바보같은 생활을 했는가. 하나님의 확고한 약속들을 우리가 얼마나 믿지 못하고 살았는가 이 가련한 여인의 입술을 통해 확인받고 들어가요. 구원이 무엇인가. 라합처럼 희망없이 살던 인생이었는데 오직 그분께 내 전생애를 걸고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는 그 가나안을 향해 매일, 라합처럼 절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없이는 나는 안됩니다. 크기의 싸움, 확률의 싸움 아니에요. 이스라엘 군대와 여건과 조건 한 마디도 없어요.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고 대적을 물리친 것을 내가 들었다. (!) 이스라엘 형편이나 군대가 나옵니까? 아니요. 일절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고 그는 생애를 걸 결단을 합니다. 앞으로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남겨져 있어요.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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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Q

Joshua 3:1 (KRV)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다
Numbers 25:1–5 (KRV)
브올에서 생긴 일

A

1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

여기에서 세 날을 보내죠. 구약의 지명은 정말 중요합니다. 어디에서 떠냤냐면 싯딤에서 떠났다고 구태야 밝힙니다. 이스라엘의 어떤 장소이길래, 이 위치를 구태여 밝혔을까요.

25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5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소였어요. 광야 노정중에 가장 악한 짓을 마다하지 않았던 현장이요. 거기가 싯딤이요. 우리에게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라면 머리를 흔들어버리고 싶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 그런 현장이 제게도 있습니다.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자면, 생각만 하면 끔찍해. 통증이 있고 그 생각만 하면 고통스러워요. 누구나 하나님 앞에 그런 싯딤의 현장이 있고 우리는 요단을 가기 위해 그 싯딤을 떠나야 합니다. (!) 요단이라는 말은 내려가다 라는 말입니다. 지형도 그래요. 싯딤에서 떠나 요단으로 내려갑니다. 싯딤은 이스라엘의 괴로운 역사의 현장이요. 말뚝을 뽑다. 라는 말. 어둠을 흩어내고, 지난 역사를 흩어내고 새 날, 햇빛이 돋는 새 땅을 향해 가려면 이 전제가 없으면 안되요. 반드시 싯딤을 떠나야 요단으로 갑니다. 분명한 전제에요. 강력한 하나님 말씀의 능력에 붙들려서 치유도, 회개도, 의식도 바뀌고, 결단도 일어나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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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Q

Joshua 3:2 (KRV)

A

2 삼 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여기에서 사흘을 기다리게 합니다.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상상을 해보세요. 사람이 제일 못하는 게 뭐죠.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는 것. 가장 인간이 본질상 힘들어 해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니까 믿음이 좋다고 생각해요. 아니요, 믿음이 뭔지 설명이 잘 되어서 그래요. 하나님의 은혜를 제일 잘 설명할 수 있어서 믿음의 조상이에요. 아들이 있으리라.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십년 뒤 하갈에게 들어가 생산을 해내고 맙니다. 칠흙같은 13년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어요. 가만히 계시면 고문이에요. 언제 부르시려나. 늘, 이게 형벌이에요. 86세에서 13년 후 99세 때 첫 말씀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나는 전능자라. 나는 세다. 이게 아니라 거기에는 엄청난 꾸지람이 배어져 있었습니다. 너 왜 나를 신뢰하지 않았냐, 이 질책이 발언에 녹아져 있습니다. 나는 전능자라. 아브라함을 항복시키죠. 아브라함의 가족에게 할례를 명합니다. 그리고 난 아들이 이삭이요.

성경을 중심으로 아브라함의 할례 를 중심으로 그 전이 이스마엘, 그 후가 이삭이라 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기준이고 우리 신앙생활의 중요한 작업입니다. 남자의 생식기 끝을 잘라내는 과정이고 너는 육체적으로 죽었다 이 말입니다. 약속의 자녀이지 네 힘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다. 이스마엘은 힘써 자기 실력으로 낳았어요. 인간이 힘써 자기 실력으로 하는 게 이래요. 할례 후 낳은 이삭, 아브라함을 통해 낳았지만 육체적 실력이 아니라 은혜로 주신 것을 말해요. 이삭을 약속의 자녀라고 말해요. (!)

인간이 제일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정확한 타이밍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 하나님이 망신 당할거 같아. 하나님 약속이 깨질 것 같아서 좀 힘좀 쓴 게 이스라엘 낳은 거에요. (!) 얼마나 뒤틀리는지 아시잖아요. 사람이 해놓은 짓이요. 엎드려 기다리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미치는 거에요. (!) 죽을 것 같은 그 때,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세요. (!)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데요. 보통 하나님께 붙어있지 않고서는 안되요. 거룩하다 성결하다는 윤리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께 얼마나 내가 밀착되어있는가의 싸움이요.

또 기다렸다 때를 놓쳤던 사람이 누구죠. 사울왕이요. 선지자가 안오니까, 번제를 그냥 드려요.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더라. 좋지 않은 조크이죠. 피가 끓을수록, 몸이 뜨거울수록 하나님 시간을 못기다려요. 창세기에 보면 전부 그 싸움이요. 아브라함과 롯의 선택에서도 롯은 결국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온 동네를 찾아다녀요. 결국 그리고 찾은데가 소돔과 고모라. 네온 사인, 물좋고 정자 좋은 곳. 아브라함은 엎드림. 업 드림. 기가막힌 주제에요. 엎드려야 업 드림이 되는 거에요. (!) 그 때부터 하나님이 꿈을 주시기 시작해요. 요단 건너기 전 삼일의 훈련입니다. 몇가지를 명령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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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3:3 (KRV)
Numbers 17:10 (KRV)
Joshua 3:3–6 (KRV)

A

3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아론의 두쌍난 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 십계명이 담겨진 돌판. 성전의 안쪽을 지성소라고 합니다. 일년에 한 번씩 대제사장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 앞에는 진설떡, 등잔불이 밝혀져 있죠. 그 등잔불은 항상 켜져 있어야 해요. 간혹 꺼지는 때가 있어요. 외적이 공격해올 때. 절대 꺼지면 안되요. 언약궤는 우리 옛날 시집오실 때 타셨던 가마와 비슷합니다. 차이는, 이 가마 천정부위에 금으로 천사의 형상이 마주보도록 되어있고 그 고개가 천정을 내려다 보게 되어있습니다. 그 천정부위를 새로 만드는데 시은좌. Mercy seat. 이라 합니다. 제물을 가지고 들어와 피를 이 시은좌에 부어요. 그 자리가 자비의 자리. 베풀 시. 은혜 은, 자리 좌. Mercy seat. 이 안에 세 가지 물건이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면 삼척동자도 아는 기적의 상징물들이요. 이 상징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10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찌니라

간직하게 하는데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고라 자손이 모세의 권위에 대적해요.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목회자는 아니에요) 고라 자손이 광야에서 엄청 죽습니다. 지팡이는 죽은거죠. 이미 죽은 나무. 근데 거기에는 사퀘드 라는 살구 꽃이 피고 싹이 나요. 무슨 표징이요? 반역한 자에대한 표징. 어디에 간직해요? 언약궤에. 단순히 기적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거역하여 죽은 고라 자손들의 죄가 어떠함을 상징하는 기적이요.

두번째 만나를 담은 항아리. 출애굽기 때 설명드렸는데 만나는 뭐였죠. 떡을 내라 물을 내라 원망을 터뜨릴 때 떡만 해결되면, 의복만 해결되면, 거할 곳만 해결되면 우리가 하나님 잘 섬기겠습니다. 그래서 떡을 주셨어요. 감격해서? 그래? 확실하게 해줄게. 떡 줌으로, 펄펄 만나가 내림으로 그런 기적을 40년 겪고도 하나님을 얼마나 순종하기에는 심령에 파산된 존재인지 확실하게 확인시켜주기 위해 그런 기적을 내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입에서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떡으로 안된다는 것을 증명한 게 만나에요. (!)

우리 애만 붙여주면, 우리 남편 승급만 시켜주면, 직장만 어떻게 해주시면, 뺀질거리지 않고 잘 섬길 것 같죠? 안된다니까요. 그 기적을 매일 경험한 백성들이 이스라엘이요. 40년을 철저히 불순종하고 뺀질거리며 살았어요. 그 결과가 신명기에요. 다시 하나님 명령을 기록한 책이요. 여호와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 뼈저리게 녹아지도록 기억한 거에요. 만나의 항아리는 그러므로 불순종과 패역의 상징이요. 마지막 뭐 하나 남았어요? 십계명.

이 십계명은 첫번째 에요 두번째 에요? 두번째 십계명은 뉘앙스가 뭐에요? 첫번째는 모세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아론을 중심으로 산 밑에서 금송아지 만들고 우상으로 만든 게 아니고 우리를 위하여 인도하여낸 여호와로라. 종교의 쓸데없는 부질없는 짓이요. 형상화 시키려고 하는 시도가 끊임없었어요. 그러자, 모세가 산에서 율법 받고 내려오다가 그 소리를 듣고 여호수아가 싸우는 것 같은데요, 아니다, 뛰놀고 춤추고 난리 났어요. 받았던 십계명을 가루로 만들어 물에 타서 마시게 합니다. 그것 이끈 사람들을 레위지파가 죽이게 합니다. 그거에는 탁월한 지파거든요.

세 가지가 어떤 공통점이 있죠? 철저히 인간의 죄가 그 법궤에 들어가 있습니다. 제사장의 피를 그 시은좌에 부어요. 법궤는 승리의 상징, 기적의 물건이 아니라, 인간의 죄가 얼마나 어린양의 보혈이 필요한가 설명하는 물건이 담겨져 있는 거라구요.

3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그리고 언약궤는 요단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이 어디서 세례를 받으셨죠? 요단강이요. 어린양의 보혈로 들어가는 자리에요. 그분께 순종을 배우는 땅이 가나안이요. 성결은 뭐에요, 내가 얼마나 고상해지고 치성과 덕행을 쌓아서 괜찮은 신사의 인품이 되는 그 싸움이에요? 성경에서 성결하라 거룩하라라는 명령이 나오면 그리스도께 엎어져라. 그리스도만 붙들라. 그 말을 뭘로 설명하냐면 신랑과 신부의 사랑의 관계요. 성결은 그 분께만 순종을 바치는 고백을 하는 자로 섰다. (!부모와.. 리더나.. 다른 것은요) 우리가 사는 땅이, 어디로 가든지, 가나안 땅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양에 밀착되어서, 나는 공로 없으나. 나는 볼품없고 여전히 모자라고 흠이 많은 죄인이지만. 어린양의 보혈로 덮어진 은총 받은 자로서, 꼭 붙어서 이 한주간도 예수의 이름으로 이겨내는 축복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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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3:17 (KRV)

Exodus 14:21 (KRV)

A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어린양의 죽음을 상징한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들어서자 요단강이 끊어져요. 언약의 성취를 상징합니다. 백성들 앞에 무슨 길이 열려요? 새롭고 산 길이 열려요. (!) 강바닥이 길이 됩니다. 누가? 그 넘치게 흘렀던 홍해나 요단물이 밑바닥이 마른 땅이 준비되어있을 줄 누가 알았어요. (!) 하나님은 어린양의 죽으심을 통해 새롭고 산 길을 준비하셨어요. 너희 앞에 새롭고 산 길이 있나니.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하는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었다는 것. 아래서부터 위에로 찢지 않아요. 인간이 찢지 못해요. 위에서 찢어요, 누가 하신 거죠? 하나님이요. 구원의 완성 또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 육체를 상징하는 휘장이 찢어지고 이스라엘 공동체 앞에 새롭고 산 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요단 밑 마른 땅을 누가 알았으리요?

강바닥이 아무리 말라도 건널 수 있을 것 같아요? 애어른 합쳐서. 갯벌일 텐데. 그런데 마른 땅이래요. 어떻게 말랐지? 성경을 읽을 때 유치한 상상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성경읽다가 은혜받아요. 이런 자라야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늘, 어린아이 같은 아들의 모습으로 딸의 모습으로 서자. 너무 폼잡으려고 생각하지 말자.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감격스러워서 웃어야 해요. 이 본문이 얼마나 우스워요. 이백만 가량의 인파가 어떻게 갯벌을 건너요. 하나님께서 밤새, 동풍이라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바람이에요. 동풍표 선풍기를 틀어가지고 이걸 밤새 말려요. 할렐루야. 그들은 아우성 치고 걱정하고 잠들어 있을 때 이 인생들의 꼬라지를 아시는 하나님은 뜨거운 동풍표 자연바람으로 뻘판 밑을 다 말려요. 아버지.

집사람이 저혈압이시고 잠의 양이 많으세요. 시름 시름 앓고 그러세요. 둘째 첫째 낳고 하루는 뭐 인기척에 눈을 떴는데, 애기 옆에 앉아서 지친 몸으로 계속 모기 물릴까봐 부채질을 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자기 더우니까 부채질 하지만. 이야 저 잠 많은 친구가 일어나 앉아서 애기 위해 모기. 어느 놈이나 달려들면 죽여버린다 하고 하나님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다정하신 분이에요.

한주간 살 때. 홍해와 같은 것들이 겁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밑에 마른 땅을 준비하세요. (!) 그 두려움 밑에 정복을 준비하십니다. 여러분의 아버지에요. 이말씀 이 약속 붙들고. 우리 태권도 형제들처럼, 유치원 재롱 잔치처럼, 아버지의 믿음을 믿고 일어서 나아가는 저와 성도들 되기 바랍니다.

새끼들. 자식들만큼 뻔뻔한 존재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저희 집에도 뻔뻔한 애가 하나 있는데, 유일하게 제 문자를 씹는 아이가 그 아이입니다. 며칠 전 되게 혼났어요. 문자 보내면 아예 답이 없었어요. 저도 말을 며칠 안하다가 뭐하지? 바로 답이 없었어요. 전에 교회에도 설교를 6부 하고 회의하고 가면 일곱시가 넘어요.

집에 가서 짜논 빨래 늘어져서 누우면 거기 올라타는 애가 있어요. 고수부지 나가자 하고 장기판 가지고 와서 장기 두자 하는 요구. 그 모습을 보다가 아내가, 나도 쟤처럼 뻔뻔해봤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갈 때 어떤 모습으로 서는 것을 원할까요? 한국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태도에 좀 문제가 있어요. 엄한 아버지 아래 자랐으면 엄한 하나님 이라는 감도를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란듯 떳떳한 신앙으로 나갈 수 없을까, 앵벌이 신앙. 껌 막 팔아가지고 모아서 가져다 바치는 이런 감각이 있어요. 보란듯, 떳떳하게 나아가기 원하고, 내가 뭔가 잘 되거나 잘 해서 하나님 앞에 서기 원하는 잘못된 관점이 있어요. 그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정말 원하는 것은, 우리에게 좀 더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편한, 뻔뻔한 모습으로 서기 원합니다.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관계의 복이에요.

하나님께 편하게 다가가자. 너무 열심도 부리지 마시고, 이 말은 열심을 부리지 말라는 게 아니라 거기에만 초점 두지 말라. 하나님 여러분들이 어떤 모습으로도 아들로 자녀로 서 있기 원합니다. 오늘 그 부분에 대해 요단을 건너는 과정을 통해 좀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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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3:10 (KRV)

A

10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반드시 이 일곱족속을 쫓아낼 것이다. 요단 한 복판에 들어서는 사건과 가나안 안의 일곱족속을 쫓아내실 것을 동시에 약속하세요. 법궤를 매고 제사장들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가나안의 일곱족속을 쫓아내실 것을 알것이다.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요? 그림을 그려보세요.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 한복판에 들어서는 것, 가나안 일곱족속이 쫓아내어진다. 무슨 그림이죠? 법궤는 그리스도 어린양의 죽음을 상징했어요. 그 죽음은 누구의 죄 때문에, 어린양이 죽어야 합니까? 마태복음 3장에 공적 사역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를 받으세요. 어디서, 요단에서. 옛것은 죽고, 약속에 대해서 새로 사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요. 이것을 그대로. 요단강가에서 세례 요한에 의해 예수님이 세례 받아요. 죄인이 받는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세요. 세례 요한에게 죄인의 모습으로 세례 받아요. 그 그림은 정확하게 지금 제사장 어깨에 둘러매어진 법궤가 요단강 한복판에 들어가 있는 그림입니다. 어린양 예수가 죽음 당한 것. 내가 죽어야 할 그 강에서 어린양이 대신 죽어요.

이 구속의 사건. 이렇게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는 대속의 사건은. 이 사역으로 난 손털고 끝났다 끝, 이게 아니라 무엇까지 약속이요, 가나안의 삶의 정복과 완성까지를 이 죽음은 내포하고 약속하고 있다. (!) 이렇게 중요한 얘기를 하시는데.

법궤가 들어서는 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가나안 땅의 정복의 완성을. 하나님 아들을 내어주셔서 대속의 죽음을 죽게 하신 사건은, 그것 만으로 효력있습니까, 우리의 구원까지 담고 완성하는 것까지 내포합니까.

십자가는 오늘의 삶까지 유효한 것입니다. 이런 것 알아야 해요. 2천년 전에 죽어마땅할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만 그 현장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요단강 한복판의 대신 죽으신 그 사건은, 긴긴 내 인생속에 구속을 내포하고 있는 완전한 약속이에요. 오늘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십자가 그 사건을 봐야 해요. 우리에게 궁극적 힘을, 새 힘을 줍니다.

제일 좋아하는 찬송,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내 마음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왜 고초당했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주 보혈 흘렸네.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의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준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나를 통해 내가 실망할때, 난 왜 이러지. 이게 될까, 이게 뭐야. 나를 향한 좌절과 절망이 밀려올 때마다 뚜렷이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세요. (!) 구속의 처음 뿐 아니라 내가 완성될 자리를 약속합니다. (!건축가??) 가나안의 모든 대적을 물리치는 것 까지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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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9:1 (NLT)

Jesus Heals a Man Born Blind

A

1 As Jesus was walking along, he saw a man who had been blind from birth.

It is about a man born blind. Interesting fact is that he was born blind. Question is that who sinned? Inside of this question, there are tendencies and theologies embedded. First is that sin leads into tragedy. (!) That is the belief expressed in disciple’s question. When you think about it, it is true and right thinking. Last week, I am saying that when you sin, you have to pay back for sure. If we know that, many will change. Would you still take from others if you knew pay back ten times more. If you realize deeply, surely there are punishments and sins. You would not sin even when you are alone. Certainly you will not harm your brothers in Christ as that will be paid back for sure as you live the life of Christians.

Forgiveness and salvation, what about these? Heaven is guaranteed when one puts his faith in Christ for salvation. As long as I get to heaven, it’s fine and I will do whatever I want to do. But even in heaven, there are different glories. There are also shameful salvation. You got it despite your sins, because of forgiveness. When you get to heaven, you will regret for sure. You may not feel it but you need to come to understand more deeply so that when the time comes you will not regret. When you go to heaven you realize the difference and you regret how you l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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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9:2 (NLT)

A

2 “Rabbi,” his disciples asked him, “why was this man born blind? Was it because of his own sins or his parents’ sins?”

Second is this. Because he was born blind, it must have been that his parents sinned. This is very tragic if you think about it. I want to put caviat here. There are many variations in human condition. We do not know the reason why we were put in certain condition. (!Chaoxianzu or…) Sin leads to consequences for sure. In the question of disciples, there are premises that some things seem to be fate. This is the tragedy. Because of sins, man could not help but live in this wretched condition. To take away that sin there are consequences for 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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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John 9:3 (NLT)

A

3 “It was not because of his sins or his parents’ sins,” Jesus answered. “This happened so the power of God could be seen in him.

I’m sharing this because I was being insulted by people and I was given this advice. Sinners in fact should be insulted. (!) This came to me very deeply. Right, I am the sinner. It is right for sinners to be insulted. Originally we should be insulted. Sinners deserve. Negative plus negative makes plus. Sinners should be insulted. We are sinners saved by grace but we are sinners nonetheless. We should be persecuted and insulted by all kinds of evil set against us. We should think of it as penance against our sins.

This is a great leap of our lives. Crisis is opportunity. Feels like I am being abandoned but there is great God who never leaves me in this way. Reason he allows is because he has greater blessing in store for me. (!) Persecuted and said all kinds of things,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Great development takes place through all that suffering and sacri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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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ges 2:10 (KRV)

A

잊을 수 없는 박물관, 이스라엘의 야드바젬이라는 박물관. 야드바젬은 기억하라 라는 뜻이에요.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5300백만불을 들여서 유대인들이 실험용으로 학살된 많은 백성들, 신비감, 공포감, 인간의 죄의 무서움, 한꺼번에 녹아져서 하루에 이름을 한번씩 불러집니다. 얼마나 잘해놓았는지. 야드바젬. 기억하라. 맨 끝에 나올 때 보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다.

토인비라는 역사학자가 이스라엘에 대한 찬사를 썼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민족은 하나의 경이로움이다. 독립을 선언할 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라 없이 떠돌아다니던 민족이 팔레스타인에 나라를 세웁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자식들의 교육이다. 교육에서도 두가지를 꼽아요. 예배의 자리를 강조해서 어릴 때부터 듣는 훈련을 시켜요. 글을 읽어보니까, 이스라엘은 지금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컴퓨터 교육을 안시킨대요. 기계문명이 하나님 주신 말씀을 손상시킬까봐. 우리는 반보라도 뒤질 새라 영어 다띄고 태권도 보내고 산수학원에 이버스 저버스 유랑합니다. 실제 학교가서는 흥미를 잃죠. 선험교육이 꼭 좋은 걸까, 교육학자들이 문제제기를 합니다.

예배에 대한 교육을 주입합니다.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솔로몬의 렉 쇼메아 라는 말도 잘 듣는 마음. 이걸 구했던 거죠. 그 지혜를 주셔서 성경에도 기록된 것 같이 명 재판의 기록을 남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백성들의 심령 밑바닥에서 나오는 마음을 잘 듣고.

두번째 교육이 신앙 교육인데. 전통교육이죠. 전통을 굉장히 중요시 여겨서,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가면 유대인 마을 지나가면 어김없이 키파 모자를 쓰고 챙이 넓은 검은 중절모와 정장을 하고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회당을 갑니다.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도록 전통 교육을 시키죠. 수천년 유랑민족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회복하고 재건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유대인들에 의해 인정받지 못한 정치가들이 대통령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암암리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국이나 다른 여러나라에 끼치고 있죠.

두 가지. 신앙과 교육입니다. 그 중에서도 예배교육, 전통교육을 통해 선조들의 신앙을 기억케 한다는 거죠. 성경역사에 아주 뼈저린 실수가 있었습니다. 사사기 2장.

10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의 뼈저린 역사입니다. 전혀 다른 종자가 일어났어요.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신앙교육과 예배교육의 부재. 무서운 역사의 결과입니다. 일본속담에 아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라난다. 아버지 하는 짓을 똑같이 따라해요. 참 무서워요. 한 날은 집에 들어가는데, 어머님이 저를 불러 세워요. 현관앞에 이리와봐. 네 아들 신발 벗어놓은 거 봐라. 한 쪽은 이쪽 다른 쪽은 저쪽. 저렇게 벗으면 안되는데. 누가 그것을 그렇게 벗는지 아니? 네가 그렇다. 사소한 역사같지만 이것도 신발 벗는 역사에요. 얼마나 아버지의 반보 앞선 걸음이 무서운지 몰라요.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역사였습니다. 신앙 교육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오늘 그 문제를 여호수아 4장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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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Joshua 4:1–8 (KRV)
길갈에 세운 열 두 돌
Joshua 4:19 (KRV)

A

1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3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 곳에 두라 하라
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예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서
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취하여 어깨에 메라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었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
8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의 명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서 돌 열둘을 취하여 자기들의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 두었더라

어깨에 맬 정도면 작은 돌이 아닐 거에요. 열 두명이 가져나와서 너희가 유숙할 곳에 두라. 그 유숙할 곳이 어딘가.

19 ○정월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 치매

길갈입니다. 후대에 사람은 늘 잊어요. 우리 민족은 시련과 실패에 대해 쉽게 잊는 게 있습니다. 냄비 근성이라고 비아냥 거리는데, 인간이면 다 잊어버립니다. 금메달 따서 기뻐했지만 4년 뒤에 또 이 일을 할 때 누가 땄었지? 모든 게 다 지나가고 잊어버려요. 그걸 기억시키라는 거에요. 후손들에게. 히브리 민족은, 중요한 삼대 절기, 아버지 세대가 다음 세대 전수하도록 되어있어요. 아들아, 텐트 준비해라. 어디가요? 그냥 따라와. 편안한 집을 두고 광야로 나가서 아들과 텐트 칩니다. 누룩없는 떡을 먹고 지내요. 아버지 이게 뭐에요, 맛없는 빵 세끼로. 내 얘기 잘 들어라. 몇백년 전, 몇 천년 전. 애굽의 노예생활 했단다. 모세라는 아버지를 통해 홍해를 건널 때 이런역사, 저런 역사, 갈라진 마른 땅 을 건너와 이 나라를 건국했단다. 이것 절대 잊어서는 안되고 초막절을 지내는 거란다. 너도 너 아들에게 이것을 꼭 말해야 한단다.

전통은 스토리에요. (@! 이것 꼭 해야한다.) 드라마 본 얘기는 할지 몰라도. 자식 세대와 부모님 세대 간에,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가. 스토리 있는 민족과 없는 민족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요. 부모님 세대는 자녀 세대와 특히 방학 같은 때 얼마나 좋은 기회에요. 이번에 아빠가 제주 선교 가기로 했는데 시간 좀 내라. 갑자기 말하면 짜증냅니다. 예절을 지켜서 적어도 몇 달 전에, 아무개야, 이번 8월 중요한 계획있는데 함께 해야 한다. 한달 후에 이야기 해줄게. 이 일에 시간 빼라. 제주도 가는데 아들을 대동시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제주 토속 골목을 다니며 전도지를 들고, 이야기를 하며, 전도받는 새생명 을 목격하게 합니다. 스토리가 만들어집니다. (!)

후대와 선조사이에 신앙의 스토리를 공유하는 사건입니다. 시공간이 초월되요. 모세가 직접 와서 이야기 하는 것이고, 다윗이 함께 식탁에 앉아 공유하는 것입니다. 자녀와 부모가 좋은 이 두달, 삼일 교회는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순종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그 일을 놓쳤다면 겨울에도 있습니다. 1년 전부터 계획하셔서 어린 자녀도 괜찮습니다. 요즘 애들이 다 편한 곳에 있어요. 데리고만 나가보면 푸세식 많아요. 불편하게아버지와 겪었던 시간들이 아이들의 굉장한 신앙의 눈금으로 남습니다. 제주도 골목에서 전도했었는데, 신앙이 빗나갈 수 없어요. 아버지와의 시공간을 공유했던 신앙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거에요. 파워가 다릅니다.

2013년 여름은, 이런 주제. 스토리가 있는 여름. (@) 혼자의 스토리가 아니라. 누가 알아서는 안되는 나쁜 스토리가 아니라, 아내와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신앙의 스토리. 이것이 유대인들이 가졌던 중요한 신앙의 인식 세계입니다. (!@저기가 아니라, RV 아니라 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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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s 6:4 (KRV)
Joshua 5:9 (KRV)
Revelation 21:12–14 (KRV)
Revelation 21:21 (KRV)

A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주 중요한 단계 하나를 넘어서야 합니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 서양 신학자들이, 한국 교회는 너무 십자가에만 매몰되어있다. 죽음과 고난에만 있고 그 다음 부활의 아침과 다음 세계를 향하지 못한다. 서구 신학자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옳습니다. 십자가는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어요.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이 목적지가 되서는 안되요. (!) 어디를 가야 해요. 삼일 교회 가야 하는데, 시청 앞에서 약도를 그립시다. 삼일 교회 오려면, 우리 정상적인 코스대로라면, 시청 앞에서 남대문을 지나서, 서울역을 지나서, 굴다리 지나면 굴 다리 크고작은 거 세개 있는데 첫째 굴대를 통과해서 좌회전 받으면 삼일 교회 나와요. 보통 그린다면 시청은 대충 그리고 남대문 한 십원 자리 동전만큼, 서울역도, 마지막 목적지인 삼일 교회는 그거야 말로 남대문만하게 그려야해요, 거기가 최종 목적지니까. 그런데 우리는 목적지는 코딱지만하게 그려놓고 남대문하고 시청을 남대문만하게 그려놔요. 헷갈리겠죠.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삼일 교회요. 근데 중간에 너무 여정의 팻말을 너무 크게 그려서 여기가 목적진가 헷갈릴 수 있다구요.

이말을 오해하지 마세요. 십자가가 들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 생명을 다 걸어도 아깝지 않아요. 그러나 대속의 제물로 아들을 걸으신 것은 십자가가 목적지가 아니라는 거에요.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새로 생성되어 붙인 일이라는 말입니다. 길갈이라고 명명했어요. 2 라는 숫자가 있고 풋노트에 굴러간다. 수레바퀴라는 뜻입니다. 길갈은 이런 뜻, 모든 더러움이 굴러가서 떠나갔다. 그것이 길갈이에요. 이 길갈의 현장을 우리 성도가 매일 매일 현실적인 삶 속에 증표로 세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린양의 죽음을 근거로, 죽으신 이상 이 열두돌의 징표는 매일 매일 삶의 현장에 세워져야 합니다. 육신의 삶이, 저주스러운 삶이 떠나가고, 그동안 아픔 가진 모든 길갈의 이 수치가 물러가고, 떠나가는 역사가 예배의 시간 마다 열두돌의 증표로 세워져야 해요. (!)

계시록에 가면 모든 성도들에게 이것이 해당됩니다.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여러분들이 열 두 돌이에요. 그것이 계시록에 가면 진주로 바뀌어요. 열 둘은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의 상징적 숫자입니다. 여러분 삶의 자리는 강밑에 대신 죽으신 어린양의 죽음을 근거로 삶의 현장에 이 증표가 우뚝우뚝 세워져서 길갈의 수치를 물러가게 해야 합니다. 그런 헌신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의 자리는, 눈을 감는다는 것은, 세상에 대하여 눈을 감는 것이고, 오직 하나님 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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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5:13 (KRV)
칼을 든 여호와의 군대장관
Revelation 3:20 (KRV)
Revelation 3:14–19 (KRV)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말씀
A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광야의 오합지졸. 할례하고 첫 전쟁을 향해 진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겠죠. 어떤 한 사람이 길을 가로막고 칼을 빼어들어요. 여호수아의 한 핵심적인 질문. 너희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잘 묵상해보세요. 질문의 주어는 우리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대표하는 여호수아입니다. 우리편이냐 우리의 대적 편이냐. 질문의 요지는 우리. 손해냐 이익이냐 이런 말로도 들려요. 암묵적인 메세지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든 문제가 드러납니다. 40년 방황의 이 질문 한 마디에 대번 드러납니다. 물론 택하신 백성, 택하신 민족이에요. 한번도 그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겼던 기억이 없어요. 열하룻길을 몇년 돌아다녔다구요? 40년. 그 비교가 무엇을 뜻합니까? 방탕과 낭비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뒤안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떤 영적 속성을 잘 감추어놓고 있습니까? 불순종입니다. 가장 정확한 정의는, 하나님을 안 믿지 않고 모르지 않아요. 언제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활을 도와주는 조력자, 어시스턴트에 불과한 (!) 이스라엘이 그렇게 대접했다구요. 그들의 뇌리의 한복판에는 나에게 손해가 되느냐 이익이 되느냐 에 판단의 근거가 되요.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랑 관계를 끊기는 싫은데 너무 깊게 간섭도 원치 않아요. 위험하거나 어려울 때마다 좀 등장하셔서 도와주는 정도로만 거래를 원해요. (!) 이것이 열하룻길을 40년 돌아다닌 이유입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대적을 위하느냐. 취중진담이라고 얼떨결에 튀어나온 질문.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클리어하게 보여주는 것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 내편 맞습니까? 그런 관계 원치 않으세요. (!)

20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사영리. 전도용 소책자에 전형 구절로 삽입되어있습니다. 믿지 않는 불신자에게 적용을 하는데, 틀리지는 않지만 적합하지는 않습니다.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불신자에요 신자에요? 네 신자에요. 적당한 경계선상의 덥지도 차지도 않은 그리스도인이요. 언제나 내가 위급할 때만 필요한 마왕같은, 도깨비 방망이 같은 존재에요. 교제를 그렇게 원하시지 않으세요. (!)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신데요. 내가 문 열면 구원이요 문 닫으면 구원 아닙니까? 아니요 내 의지와 상관없어요. 내 공로 아니에요. 그분이 혼자 역사하시는 일방적인 역사에요. 개혁주의 신앙입니다.

근데 내가 열어야돼요. 무슨 뜻일까요? 내가 다급할 때만 달려가는 종으로 싫다. 내가 너 집의 주인으로서, 가족으로서 관계하기 원한다. (!) 근데 똑같은 상황이 가나안 들어가는 초입에 전쟁을 앞에 두고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하는 질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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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5:13 (KRV)
칼을 든 여호와의 군대장관
Joshua 5:14 (KRV)
Exodus 12:40–41 (KRV)
Joshua 5:14-15 (KRV)
A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내 직장, 내 자식, 내 노후, 내 남편, 나 나 나 나. 나. 계시록 3장의 지적이고, 여호수아 5장의 지적입니다. 광야 40년 방탕, 방황의 본질이었어요.

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아니라. 질문은 두가지였어요. 근데 전체 부정이요. 단도적으로 아니라. 이건 둘 다의 전체 부정이요. 난 네 편도 너의 대적의 편도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커밍아웃을 합니다. 정체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왔느니라. 쉽지 않은 부분이요. 군대대장에 따라 해석이 확 달라집니다. 여호와의 군대대장. 누굴까요. 여호와의 군대. 뭐지?

40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삼십 년이라
41 사백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정확하게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공동체를 여호와의 군대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 사람이 누구의 대장으로 왔다구요? 신앙의 틀을 완전히 뒤집는 매우 중요한 발언이에요. 나는, 너희들을 도와주는 정도로 지원군 대장 정도로 온게 아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왔다. 이스라엘 백성의 군대 대장으로 왔다. 지원 부대 아니다. 너희의 대장으로 왔다. (!)

일을 치르고 전쟁해야 하는데, 대장하시는게 확실해요 옆에서 조금 도와주는 게 확신해요. 묻는 게 등신이지. 광야 40년 충분하다. 이 가나안의 모든 전쟁과 싸움은 내가 한다. 할렐루야. 우리 신앙의 세계가 확, 어떤 감동이 밀려옵니까? 감동 강요죄라고 합니다. 저혼자 감동해서. 어떤 원로 목사님이 제일 꼴보기 싫은 목사가 자기 혼자 은혜 받고 내려오는 사람. 제가 아닌가. 그런 감격이 없어요? 그렇지. 왜 내가 이걸 붙들고 내가 고민했지? 그분께 다 맡기면 되는 건데. (!) 그분이 하시면 되는 건데. 그래서 여호수아서 전체 주제가 하나님이, 다 하신다. 우리는 믿고 순종하면 되는 거에요. (아무 결정도 안해요?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정말 원하세요?!)

하나님 지원군으로 쓸래요 대장으로 쓰실래요? 확실합니까? 그래요. 조치가 필요해요. 신앙생활하는데 머리가 좋아야 할까요, 믿음이 좋아야 할까요, 눈치가 빨라야 할까요. 신앙생활에는 눈치가 빨라야 합니다. 믿음은 주님 주시는 거니까 상관없어요. 눈치 빨랐던 사람이 여호수아에요. 여호수아 5장,

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이거를 영적인 센스 또는 눈치라고 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눈치니라. 여호수아는 예수의 그림자에요. 상징이에요. 또다른 구약의 표현은 호세아 이죠.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 엎드립니다. 그러자,

15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내 발에서 신을 벗으라. 룻기에 보면, 나오미가 이방땅으로 모압땅으로 굶주림을 피해 갔다가 두 아들과 남편을 잃어요. 여자 셋만 남아요. 대가 끊어졌어요. 좌절과 절망의 초라한 노년의 시기에 베들레헴에풍년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여인을 데리고 돌아오다가 오르바는 고향땅으로 룻은 나오미를 따라 갑니다. 신앙 고백과 구속사적인 그림이 목가적인 그림 안에 있는 거죠. 보아스의 집의 이삭을 줍다가. 집안의 대가 끊어질 때면, 가까운 권리를 가진 자들부터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 때 몇이 그것을 거절하는데, 신발을 벗어줍니다. 권리를 포기합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 앞에서 신 벗는 것은, 하나님이 대장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습니다. 이것을 천명합니다. 구약에 보면 이와 같은 사건이 오버랩 되어 등장합니다. 출애굽기에 모세가 신을 벗을 때 인생의 시기가 어느 때에요? 바로공주의 아들로 입양되어서 최고의 국가 궁궐 아래 애굽의 문물을 다 배웁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무예를 다 터득해요. 그리고 나이 사십에 민족을 위해 뭔가를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저지른 것이 살인. 동족을 돕는다고. 근데 동족에 의해 들통나고 바로는 수배령을 놓습니다. 하루 아침에, 왕위 계승 서열에도 가능했던 그가 광야에 초개와 같이 바람과 같이 40년. 보리 서말이면 남의 집에 처가집살이 안하는데 이방 땅 제사장의 아내를 맞는 바람에 남의 집 처가살이 초라한 목동으로 삽니다. 나이 80에, 뭘합니까? 인생을 자포자기 하고 절망가운데 던져져 있을 때. 한가로이 양떼를 뜯기고 있는데, 신비한 광경, 가시떨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장 흔한나무. 이스라엘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거기에 불이 붙는데 타지 않아요. (!) 이 신비한 광경. 무슨 뜻일까요? 왜 타지 않죠? 단순히 그것을 기적이라고만 이해하는 것보다, 역사적 구속사적 의미가 담겨있어요. 불 탈 때 세 가지 가 필요해요. 재료, 불, 공기가 필요해요. 근데 이상해요. 가시 떨기에 재료가 타지 않아요. 불은 타올라요.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세요. 이중적인 메세지에요. 애굽의 용광로에 던져진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는데, 모세도 가시떨기 같은 존재에요. 공주 아들 아니에요. 사십년 초목에서 바람에 불리는 초개와 같은 목동잉에요. 들판 어디서나 만나는 가시떨기에요. 이건 기적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모세 너를 쓸 텐데, 실력 조건 때문에 너를 쓰는 게 아니다. (!) 내가 할 것이다. 하나님이 구원을 이룰 것이다. 모세가 아멘 하고 갔나요? 아직 꺾여지지 않아요. 이 꼬라지에 하고 말 안들어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쓸만한 조건이 아직 있다고 생각해요. 나일강을 피로, 지팡이를 뱀으로, 손을 희게 그리고 회복시킵니다. 세가지 사인. 가슴에 넣었는데 손이 문둥병. 인간의 문제가 가슴의 문제에요. (!) 죄인들은 나일강이 피로변한 것처럼 심판을 받습니다. 지팡이는 지도력의 상징인데, 생명에서 끊어졌습니다. 뱀이 되고 지팡이 되고 합니다. 지도력의 근거, 너의 실력, 배운 근거가 아니다. 말 못하는데요. 말잘하는 형을 주었다. 애굽의 구원 역사의 한복판에 던져져요. 가시떨기에 불붙은 것 처럼 모세의 조건을 사용하지 않으시는거에요. (!) 저도 마찬가지.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에요.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거에요.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보여줘요. 이제 나는 너희 시바라지 아니다. 나는 너희 대장이다. 몽골 국제 대학의 하버드 나오신 이용규박사 쓰신 내려놓음. 숨이 콱 막혔대요. 어떻게 그렇게 내려놓는지. 근데 서점 가보니까 더 내려놓음. 근데 다 내려놓음이라고. 자아가 철저히 부정될 때. 그분이 일하신다. 먼지같이 될 때. (!이게 성경적인가 한국적인 칼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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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6:3–4 (KRV)
1 Corinthians 15:50–52 (KRV)
Revelation 11:15 (KRV)
Revelation 11:19 (KRV)
Revelation 11:16–18 (KRV)
A

3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작전을 이렇게 짜서 전쟁이 됩니까? 우선 제사장입니까 군인입니까? 제사장 일곱을 먼저 뽑아요. 종교인이지 군인이 아니에요. 그들에게 뭐라하냐면,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불 것을 명합니다. 이건 완전히 군대 작전 개념으로는 뒤집어진 개념이죠. 적에게 자기 위치를 숨겨야 이깁니까 드러내야 이길 확률이 많습니까? 방금, 이 가나안 땅의 점령은 총칼로 빼앗아서 점령하는 싸움이 아니라 이미 주신 것을 순종해서 얻어 확인하는 싸움이라고 했어요. 제사장이 나팔을 불며 어린양의 자비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들고 성을 돌래요. 작전이라고 말할 수 없죠.

나팔을 불라. 성경에는 나팔을 말할 때 두 종류가 있어요. 전쟁할 때 쓰는 나팔과 다른 경우에 쓰는 나팔이 있어요. 전쟁 나팔은 하초츠라 라는 말을 쓰고 평화를 선언할 때 쓰는 나팔이 따로 있는데 그 나팔은 소파르 입니다. 영어 성경 우리 나라 성경에는 구분이 없는데 원문에는 정확히 구분되어 있어요. 그럼 여기는 어떤 나팔일까요? 소파르 라는 단어에요. 전쟁하겠다는 게 아니죠, 평화를 선언하는 겁니다. 어디땅에, 가나안 땅에. 하나님 군대가 들어가면서 평화를 선언해요. 그 나팔 부는 것 뒤에는 뭘 맨 행렬이 뒤에 있죠? 어린양의 죽음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뒤를 따라요.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어린양 예수 께서 오실 때 요단강에서 세례받으실 때, 뭐라고 하셨죠.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로다. 그냥 좋은 평화가 아니라 어린양의 죽음을 근거로 한 평화입니다.

뭘 기초로 진입하고 있죠? 어린양의 죽음을 기초로 진입해요. 제사장의 나팔 소리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와 평화가 임할 것이다. 성경 전체를 거쳐서 복음이라고 해요. 이 복음이 어떤 이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살리는 돌이되요. 이 명제가 어디 앞에 던져집니까? 가나안 땅에 살던 여리고성 사람들에게 던져집니다. 영접하는 은택 을 입은 자들은 라합과 가족들. 들음에서 구원이 왔다. 그런데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결과가 남아요. 왜 일곱바퀴일까요? 궁극적인 평화를 선언하는 복음. 어린양의 죽음을 기초로.

모든 세상을 향하여 갈 때마다 철철 흐르는 보혈의 공로로 일터와 삶에 진정한 평화가 선언되는 축복있기를 원합니다. 누가 선포해요? 제사장된 여러분들이 나팔을 날려야 해요. (!)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주시기 원하는 것은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왔어요. 돈이 가져다주는 게 아니고, 술이 즐겁게 하는 게 아니라, 온 인류가 궁극적으로 목말라했다 수가성 여인의 온전한 평화를 말합니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하는 어리석은 인간이요. 네가 불행해야 내가 행복해진다. 저 사람이 불행해야 내가 잘되는 거에요. 그건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추구하는 정의로운 평화가 아니에요. 모든 만민에게 똑같은 온전한 평화가 선언되는 것이 진정한 평화입니다. 그것 제시하실 수 있는 분은 한 분,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어요. 가나안 땅에 예수를 앞세우고 하초츠라 가 아니라 소파르를 가지고 나팔을 붑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궁극적인 평화를 선언하는 자여야 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라. 이 나팔은 여러분들을 상징하는 제사장들의 손에 들려 있습니다. (!)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나팔은 결국 다시 오실 예수님으로 완성될 온전한 구원의 선포를 말합니다. 사망 권세가 깨치고 울려퍼질 그 나팔입니다.

일곱째 나팔 소리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궁극적인 완전한 왕의 통치를 말합니다.

16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순종하는 자에게는 구원과 상을 베푸시지만, 순종하지 않는다면 여리고 처럼 심판아래 놓일 수 밖에 없다는 거에요.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이 완성의 한복판에 뭐가 보여요? 언약궤. 상징적인 그림이었어요. (!그 안에 궤 안에 보물 상자 안에 작은 십자가가 날아올랐다는 마이클의 환상) 이 복음의 소식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 자녀되는 권세를 주었지만, 불순종하고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멸망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 그림이 압축된 것이 여리고 전쟁이요, 계시록에서 정확히 알려진 그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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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6:10–11 (KRV)

A

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찌니라 하고
11 여호와의 궤로 성을 한 번 돌게 하니라 무리가 진에 돌아와서 진에서 자니라

침묵하라. 첫째, 인간은 말을 함으로 메세지가 많습니까 침묵함으로입니까? 말 해버리면 그거밖에 메세지가 없어요. 그런데 침묵하면 많은 메세지가 함의되어있습니다. (!) 말로 복을 다 쏟을 때 있어요. 동역했던 교역자들도. 말로 은혜를 다 쏟아요. 봉사 실컷 다 해놓고 말로 다 쏟아요. 잠깐 빌립보서에서, 하나님께서 광야생활 동안, 네 귀에 들린대로 행하리라. 불만을 들은대로 행하겠다. 광야지나면서 제일 내뱉은게, 이래서 죽겠고 저래서 죽겠고, 광야에서 결국 다 가셨어요. 정확히 누구의 말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내 귀에 들린대로. 이 언어가 복이에요. 한 혀에서 살리는 권세도 죽이는 권세도 있어요. 두 사람 야합 하면 교회 공동체 하나 간단히 말아먹습니다. (!)

침묵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명령으로 하지 않았다면 뒤에서 어떤 녀석이, 뭐야, 이거 똥개훈련이야 전쟁이야. 여호수아도 혼미한가봐. 부정적인 언어가 누룩처럼 빨리 전이가되요. 이 순종과 이 행렬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교회 공동체 뿐 아니라 조직으로 들어오면 마음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도 결과거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는 거에요. 그런데 생각나는대로 뿜어올라오기 시작하면, 조직과 공동체가 절대 안됩니다. 못돌아요. 왜 이거 끝없이 돌아, 돌아버리겠네. 일이 안되죠. 그런데, 더 중요한 성경적 의미. 어린양이 끌려갈 때 그 입을 열지 아니하며. 기억나십니까? 억울하게 무엇을 뒤집어 씌우고, 예수님도 입을 열지 않으셨어요. 순수하게 하나님 계획을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신앙보다 더 중요한 신앙의 태도입니다. (!) 침묵은 수많은 말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어요. (!)

한 사람은 말이 없고 다른 사람은 말이 bmw boom mouth woman 폭탄의 말을 가진 여자. 무게 잡고 있으면 평균치는 먹어요. 근데 떠들때는 좋은데 나중에 후회막심한 일이 비일 비재합니다. 예수님도 그 입을 열지 않으셨어요. 하나님 계획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 침묵은 믿음의 테스트에요. (!) 온전히 순종하는가. 침묵을 명령치 않았다면 성 돌기는 불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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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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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6:25 (KRV)

Joshua 7:25–26 (KRV)

A

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 아비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탐지하려고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었더라

오늘날까지 이 여인을 통해 구원의 메세지를 전해다준다.

25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26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아간도 오늘날까지 있어요. 라합도 오늘날까지. 성경기자가 일부러 대비해놓았어요. 6장과 7장. 요한복음에는 3장에는 수가성 우물가의 슬픔많은 여인이 메시야를 만나는 아름다운 이야기. 그 여인은 예수님이 찾아갔습니까 찾아왔습니까. 찾아갔어요.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내가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 수가성, 피값으로 준. 슬픔많은 여인. 이 여인은 아무 기개 없이 또 먹으면 목마를 그 물을 마시러 나왔어요. 거기에서 예수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원의 정확한 그림이에요. (!) 예수님이 찾아오시는 사건이요.

4장은 니고데모요. 최고의 지성인. 회의가 많았어요. 그가 예수님을 한 밤중 눈길을 피해 찾아갑니다.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질문이 틀렸죠. 영생은 어떻게 방법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죠.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니고데모 박사님이 맹꽁이같은 소리를 해요. 어떻게 내가 큰데 어머니 배로 들어가죠. 3, 4장의 절묘한 대비입니다. 물론 나중에 예수님을 영접하죠, 담대하게 예수님시신을 요구합니다. 과정에서 물론 회개를 했지만, 3장과 4장의 대비를 통해절묘한 구원의 모습을 보여줘요.

라합이 여기서는 주인공이요, 어느날 사고처럼 찾아온 역사. 구원이 임합니다. 그러나 누릴 것은 영광뿐인 아간에게는 파멸이 옵니다. 둘 다 오늘까지 기억되고 있어요. 오늘까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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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Q

Joshua 7:2–3 (KRV)

A

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편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일러 가로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3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두번째 공략. 그런데 이미 아간의 타락은 이루어졌어요. 헛바람이 탄로가 납니다. 아이성은 여리고성의 십분의 일밖에 안되니까. 그들은 소수니. 누누히 강조했던 것이, 영적인 공동체의 속성상 싫어하는 두가지. 사람의 영향력 생기는 것 싫어하세요. 교회는 가능하면 개인을 감추세요. 몸서리 치게 싫어하세요. (!)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은 이기주의자세요, 나만 사랑하라. 근데마땅히 그러실 수 있는 분이에요. 우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사람이 스타되는 것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가장 그 위험에 놓일 수 있는 자리가 목사 자리입니다. 가만 두어도 영향력이 생깁니다. 소스라치게 자기를 흔들며 작아지는, 희미해지는, 사라지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전체 공동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어요. (!) 목사와 여러분들이 같이 싸워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은혜의 원리로만 가도록 만드셨어요.

두번째 하나님 제일 싫어하는게, 교회 속에 크기와 세력으로 일하는 시도 제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로만 되게 되어있어요. 기도요. 이문제 하나님 없으시면 방법이 없습니다. 실질적인 태도가 기도에요. 기도 없는 삶은 가장 교만한 삶이요. 새벽기도 철야기도 많이 나오십시요. 가능하면 모든 예배당을 메워졌으면 좋겠어요. 교회가 클 수록 은혜강조하는 것이 기도하는 거에요.

3절은 이 전쟁을 힘의 세력의 싸움으로 이해했다는 얘기에요. (!) 언제 총칼로 싸우라 했습니까. 세력의 싸움이 아니라 은혜로 순종하라고 했지, 언제 크다 작다 따지라고 했어요? 이 교회는 큰 교회가 되었는데, 그럴 수록 우리는 더 조심하고 겸손해야 해요. 한국 교회 앞에서도. 은혜를 준만큼, 하나님의 은혜밖에는 자랑할 게 없습니다. 십자가 말고는 자랑할 게 없습니다, 이게 마르면 안되요. (!건축가 되서 뭔가 쓰임받을 수 있다? 이거 싫다… life abandoned, regarded as rubbish)

26
Q

Joshua 11:21–23 (KRV)

A

21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 성읍들을 진멸하였으므로
22 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 아낙 사람이 하나도 남음이 없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약간 남았었더라
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대로 그 온 땅을 취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팔레스타인과 지중해. 가사, 가드, 아스돗은 해변가에 조그만 데에요. 가나안 땅을 다 점령하고 1프로 약간 남았더라. 아뿔사. 여호수아가 1프로 남겨놓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마저 먹으나 안먹으나 평화를 유지하는데 영향력이 있어보여요 없어보여요. 점령하지 않고 남겨둡니다. 그 땅에서 발생한 문명의 화려함이 좋거든요. 99대 1이에요. 이거 뭐 먹으나 안먹으나 똑같아요. 또 어떤 착각이요, 힘의 균형으로 착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남겨둔 데에서 무서운 일들이 역사속에서 벌어집니다. (!이 땅도, 이 집도, 이런 것, 내가 소유해서는 안된다…) 가드에서 블레세이 일어나서 아스돗에서 여호와의 영광스러운 법궤가 빼앗겨요. 가드에서는 이스라엘을 욕보인 골리앗이 일어나요. 가사에서는 삼손을 무너뜨린 드릴라가 가사 출신이요. (!)

역사만큼 무서운 게 있을까요. 사람이 무엇이든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완전히 패망하죠. 아이성 전투. 세속의 원리가 들어와서 이 모든 전쟁을 순종의 원리로 접근하지 않고 힘으로 접근해요. 죽여서 바치라는 것에 대해 손을 댑니다. 생명과 죽음 사이에 사망과 관계 없는 나실인은 은혜로만 살아야 해요. (!100%) 분초라도 (!) 꿈에라도 (!) 십자가 붙들고 은혜로만 승리하도록 축복합니다.

27
Q

창세기 3:4 (KRV)

창세기 2:17 (KRV)

A

죄를 범한 경로는 간단해요. 창세기 3장에 아담이 죄를 범할 때 들어왔던 경로와 일치합니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자랑, 이생의 자랑. 이 세 가지 경로가 죄를 타고 아간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보고 탐내었다. (!) 이것은 첫 아담이 이 시험 속에 빠졌을 때 나타났던 경로입니다. 그 죄가 어떻게 발단되는지 아십니까? 어떻게 그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가. 말씀의 변개라고 정확히 지적합니다. 정녕 죽으리라. 그런데 죽지 아니할 것이다. 한 번 확인해보십시다.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변질. 우리가 사역을 하기 전에, 일을 하기 전에 선교 하기 전에 그거보다 우선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의 기초를 정확히 잡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성경 읽는 말씀 공부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너희가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니라. 로마시대에 흩어진 히브리인들의 율법주의에 붙잡힌 무모한 율법주의에 대한 고발이었어요. 아담의 변질 의 근거는 말씀의 변개에요. 이단도 성경만 믿는 이단이 제일 골치 아파요. 성경만 믿는 이단, 나름대로 믿는데 이상하게 해석해요.

젊은 지성인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스토아 학파의 아류인데, 깨달음으로 구원을 주장해요. 영지주의에요. 무서워요.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는 유혹입니다. 말씀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데, 그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아담을 무너뜨린 것도 마찬가지에요. 보고 탐내어 감추었나이다.

28
Q

여호수아 7:16-23 (KRV)

A

16이에 여호수아가 아침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가 뽑혔고
17유다 족속을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18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19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20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 여차히 행하였나이다 21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22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를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취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23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뜬금없는 질문 하나. 제비를 뽑는데 지파를 먼저 뽑고 집안을 뽑고 그다음에 아간이 나와요. 일관되게 등장하는 한 단어.

공통적으로 “장막” 이 나옵니다. 왜 바로 직접 아간을 골라내지, 지파와, 자손과 집안을 골라내어 아간을 찍어내셨을까요? 한번에 딱 찍어내시지. 근데 일관되게 장막이 반복되어요. 이 아간의 죄는, 한 사람의 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든 죄를 얘기해요. 죄의 책임성을 얘기해요.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한 공동체의 범죄가 발생했다, 그 사람만의 죄일까요? 아니요, 공동체의 죄입니다. (!) 성경이 그걸 얘기해요. 범죄함으로 온 인류가 같이 죄를 지었어요. 우리가 날 때부터, 모태에서부터 죄악중에 출생했습니다. 이생의 자랑, 안목의 자랑, 정욕의 자랑, 그 죄는 첫 아담이 실패했는데, 누가 그 이기셨습니까? 마지막 아담이 죄를 이기셨어요. 광야에서 사십일을 금식한다음에, 창세기 3장의 현장처럼, 사탄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이생의 자랑, 육신의 자랑, 안목의 정욕의 시험. 똑같은 육신을 가진 예수님께서 스스로 약한 몸을 입으시고 성경이 가라사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며 이기십니다. 아담은, 그 말씀을 변질시킴으로 넘어졌어요. 그런데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첫째 아담의 실패된 것을 이기셨어요. 아버지의 말씀으로.

29
Q

여호수아 7:24 (KRV)
호세아 2:4-9 (KRV)
호세아 2:14-15 (KRV)

A

2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아간. 아골. 골치아프다는 뜻으로 비슷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여기 신천지 하나만 있으면 삽으로 묻어버리신다고 말하셨다고. 아골 골짜기. 사고뭉치의 골짜기. 던져져서 돌 무더기가 됩니다. 성경도 살벌하다. 뭐 이렇게까지 기록을 남길까. 그냥 벌줬다 하지. 여기서 끝나면 복음이 아니죠.

4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5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6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7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 갈찌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선지자의 아내가 바람이 납니다. 아간의 범죄를 어떻게 고발하냐면, 다른 남편과 음란한 행위를 한 법적인 관계를 깼다. 호세아서의 같은 사연이 등장합니다. 남편으로 만족치 못하고 선지자의 아내가 바람이 납니다.

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9 그러므로 그 시절에 내가 내 곡식을 도로 찾으며 그 시기에 내가 내 새 포도주를 도로 찾으며 또 저희 벌거벗은 몸을 가리울 내 양털과 내 삼을 빼앗으리라

남편을 만족치 못하고 남편이 준 것을 다른 남자가 준 것으로 이해해요. 성경기자의 고발입니다. 남편이 주는 것으로 만족치 못하고 자꾸 빌붙어서 다른 남편에게 얻어먹어요. 그 사람이 준 것도 근데 하나님이 주신 것이에요. 우상이 준 것으로 착각해요.

14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 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가서 그 아내를 데려오라. 그래도 데려와라. 사랑할 수 없는 여인을 사랑해야 하는 아픈 마음을 가진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를 얘기해요. 바람난 여자같아요, 우리의 삶이 그래요. 호세아 이신 예수. 여호수아 예수. 음역만 다를 뿐이에요. 그래도 내 아내를 데려와라.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리니. 아간이 묻힌 장소요.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 사고쳤던 아간이 묻혔던 장소.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요. (!) 티크아. 라합의 가족이 타고 내렸던 줄을 말합니다. 라합의 가족이 구원을 받아요. 이 저주의 현장에 어린양의 죽음을 통해 비련의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이 아골 골짜기에 소망의 문을 열어주세요. 호세아 예수. 음란한 아내를 향해 끝까지 우리를 포기치 않으셨던 십자가의 사랑. 그 사랑이 오늘 교회를 있게 했어요. 이 소망의 문을 열어놓고 계십니다. 또 한 주간 이 소망의 문으로, 얼굴 들 수 없는 면목없는 죄인이지만, 이 소망의 문을 향해 걸어갑니다. 한주간 승리하기 원합니다.

30
Q

Joshua 8:2 (KRV)

A

2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 너는 성 뒤에 복병할찌니라

하나님의 방식은 종잡을 수 없어요. 앞 전쟁에서는 가져서 사고났는데, 이 전쟁은, 가지라고 해요. 아더 라는 분이, 이런 글을 썼어요. 하나님이 인생을 다룰 때 다양한 방식을 취하시는 것은, 한가지만 고집하면, 그 방식에 익숙해져서 인간의 심성이 부패할까봐,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인생을 다룬다. (!) 맞는 얘기같아요. 그게 하나의 하나의 공식과 원리가 되어서 나중에는 하나님의 본질은 사라져버리고 그 일관된 패턴만 남아서 그것만 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일관적인 패턴 갖는 것 조심해야 합니다.

31
Q

Genesis 15:13–14 (KRV)

Exodus 12:35–36 (KRV)

A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언약하실 때 임금도 다 계산하세요.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의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하나님은 절대 틀림이 없어요. 이 정밀한 하나님을 믿으세요. 내 인생의 한 텀, 이거 완전히 망했어. 내 인생에 없었어야 했어. 이런 것 있을까요? 아니요. 그 값을 바로 도로 찾게 만드십니다. 그 약속을 저는 믿습니다. (!) 살아가는 원리가 어떻게 되어야 해요? 하나님의 언약. 무슨 별명이 있죠 여러분? 언약의 백성. 세상의 일개 일국의 대통령과 약속해도 끝발이 하늘을 찌르는데. 저는 몇번 해봤어요. 그 날 많이 기다려지더라구요. 만유의 주재자, 창조자가 나를 아들 딸이라 부르시고 아버지로서 언약을 하신 사건이요. 어떻게 그 언약을 무시해요. 여러분들도 대단한 분들이에요. 조금도 틀리지 않죠? 안믿는 것도 기적이에요. 믿는 건 은혜인데, 안믿는 건 진짜 대단해요. 하나님이 먼저 하신 언약, 리트. 쌍방적인 계약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찾아오시는 언약이에요.

32
Q

Joshua 8:9 (KRV)

Joshua 8:10 (KRV)

A

9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복병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서 잤더라

같이 티끌이 되어, 흙이 여호수아가 되었는지 여호수아가 흙이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같이 뒤 섞여 있어요.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10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 나서 백성을 점고하고 이스라엘 장로들로 더불어 백성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드디어 새로운 날이 밝아요. 새로운 도약이에요. 무엇이 전제됩니까? 티끌을 뒤집어쓴 엎드림입니다. 매복과 복병의 사건입니다. 그 모델을 여호수아가 먼저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예수 그림자는 천하고 천한 흙덩어리로 오셔서, 인간으로 성육신하셔서, 우리 가운데 강림하신 분입니다. 그렇게 구원얻은 우리에게 똑같은 삶을 요구하십니다. 그 안에서 같이 죽고 같이 사는 역사에요. 이렇게 새 아침의 언약이 밝아옵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이제 말씀 마치면서, 히틀러가 한 말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이성을 제압하여 승리를 거두는 손쉬운 방법은 공포와 힘이다. 사실 히틀러가 인용했을 뿐이지 마귀의 짓이에요. 언제나 우리에게 이성을 제압해서 손쉬운 승리를 거두어요. 공포와 힘의 논리로 우리를 제압해요. 거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다 나가떨어져요. (!) 찬송에 여호수아 본받아 앞으로 나가세.

33
Q

Joshua 8:1 (KRV)

아이성을 점령하다

A

링컨대통령에게: 모든 성공과 존경받는 삶의 비밀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단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꺼내놓았던 이야기. 실패 있었습니다. 좌절, 시련, 실패를 링컨 만큼 많이 겪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많이 겪었습니다. 실패. (!) 지난 시간 아이성의 처참한 실패를 보았습니다. 작은 아이성 앞에 실패의 원인은 두 가지 였어요. 첫째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죽여서 바치지 않음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어기는 결과를 맞았고, 그 결과는 전 공동체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는 아이성 전투를 힘의 논리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가장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두가지. 순종해야 하는 계명, 힘의 논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는 계명을 어겼습니다. 어떻게 다시 이 이스라엘을 세워가시는지 오늘 보겠습니다.

아골 골짜기에 돌무더기를 쌓아 아간을 묻습니다. 호세아 서에는 이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됩니다. 복음의 중요한 결론입니다. 무수하게 넘어지고 무너지지만 단 한 번도 그 실패가 끝장이나 소멸이나 멸망으로간 적이 없어요. 쓰러진 숫자보다 반드시 한 번 더 일으켜 세우십니다. (!) 반드시 하나님은, 그자리가 마지막 자리가 아니고 소망의 문으로 들이게 하십니다.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34
Q
Joshua 8:30 (KRV)
에발산에서 율법을 낭독하다
Genesis 12:5 (KRV)
Genesis 12:6–7 (KRV)
Genesis 33:18–20 (KRV)
A

책. 규장에서 출판한 하프타임. 40대 중반에 사회적으로 잘 나가던 가장이 어느 날 사고로 아들을 잃습니다. 무섭게 질주하던 속도를 내려놓고 아들과의 추억을 반추하면서 내가 무엇 때문에 달려왔나, 어디를 향했던 거지. 인생의 중간 지점에 서서 돌아봅니다. 이제는, 어디를 향할 것인가. 무엇 때문에 내가 살아야 하는가. 새로운 질서를 생각하게 됩니다. 축구도 90분 계속 뛸 수 없죠. 쉬지 않고 뛰는 건 불가능하죠. 우리도 하프타임이 필요합니다. 여호수아 8장은 그런 부분입니다.

30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한 단을 쌓았으니

왜 에발 산일까요? 왜 하프타임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너무나 유명한 세겜의 지역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밀어 올려 세우고 단을 세우게 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쌓도록 명령하십니다. 지금부터 에발산에 하나님의 의도를 훔쳐보는 일을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사에 세겜은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가. 여러 현장들이 있지만 두 군데를 보겠습니다. 창세기 12장.

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하죠? 우여곡절 끝에 설득하고 방황한 끝에 하나님 주도하에 가나안에 가족을 마침내 끌어들이신 거에요. 하나님의 입장에서 마침내 에요.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었다. 하란에 주저하고 머물다가 다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잊고 살았던 그 언약을 기억시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말한 땅으로 가라. 지체시키다 라는 의미의 데라의 죽음. 그 장사를 지낸 후, 온 가족을 일으켜 하란을 떠나,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서 하란에서 머뭇거렸어요. 강을 건너도 되는 건가? 내가 정신 나간 짓을 하는 건가? 강은 옛날 사람들에게 세상의 끝이에요. 인생의 중요한 결단이 없이 건너지 않습니다. 이 때 그 가정의 실질적인 가장인 데라를 하나님이 데려가세요. 그의 죽음으로 아브람은 잊었던 언약을 기억합니다. 가나안 땅으로 밀어냅니다. 하나님의 주도적 입장에서 쓴 표현이에요.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어딘가요?

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세겜은,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이 기억되는 땅. 성취된 것을 확인하는 땅이에요. 그 땅의 이름이 세겜이에요. 그 세겜 땅에 있는 에발 산에서 단을 쌓습니다. (!성취한 것을 확인하는 그 땅에, 단을 쌓게 하소서. 주님)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앞에 그 장막을 치고
19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은 일백개로 사고
20 거기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하였더라

야곱도 28장에서 하나님 음성을 듣고 떠나요. 가나안 땅에 도착했는데 세겜이에요. 여기에는, 하나님이 이 이스라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약속하시고 성취시킨 것을 항상 확인하는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430년의 출애굽의 노역을 끝내고, 40년 가나안 을 들어가기 직전, 방황하다가 모세는 느보산에서 넌지시 바라보고 죽은다음,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와요. 전쟁과 실패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올려세운 데가 세겜 땅 에발산입니다.

35
Q

Exodus 20:25 (KRV)

Joshua 8:34 (KRV)

A

25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다듬으라 다듬지 마라. 다듬으면 부정하게 된다. 이 제단은 누군가를 대신해서 제물이 죽어요. 어린 양의 죽음이 상징되요. 인간이 인위적으로 쪼면 안되요. 우리에게 임한 복은 어린 양 홀로 하신 역사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로 다듬지 못해요. 어린양의 공로에요. 전부. 그가 내 대신 죽었다는 사실. 에발산의 복음이요. 앞에 격렬한 두 전쟁을 치룬 후에 에발 산에 밀어올려서 너희 공로로 너희 노력으로 잘나서 온 여정이 아니었다. 첫째는 세겜. 하나님의 언약의 회복. 언약의 신실하신 하나님 열심이 초라하고 문제많은 인생들을 어디까지 끌고 왔는가. 세겜입니다. 아브라함, 야곱을 통해 설명해요. 이 문제 많았던 이스라엘 공동체를 통해 그것 다시한 번 각인 시킵니다. 너희는 이렇게 죽어야 할 죄인이었다. 근데 너희 대신 에발산 꼭대기에서 제단에 화목제물로 죽으시는 어린 양 예수가 죽으시는 그 자리. 그것으로 우리가 새롭게 가나안 땅의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거에요.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무릇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초이스입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외워들린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으니, 너희는 잘 생각해서 선택해라. 흔히 하나님 믿는 문제를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분도 계세요. 이치적으로, 이 말이 맞을까 생각해보세요.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당신은 내가 몇번째야 그러면, 남편들은 보통, 첫번째가 당신이고 두번째는 미스 김이고, 세번째는 어느 다방에 미스 박이고 그러면 어느 부인이 아 좋아 내가 일등이래. 그래요? 그건 정신 나간 여자나 그렇게 좋아하지. 뭐라고 해야 정답입니까? 당신이 전부야. 이게 답이죠. 당신이 1위고 미스김이 2위야. 그럼 좋아할까요? 하나님 신앙 한다는 것이, 전부 아니면 전무의 싸움이요. 올인하라는 거에요 언제나. (!) 저녁 예배까지 참석하는 것 쉬운 싸움 아니에요. 특히 청년. 청년 시절부터 이 싸움 연습해야해요. 인생 한복판에 뛰어들어가면 이것 요구하는 삶의 현장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나 섬길래 하나님 섬길래. 여러가지 교묘한 트릭을 짜서. 우리는 볼 거 없어요. 하나님 믿는 것은 전부냐 전무의 싸움이요. 몇 프로도 없어요. 우선순위 말이 안되요. 하나님 전부에요. (!) 맞습니다.

젊은 날부터 훈련되지 않으면 안되요. 누누히 강조하는 바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그 거룩은 상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요. 난 너밖에 모른다는 말이에요. (!) 신부가 신랑만, 신랑이 신부만 알아야 하듯이, 난 너밖에 모르니 너도 나밖에 몰라야 한다. 전부 그런 싸움의 전선으로 이스라엘 을 몰아넣어요. 최선이나 적당이 없어요. 나만 사랑하라. 그런 사랑을 구애하세요. (!) 예수님이 전부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전부여야 합니다. 오늘 에발산의 복음은 다시한 번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그 신앙의 굵은 원리를 가르칩니다. 어떤 상황을 대치하던간에 예수와 하나님이 전부이기를 축원합니다.

36
Q

Joshua 10:6 (KRV)

Joshua 10:8–9 (KRV)

A

너는 이 기차 소리가 어떻게 들리니? 칙칙폭폭. 유관순 여사가 나는 이 기차가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이렇게 들린다. 제 목양실 옆에 앉으면 24시간 들립니다. 손님들이 이것 시끄럽지 않은가. 저는 조금도 시끄럽지 않습니다. 고향생각도 나고 감회에 젖어요. 그 글을 읽다가 나는 저 기차 소리를 어떻게 들어야 할까. 청년 부흥 청년 부흥 이렇게 들어야겠다. 해석의 문제이지 환경의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 계속 말씀 부흥을 통해 심령의 부흥, 삶의 부흥이 있도록 축복합니다.

6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 진에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전언하되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서 우리를 구조하소서 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왕들이 다 모여 우리를 치나이다 하매

골치거리 끌어안았더니 이렇게 문제가 생기는 구나. 이 때 절연을 해버릴까. 이 때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9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에게 갑자기 이르니

엄밀한 의미에서 이스라엘 공동체와는 무관한 일이에요. 그런데 상관없다 할 수 없는 것은, 딱 하나. 속아서 조약을 맺은 거요. 뒤치닥 거리를 목숨걸며 할 필요 없어요. 신의적인 면에서 끌어안고 가야 하는데 안해도 누가 뭐라 안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거 가서 도와줘라. 속았든 안 속았든, 끌어안고 도와주기로 한 민족이니 가서 도우라. 우리도 사노라면 이런 일들 만나잖아요. (!) 이거 내가 왜 사서 고생하나. 한두번이 아니죠.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런 문제를 지고 가야 하나. 징징 울면서 목회 하면 특히 이런 때가 많아요. 영원한 가슴앓이라고 고백해요. (!오마이) 영혼을 맡은 자이기 때문에 안지고 가도 될 일을 지고 가야 할 일을 많아요. 애매히 욕먹고 애매히 고난을 당해요. 우리를 왜 밀어붙이고 억울한 일당하게 하실까. 섭리가 있어요.

37
Q

Joshua 1:5–6 (KRV)

A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의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1대 5로 만나야 해요. 엄청난 피해가 있을지 몰라요.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우리의 영적인 게으름과 악함을 아시기 때문에. 분명 피하고 싶은 일이에요. 근데 속아서 맺은 화친이요. 더더군다나 이 전쟁은 일대 오에요. 잘 생각해보세요. 이런 비하고 싶은 일들을 만나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불순종, 영적인 나태와 게으름상 안 싸우겠다고 생 난리 쳐요. (!) 이 피하고 싶은 상황을 일부러 설정하지 않고는 언제쯤 가나안을 점령할까요. 이런 원치 않는 피하고 싶은 일로 하나님 약속의 꾸준하고 끊임없는 성취가 감추어져 있어요. 이들이 이 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가나안 전쟁의 대세는 기울어지지 않습니다. 분명 피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이 일을 통해 여호수아 1장의 가나안 땅의 점령의 더 큰 그림을 감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맨날 이모양일까. 어쩌다 저것들에게 속아서. 안해도 되는 전쟁인데. 이런 식으로만 삶 속에서 투덜거릴 수 밖에 없었을 거에요. (!) 하나님 믿음의 경륜의 눈을 뜨면, 어? 이 피하고 싶은 전쟁을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며 이 가나안 땅을 향한 하나님 땅의 점령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언제나, 그래서 우리가 피하고 싶은 그 역사와 일들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감추어 놓으세요. (!) 저도 그럴 때 많아요. 이것 정말 하고 싶지 않고 내 체질이 아닌데.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맡게 될 때. 그 일을 다 마쳐놓고 보면 이거 안했더라면 어떡할 뻔 했지?

첫 사역지 장애인 교회에서 청소하면서 허리를 굽혀야 겨우 하는 다락방인데. 맹인들이죠. 제가 청소를 하면서 다른 친구들은 번듯하게 양복입고 전도사 사역하는데, 나는 첫 교회가 맹인 교회의 청소부로 들어왔나. 잘 데가 없으니까. 데울 불도 없어서 찬물로 청소하면서 마루 닦는데 자주 불렀던 노래가, 한 절만 부를 테니까 참고 들어보세요.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 길 가고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난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이런 가사였어요.

이걸 청승맞게 걸레질 하면서 많이 불렀어요. 그런데 그 일 때문에 받은 복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그 때마다 전율이 와요. 그 때 나는 먹고 잘 데 없었는데. 그 조그마한 일로 너무 축복해 주셨어요.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현장에 상상할 수 없는 은혜를 감추어놓으셨으리라 누가 알았겠어요. 정말 여기 가사처럼.

그 후에 제가, 저 역삼동의 충현교회 거기 그 때 들어갈 수 없는 교회. 그 때 그 교회에서는 부목사를 뽑는데 시험을 쳐요. 영어, 헬라어, 성경, 상식, … 다섯 가지. 우리나라 처음으로. 제가 공채 1기에요. 근데 시험문제 보니까 대번에 알겠더라구요. 제가 풀 문제들이 아니라는 걸. 이름만 쓰고 왔는데 연락이 왔어요 비서실에서. 최종 면접자로 선정되었는데 몇날 며칠 오세요. 당대에 4만명 유명한 교회죠. 170명 중에 네 명이 왔어요. 최소한 4등. 어떤 미국에서 오신 목사님. 부산 수영로 교회 출신, 서울에서 한 분, 경북에서 저. 최종 합격자였어요 네 명. 깜짝 놀랬죠. 이게 왠일인가. 다른 분들은 1월 1일부터 출근하시고 차량 제공되고 사택은 빌라여기서 머무시고. 제가 뭔가 잘못되었다. 제가 다른 분들 다 가고 제가 남아서 한 번 여쭤볼게 있다고. 들어오라고. 서재가 책으로가득. 주눅들어서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떨고있는데 저를 보시더니 누구시죠? 덜컥 내려앉아요.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이런 마음도 들고. 송태근 목사입니다. 제가 시험도 신통히 친 것 같지 않고 학벌이 좋은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여기 합격이 되었는지 궁금해서 남았다고. 웃으시더니, 화일을 꺼내시더니, 전주 대학교 총장을 하셨어요. 많은 교수님들을 데리고 학교 운영을 해보셨죠. 이분이, 저는 학자입니다. 교수님들이랑 일을 많이 해봤는데 충현 교회와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장애인들을 위해 사역하고 싶은데 이론으로 장애인 공부한 사람 말고 온 몸으로 장애인을 겪은 사람 없을까 기도하며 찾았습니다. 맹인 교회 청소부터 시작한 사람 하나 있다. 이거다 시험 안보고 미리 뽑아논 거에요. 170대 1이 아니라 시험 상관없이 미리 뽑힌 거에요. 그 때 이 얘기 들으면서 이게 왠일인가. 허름한 곳간 들어가서 청소밖에 안했는데 그렇게 징징거리면서 청승맞게 찬양했던 현장이 먼 훗날 하나님께서 그 현장을 이렇게 갚으시나 하는 게 얼마나 얼굴이 뜩ㄱㅂ고 한켠에 너무나 감사한지. 살다보면 정말 이건 아닌데. 그게 사람이든 일이든 꼭 그런 게 있어요. 놀랍게도 그 속에 하나님이 은혜를 감추어 놓으세요. 믿습니까.

38
Q

Joshua 10:12 (KRV)

Joshua 10:11 (KRV)

A

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하매

나사 에 수퍼 컴퓨터 만지는 해롤드 힐 이라는 분이 있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해요. 하루가 모자라요. 학자로서 과제를 남겨놓다가 어느날 예배를 드리다가 그날 본문이 여호수아 10장. 설교도 아니고 예배시간에 이 사회자가 본문 읽어내려가는데 태양아 머무르라. 달아 너도. 이 본문을 듣다가 해롤드 힐 박사가 예배시간에 완전히 새카맣게 잊어먹고 오마이갓. 이랬겠죠. 소리지르고 뛰어나가요. 여기에서 그 힌트를 얻어요. 기브온 골짜기 태양과 달을 향해 멈추어라 고 했을까요.

11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의 비탈에서 내려갈 때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덩이 우박을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우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욱 많았더라

벧호론 은 벧 은 집입니다. 호론은 구멍이요. 즉, 이 벧호론은 가나안 땅의 우상의 중심지에요. 구멍을 파놓고 태양과 달을 섬기던 장수와 부귀와 자손 번영의 기대를 가지고 신을 섬겼어요. 가나안 우상 최고중심지가 벧호론 비탈길입니다. 산속에 우상단지 만들어놓고 피조물에게 절을 하며 도움이 온다고 기대했어요. 시인이 한방에 뒤집어요. 산으로 눈을 들어 내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은 하나님께서 도움이 온다. 온 땅에 하나님의 권능을 선포하는 역사입니다. 태양아, 달아, 멈추어라!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나가면, 태양아, 달아, 멈추어라, 이 선언과 성취가 약속대로 주어질 것이며,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태양아, 달아 멈추어라, 승리를 선포하는 놀라운 은총의 광경이 여기 있는 거에요. 오늘도 피하고 싶은 현장, 사람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오늘도, 이 말씀이 이 한 주간을 힘차게 시작하며 큰 능력의 말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9
Q

Joshua 10:15 (KRV)

Joshua 10:43 (KRV)

A

이중적인 구조. 주셨는데 싸워야 해요. (!) 이유는 첫째, 순종을 배우고 둘째,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화되어가는 것을 연습시키기 위해 이 과정을 이중적으로 두었습니다. 인물로 보자면 야곱을 택하셨어요. 그런데 평생에 걸쳐 하나님이 야곱을 만들어가세요. 이 땅에 복을 추구하고, 이땅의 물질에 목매이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생에 하나씩 하나씩 불순물들을 뽑아나가십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경험하는가가 참된 복인지 깨닫게 됩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나아가십니다. 여호수아도 같습니다.

15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길갈 진으로 돌아왔더라
꼭 전투 후 길갈 로 돌아와요.

43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로 더불어 길갈 진으로 돌아왔더라

“애굽의 수치가 물러갔다.” 우리가 성도로 부름 받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초로 부름 받습니다. 왜 십자가를 강조하고 예수를 강조하고 죽으심을 강조해야 하는가. 십자가만큼 하나님의 강렬한 의지가 나타난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대속물로 내어주시기까지는 내가, 이 아들 걸고 내가 너에게 새로운 생명을 시작했다. 여러분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강렬한 의지를 확인하는 장소, 길갈입니다. 전쟁터같은 일상에서 돌아와 예배의 자리로 옵니다. 구속의 주님을 바라보고, 또 확인하고, 다시 또 전장으로 나아가요. 또 피투성이 되어 돌아와요. 다시 한 번 죽으심과, 절절한 사랑을 확인하고 또 나가요. 같은 패턴입니다. 가나안 온 지역에서 전쟁을 해나갑니다. 백성들이 사실 싸울 전쟁 없어요. (!) 흉내만 내고 그 곳에서는 하나님이 기적을 주시고 역사하세요. 그리고 다시 길갈로 돌아와요.

예배는 뭐죠, 반드시 제물을 드리도록 되어있죠. 예수님을 예표. 솔로몬이 평생을 걸쳐서 한 사람 찾죠. 이 땅에는 그 사람이 없더라. 로마서 5장에 아담을 통해 죄가 들어오고, 두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길갈은 그것 확인하는 장소입니다. 훌륭한 군인의 복장은 버클이 번쩍이고 줄이 반듯이 가있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직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피투성이 되어 싸워요. 처절하죠. 까딱하다가는 죽을 수 있고 순간의 차이로 살아날 수 있고 죽음과 삶을 왔다갔다 하면서 처절하게 살다가 또 길갈로 옵니다. 그렁그렁 눈물흘리며 왜 한 분 밖에 없으신 그 분을 주셨을까. 나를 얼마나 깊고 넓게 사랑하셨는지. 사실 그 폭을 잘 이해못해요. 왜 사랑하셨나. 저도 의문이에요. 사랑하신 사실은 알겠어요. 믿음이라는 은혜를 주셔서. 아들을 대속으로 내어주신 것 까지 사랑하신 것은 알겠어요. 그런데 왜 날 사랑하셨는지 잘 모르겠어요. 깊이가 너무 깊어서 내 마음이 너무 얼룩져서 잘 모르겠어요. (!) 계속 길갈의 현장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철철철 흐르는 그 강에, 그 사랑 힘입어 또 한주간 나가고. 처절하게 싸우고 돌아와 길갈에 머무는 백성들의 삶입니다.

40
Q

Judges 7:1–3 (KRV)
기드온이 미디안을 치다
Judges 7:4–6 (KRV)

A

한 가지 교훈은, 딱 하나를 물어요. 내 힘으로 살래 네 힘으로 살래. 늘 갈등의 현장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육적인 습성이 남아있어요. (!) 이것을 순종이라는 과정을 통해 확인하기 원하시죠. 계속 순종하고 밟고 나가는 것이죠. 성경의 모든 역사는 이것을 검증하는 역사입니다. 기드온의 삼백용사. 무슨 특공대처럼 이해해요. 여기에는 뿌리깊은 세속주의 사고방식이 있기 때문이에요. 뭔가 그래도, 전쟁을 치룰 만한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겠는가. 이런 상상을 해석이라는 과정을 통해 합니다. 사사기 7장 볼까요?

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삼만 이천이 싸우러 갔다가 이만 이천이 떠나요. 남은 일만 전쟁할 맛 나겠어요 안나겠어요? 못하겠다고 집에 갔어요. 분위기상 전쟁할 분위기일까요?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 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미디안은 몇십만 대군이요. 그런데 자꾸 수가 많다고 빼세요. 수로 이겼다 착각할까 생각할 때 이 수가 많다. 물 마시게합니다. 삼백명은 물을 떠서 마셨어요. 나머지 구천 칠백명은 물이 흐르니까 개처럼 입에 대고 핥았어요. 두 상황을 보시고, 개처럼 입에 대고 핥는 자를 돌려보냈어요. 어떤 책에 보니까 군인으로서 그거는 할 태도가 아니었다. 일단 전쟁을 치루는 군인으로 경계심에 문제가 있었다. 손에 물을 떠서 경계를 서며 물을 마셨기 때문에 택했을 것이다. 소설을 쓰세요. 정말 그랬을까? 딱 하나의 관점입니다. 너무 많다.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기에는 너무 많다. (!) 다수를 돌려보내고 소수만 남기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기드온의 “용사”라고 주장합니다. 소수인 것 말고는 없습니다. (!) 하나님의 능력과 힘만 의존하는 것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가나안 전쟁의 중요한 원리에요. 전쟁 후 반드시 길갈로 돌아와 모든 애굽의 수치가 물러갔다는 그 길갈에서 다시 전쟁을 준비시킵니다. 그 길갈은 우리가 어느 자리에 있건 누구의 공로로 이 자리에 있는가를 확인하는 경배의 장소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일에 이렇게 저녁 늦도록 찬양하고 기도가운데 하나님께 새 힘 얻는 이유는 길갈의 확인 현장이에요. 오늘 주님의 힘으로 한주간 시작합니다. 주말이 아니에요 절대. 주말은 세상에서 말하는 논리고 주일은 한 주에 시작의 날이에요. 이 하루를 실패하면 한주간을 실패해요. (!) 반드시 뭐로 시작해요, 길갈의 예배로 시작해야 합니다. 이 예배를 통해 저와 여러분들이 힘의 원리가 아닌, 은혜의 원리로 한 주간 승리케 하여 주소서.

41
Q

Joshua 13:1 (KRV)
정복하지 못한 지역
Joshua 11:21–22 (KRV)

A

1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어쩌죠? 전쟁이 끝나면 안되는데 끝났어요. 끝난 이유가,

21 ○그 때에 여호수아가 가서 산지와 헤브론과 드빌과 아납과 유다 온 산지와 이스라엘의 온 산지에서 아낙 사람을 멸절하고 그가 또 그 성읍들을 진멸하였으므로
22 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 아낙 사람이 하나도 남음이 없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약간 남았었더라

약간 남았더라. 아스돗에만. 23절과 13장 1절 의 단어차이가 뭐냐면. 23절 마지막에는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을 따라 기업으로 주었다. 기업으로 주었어요. 그런데 13장 1절에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 어마어마한 차이에요. 기업으로 주었는데 얻을 땅이 많아요. 기업이 되었다는 거에요 기업이 안되었다는 얘기에요? 아직 아니에요. 얻을 땅. 야사리. 포세스. 기업으로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소유할 땅이 많이 있어요. 자기 기업이 안되었는데 전쟁은 끝났어요. 그 이유는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 에만 조금 남아있어요.

13장에 아직 얻을 땅으로 남겨져 있어요. 남긴 원리는 힘의 균형. 무서운 불순종의 선례에요. 사울왕, 너는 아말렉을 진멸하라. 전쟁이 승리하고 거의 다 거머쥐었는데 하나님이 노하죠. 사무엘 선지자에게 나타나서, 내가 사울 왕 삼은것을 후회한다. 하나님의 속성상 후회하실 수 없어요. 오류나 실수하셨다는 게 아니고 수사적으로 그만큼 사울이 범죄한 죄에 대해 내가 마음 아프다. 부모님이 자식이 애먹이면, 내가 이걸 괜히 낳았지. 그만큼 말좀 잘 들으라. 반증적이에요. 사울에게도 하나님이 엄청 마음이 아팠어요. 사무엘이 심방가보니까 안들리던 짐승 우는 소리가 들려요. 아니 이게 왠 소리입니까. 아 저저 그그그 게 말이죠, 다름이 아니고. 가서 전쟁했고 이겼고 진멸했는데 이 짐승 우는 소리는 하나님 제사 때 쓰려고 남겨놓은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추상같이 하나님이 당신을 버렸습니다. 실질적으로 그 때부터 보좌만 왕이었지 그 왕권이 다윗집안으로 넘어갑니다. 그 이후로 사무엘은 사울을 만나지 않아요. 유기되었죠. 진멸하라고 했는데 남겨두어서.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같은 원리에요. 전쟁은 그쳤는데, 그칠 상황이 아닌데 끝냈어요. 왜 그랬나,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약간 남았어요. 힘의 원리의 이해로 이 전쟁을 이해한 것입니다. 무슨 큰 위력도 없고. 순종의 원리가 아닌 힘의 원리로 이해하고 말했어요. 언젠가 말씀드렸죠, 교회 공동체에 대해 하나님 제일 싫어하는 것 두 가지는, 사람의 영향력과 인간이 힘의 논리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 (!). 교회는 헌금 외에 어떤 수익이 있어서는 안되요. 은혜 로만 지배되는 교회여야 해요. 어느 강변에, 교인들은 얼마 안되는데 힘에 부치게 어마어마한 건물을 지었어요. 교회 수뇌부가 생각을 잘못했어요. 임대를 좀 주자, 전도될 때까지. 꿩먹고 알먹고. 임대료 좋죠. 이 때부터 교회의 영성이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성도들 입장에서는, 임대료 들어오는데 뭐, 헌신 안합니다. 결국 이단 교회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어요. 강북쪽으로 가다보면 교회 하나 보입니다. 아주 무섭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은혜 주시는 은혜의 원리로만 살도록 되어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가치에요. (!내 집 사고 내 차 사고 렌트 받고…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미국 교회가 처음 영국에서 종교 탄압에 못견뎌 배를 타고 넘어와서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합니다. 제일 먼저 교회 짓고 인구가 퍼져나가면서 기독교 국가가 되는데 남북 독립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의 이면에 절대적인 권력인 교회가 작용합니다. 교회의 힘. 국가가 은혜를 입었어요 교회로부터. 국가에서 교회에 재정 지원을 해주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신나요. 공인도 나고 돈도 지원해주고. 몰몬교랑 여호와의 증인도 지원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국가가 그럼 다 안해. 그럼 교회가 당황하기 시작했고, 교회마다 어떤 영적인 위기가 닥쳤냐면 설득력 좋은 목사를 찾기시작합니다. 인격, 영성, 실력, 하나님의 뜻, 성경적 가치관보다 설득력과 말빨 좋은 스타 목사를 교회마다 찾기 시작해요. 신학교에서 뭘 배우냐면 어떤 설교가 입맛에 맞을까. 골몰하기 시작하며 목사 스카웃 전쟁이 일어납니다. 세속적인가치와 기준으로 목회자를 모시기 시작합니다. 이러면서 점점 미국교회는 타락에 빠진 겁니다.

미국교회가 국가의 재정을 받을 때 교회 본질적인 외의 것들을 자꾸 하기 시작했어요. 비본질적인 사업들을 벌였습니다. 생명 구제하는 일보다는 쓸데없는 일에 재정 투자하다가 끊어지니까 위기가 왔습니다. 목회자도 설득력 스타목사. 서서히 실용주의 세속화가 들어와서 무너져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교회에 비슷하게 들어옵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원리만 지배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사에는 가장 위대한 사사인 삼손을 무너뜨린 데릴라. 가드에서는 골리앗. 아스돗에는 우상이 있던 곳, 하나님의 법궤가 빼앗겨집니다. 신상앞에 놓여지죠. 힘의 논리로 남겨두었던 이 세 곳에서 이스라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욕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그대로 거두는 게 역사입니다. 역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 한 사람의 역사도 무서워요. 아버지의 등을 보고 배웁니다. 교회도 역사의 인식에 눈떠야해요. 이게 그대로 가면, 철저히 진멸치 않으면, 어떤 거대한 세력이 일어나 우리에게 올무가 될 것인가. (!) 롯이 두 딸과 동침해서 모압과 암몬의 자손을 뱉어냅니다. 불순종의 산물이죠. 이스라엘 역사에 목덜미를 항상 물고 늘어집니다. 타락의 부산물들이었습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동의 안하실 수도 있어요. 어머니들이, 일차, 이차, 삼차 떨어지면 신학교나 가라. 한국 교회 어머니들이 하셨어요. 왜 그래야 합니까? 제일 좋은 것들이 가도 시원치 않은데. 그 결과는 뭐에요?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도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았으면 해요. (!) 가드와 가사와 아스돗에 남겨두었던 불순종의 씨가 어떻게 발아하고 열매를 맺는지 보았습니다. (!이 가르침을 남겨두면 큰일이다)

42
Q

Joshua 21:43–45 (KRV)
약속하신 온 땅을 얻다
Hebrews 4:1–2 (KRV)
Hebrews 4:3 (KRV)

A

4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주마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으며
44 여호와께서 그들의 사방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 모든 대적이 그들을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음이라
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전부 점령케 하신 후에는 그들이 다 밟고 다 차지하고 전쟁의 역사가 완료된 후에는 안식을 주셨으되. 합니다. 이게 이스라엘 땅을 하나하나 먹어들어가는 역사가 안식의 개념과 맞물려 들어가는 역사에요. 히브리서 4장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믿지 않았다는 거에요. 순종하지 않았다는 거에요. 불순종이라는 거죠. 가나안 땅은 계속 두 개념이에요. 순종할래 불순종할래? 네 힘으로 살래 내 힘으로 살래? 이 개념이에요.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이것은 이미 완성된 일이기 때문에, 택한 백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하시는 전쟁이요. 주시기로 약속했던 안식이기 때문에. 아무리 돌아다니고 버티고 고집부려도 하나님은 그 분의 일을 하시는 거에요. 말을 듣던 안듣던 끌고 가는 거에요. 창세전부터 진정한 안식을 주기로 약속된 거에요. 하나님 입장에서 얼마나 애 먹으셨겠어요. 우리가 그렇게 붙들려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43
Q

Hebrews 4:14–16 (KRV)

예수는 큰 대제사장

A

여러분들의 인생속에 전 인격속에 아직 안식으로 들어가야 할영역이 있어요 없어요. 아직 남아있어요. 우리 속에는 아직 철저히 순종되지 않는 영역이 있는 거에요. 싸워서 점령 당해야 할 영역이 있다구요. 가나안의 점령의 그림으로 나타나는 거에요. 문제는 그 영원한 안식, 영원한 약속을 우리 홀로 싸우게 두시지 않고 누가 앞장서서 동행하고 계시죠, 우리의 대장 여호수아, 예수요. 은혜의 싸움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아직도 고단한 우리의 삶의 문제에는 안식의 영역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 영역은 내 불순종에서 약이 되는 안식이 되는 영역이에요. 더욱 더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데,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 이 싸움 하나님의 은혜로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나 성도의 삶이나, 은혜의 삶을 하는 연습하는 것이요. 그것은 내 힘 빼는 작업이에요. (!) 이것 잘 안되요. 물에 던져놓으면 저는 수영을 잘 못합니다. 물에만 들어가면 몸이 굳어져요. 근데 수영 잘 하는 사람들 보면 몇시간 물에 떠있어요. 힘을 다 빼기 때문에. 은혜의 강물에 던지는 거에요. 모든 인생을 맡기는 거에요. 아멘 한대로 안된단 말이에요. (!) 이거는 아멘이라는 구호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의 문제에요. 은혜의 영역에 들어가기 위하여.

하나님이 여러분들로 누리도록 명하신 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44
Q

Joshua 12:24 (KRV)
Joshua 12:2 (KRV)
Joshua 12:4 (KRV)

A

24 하나는 디르사 왕이라 도합 삼십일 왕이었더라
뭐가 빠졌냐면 동편 쪽 점령한 지역이 빠졌어요. 왜 뺐을까요?

2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라 그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지경 얍복 강까지며

4 또 르바의 남은 족속으로서 아스다롯과 에브레이에 거하던 바산 왕 옥이라

여기에 무서운 메세지가 남겨져 있어요. 이 두 왕이 빠졌어요. 아무리 그들이 칼과 창으로 싸워서 이기고 점령했더라도 이건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 아니에요. 서른 세 왕이어야 합산이 맞는데, 서른 한 왕으로 역사가 마감해요. 하나님이 주신 것만 복이라는 뜻입니다. 믿습니까? (!건축가 되게 하셨나 안했나) 삶의 중요한 원리요. 내가 아무리 아둥바둥 해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면 복이 아니라 저주죠. (!) 아브라함과 롯이 살림살이가 커져요. 둘이 헤어져요. 롯은 어디가 좋을까 헤매이고 다니다가 소돔과 고모라를 발견해요. 얼마나 좋았던지,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맞지 않는 묘사가 등장해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한 문장에 등장해요. 보니까 애굽땅같아요, 그 당시 묘사는 최고 좋다. 그런데 자기 눈에 최고 좋아보이는데 하나님이 주신 기업처럼 느껴지더라. (!) 그런데 완전히 거덜나고 망해버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주신 복이 아니었어요. 반대로 아브라함은 남겨진 땅, 버려진 땅을 택할 수 밖에 없었지만 영육간 복의 근원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간 지역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는 거에요. 그러나 롯이 간 곳은 자기발로 쟁취하고 붙들고 있었던 거에요. 한 순간에 날라가요. 버려진 땅 같았는데 하나님 주신 땅으로 붙잡고 산 아브라함은 영육간 복된 땅이 되요.

야곱처럼, 움켜쥐고, 내가 복을 쟁취하려는 육적인 근성이 남아있어요. 그런데 하나님 주시는 복이 아니에요. 잡아서 복같이 느껴지지만 다 망하고 멸망하는 지름길을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서른 세 지역을 먹었지만 두 지역을 삭제합니다. 그건 내가 준 기업이 아니다. 복이 아니다. 그 두 지역은 역사 속에서 결국 사라집니다. 이스라엘 기업이 될 수 없어요.

45
Q
Joshua 13:13 (KRV)
Judges 1:19 (KRV)
Judges 1:21 (KRV)
Judges 1:27–28 (KRV)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사람들
Judges 1:30–32 (KRV)
Hebrews 3:14–19 (KRV)
A

13 그술 사람과 마아갓 사람은 이스라엘 자손이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술과 마아갓이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더라

소유의 땅, 상속의 땅임에도 불구하고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아니했습니까? 둘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사사기의 처음 주제가 쫓아내지 아니하였음으로. 왜 쫓아내지 않았을까요? 힘이 딸려서요? 아니요 가나안 땅의 점령은 총칼로 하는 전쟁 아니요. 순종의 훈련입니다. 순종 안했다는 거에요. 왜 안했을까요? 가나안의 우상 숭배의 문화에 따른 달콤한 육적인 문화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쫓아내지 못했다는 핑계를 하죠.

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고로 그가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21 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한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더라

27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 향리의 거민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돌과 그 향리의 거민과 이블르암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사람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하였더니
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30 ○스불론은 기드론 거민과 나할롤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나 가나안 사람이 그들 중에 거하여 사역을 하였더라
31 ○아셀이 악고 거민과 시돈 거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거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32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니 이는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사사기의 역사입니다. 우상 노름에 따른 육적인 문화가 너무 달콤해서 쫓아내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내용과 같아요. 지금도 이거 그렇게 안되는 줄 이성으로는 동의도 하고 아는데, 계속 우리 삶의 문제로, 삶의 현장으로 가면 끊어내지 못하는 거에요. 철저하게 육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요. (!건축가 필요없다!) 육체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온전한 안식이 이루어지지 않은 거에요. 하나님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삶을 말합니다. 상속으로 주었는데, 소유로 주었는데, (!건축가, 그냥 인하우스 소유로 주었는데!) 쫓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얼마나 어리석은 가난한 삶입니까? (!아무리 좋은 기회라 해도 필요없다, WEA 와 같은 것)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하나님이 누리라고 하던 땅을 밟아만 보고 동편으로 건너가는 우매한 역사입니다. 맛만 보고 떨어지는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르우벤 갓 지파. 언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가 하면, 칠년이 걸립니다. 칠년 만에 다 점령을 해요. 근데 놀라운 것은, 부분 적으로 계속 쫓아내지 못하고 있어요. 전혀 쫓아내지 못해요. 아니, 조금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쫓아내지 않고 있어요. 언제 정확히 쫓아내는지 압니까? 다윗이 나라를 통일하고 헤브론으로 수도를 옮기고 통치를 시작할 때 완전히 쫓아냅니다. 왜 그 때 완벽히 통치됩니까?

예수님이 다윗의 혈통을 통해 오세요.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 싸움이 아니에요. 아말렉을 진멸할 때에도. 하나님이 그 싸움의 주도자임을 천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말렉과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이 주도로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합니다. 모든 육적으로 쫓아내지 못하는 싸움도 우리 의지로, 노력으로 되지 않아요. 위로부터 임하는 육체적 세력을 강권적으로 엎어버리는 능력이 임해야 해요. (!) 그 능력이 임해야, 우리 속이 제대로 뒤집어 집니다. 우리의 득도와, 경건의 연습으로, 안되요. 어디까지 흉내는 내는데, 온전히 뒤집어지지 않아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 임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붙들고 질기디 질긴, 삼겹줄 같은 죄악의 꼬리들이, 내 의지로 안되요. 제어할 수 없는 강력한 은혜를 입어야 해요. 성령의 권능이 불사르고 제압하는 그런 역사요. 위로부터 오는 그 능력이요. 다윗 때, 예수 그리스도만이 완전히 끊을 수 있습니다. 그 분이 대장되어야 해요. 그분과 걸음 같이 하고 그 분이 대장 되지 않으시면 역사를 온전히 이루어낼 수 없어요. 절절히 예수 그리스도의 바지 가랑이라도 붙들고 가야 해요.

하나의 적극적인 개념 하나. 중고등학생들이 학교가야 할 시간에 오락실에 가서 하루종일 오락해요. 오락하는 게 나빠요 교실에 안 앉아있는 게 나쁜 겁니까. 어떤 게 더 나빠요? 우리는, 나는, 도둑질도 안하고 남 안때리고 나쁜 말 안했습니다, 이게 잘난 거 아니에요. 오해 하는 분들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진 일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요. 그 시간에 그 학생이 오락실 앉아있는 게 문제 아니에요. (!@선교사인 것 처럼, 정말 선교지에 있는 것 처럼, 베레넷 로컬 처치 뉴스 보고 정말 그들과 마음을 합하여… 내가 하루하루 사는가) 불구덩이에서 우리를 건져 내실 때에는 너 큰일 날 뻔 했구나, 가 주 목적이 아니라 건져 냈으면 싹 벗겨서 씻겨서 좋은데로 데려가야죠. 그게 적극적인 구속하신 목적이잖아요. 하늘의 유업을 이을 상속자라. 예수 믿으니까 짜증난다,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소극적인 것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더 적극적인, 영광스러운 것이 있기 때문에. 에베소서 1장에서 확인하십시다.

46
Q

Ephesians 1:3–12 (KRV)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령한 복
Ephesians 1:15–19 (KRV)
바울의 기도

A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헬라어 원문으로 전혀 문장이 안됩니다. 주어 술어 없어요. 뒤죽박죽 썼어요. 쓰고 싶은대로 사도가. 이렇게 얘기한 겁니다. 여러분, 제가 어제 길을 가다가, 어마어마한 걸 봤는데, 아, 그걸 어떻게 설명하죠, 놀랍습디다, 말이죠, 이야 난 보다보다 처음 봤어요. 하여간 엄청난 걸 보긴 봤구나. 에베소서 1장은 그런식으로 쓴 거에요. 무슨 내용인지 몰라요. 3절부터 찬송하리로다, 창세전에, 사랑안에서,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시고 은혜의 풍성함을, 넘치게 하사, 때가 찬 경륜, 통일하게 하고, 기업이 되었는데 영광의 찬송이 되게. 사도 바울이 얼마나 흥분되었는지 감을 잡으시겠습니까? 말하고 싶은 걸 거의 표현을 못하고 뒤죽박죽이에요. 그게 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궁금하시죠? 교회에서 오백원씩 받을 수도 없고.

15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이걸 위해서 정말 뒤죽박죽 설명한 거에요. 막 올라가다가 이 이상 표현이 안되어서 한 옥타브 낮추어서 가는 것. 문학에 이런 게 많아요. 여러분들이 상속자 되어 누릴 기업의 영광이 얼마나 어마어마한가를 설명해요. 우리가 부름받은 적극성이 여기있다구요. 이것도 저것도 못하고 소극적인 부정적인 이거 때문에 부르심 받은 게 아니라. 어떨 때 아침 부터 저녁까지. 체육관에서 스크린 보고 뭐하는 거죠. 이거를 능히 상쇄하고도 넘치게 남은 어떤 부르심의 상속자의 영광의 풍성이 있기 때문에 이게 아무 문제가 안되는 거에요. (!)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기업의 상속자로 부르신 이유에요. 이스라엘 공동체가, 모든 것을 소유로 주었지만 쫓아내지 못해요. 하나님 통치에 들어가지 못해요. 어느날 그 영광을 봐요. 이야, 어마어마한 영광을 본 자가 세상것에 취하여있단 말인가. 이제까지 좋은 줄 알고 붙들고 있던 것들이 하루 아침에 버려집니다. 그거를 아직 눈떠서 확인 못하는 거에요. (!) 이 영광스러운 예배에 찬양할 때마다 문자로는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하늘의 환희, 하늘의 영광, 확인하고 바라볼 때 마다, 내가 목매어 끊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한순간에 뒤집어 던질 수 있어요. 그 상속자로, 소유를 주셨어요. 이 문을 나서서 힘차게 살아갈 때에, 위의 것을 찾으라. 골로새서처럼 한 주간 내내 영광스러운 위의 것을 찾고 목숨을 걸고 달려가는 상속자의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47
Q
Joshua 13:1 (KRV)
정복하지 못한 지역
Joshua 13:6–7 (KRV)
Joshua 13:15 (KRV)
르우벤 자손의 기업
Joshua 13:24 (KRV)
갓 자손의 기업
Joshua 13:33 (KRV)
A

13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늙었고 할일을 다 마쳤더라 하면 좋은데 아직 얻을 땅이 많이 남아있대요. 그러고 모세의 이야기를 합니다.

6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의 산지 모든 거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나의 명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어떡하지? 이 엄청난 일들을 누가 감당한단 말인가? 걱정스러운 차원에서 이 기록이 있지 않고 그래서 모세 이야기를 꺼내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여호수아야, 너도 세월에 따라 나이 들어가는구나. 근데 걱정하지 말고 그냥 가 빨리. 누가 하기 때문에? 이 일을 내가 한다. 내가 는 하나님 본인을 가리켜요. 사실상 여호수아서에서 말하고 싶은 중심 주제입니다. 하나님 홀로하시는 역사. 단지 누가 부름받아 쓰임받을 뿐입니까? 모세와 여호수아가 쓰임받을 뿐입니다. 모세 때문에 일이 되는 건 아니에요. (!) 그래서 모세 이야기가 줄줄히 나와요.

15 ○모세가 르우벤 자손의 지파에게 그 가족을 따라서 주었으니

24 ○모세가 갓 지파 곧 갓 자손에게도 그 가족을 따라서 주었으니

33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핵심은, 내가 한다. 나이들어가면 걱정말고 세월 따라 가라. 내가 한다. 한국 교회가 세계 선교 역사에 많은 걸음을 남겼습니다. 지워야 할 게 있어요. 지도자의 목회가 너무 가부장 적이고 너무 영웅시 되어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폐단이 한국 교회에 어떤 열매로 나타나냐면 세습이요. 가난한 현장 세습은누가 말려요. 그런데 공평치 않게 아버지의 엄청난 목회현장을 마치 기업을 물려주듯 공공연하게 이루어집니다. 절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세요. 죄송하지만. 그 사람 없으면 교회가 무너집니까?

교회는 당회가 잘났던 못났던 질서가 당회에서 결정하고 당회를 중심으로 모든 것들이 움직이는 게 장로교의 원칙적인 방침입니다. 상황기관이 두 개 있으면 교회는 혼란 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당회나 위원회 둘중 하나 폐해야 합니다. 그런데 장로교이니 당회를 폐지할 수 없으니 위원회를 폐지해주십시요. 제가 교회를 사임하든지 폐지할 때까지 싸우는 것인데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분위기가 엉망이죠. 뜬금없이 찾아와서 젊은 목사가 엉뚱한 얘기를 하니까. 단호한 마음을 가지고 갔습니다. 식사를 다 하시고, 제가 그럼 교회를 나가죠. 뭐라고 했냐면, 그러면 그렇게 하십시다. 제가 미쳤었나봐요. 목회는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다. 목회는 담대하게 하는 게 아니라, 소심하게 하는 거에요. 왜냐면, 목회는, 일이 우선이 아니고 생명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충현 교회에서 잘 나가다와서 콩인지 팥인지 제정신이 아니었죠, 제가 그 발언에 대해 목회적으로 아직도 마음에 정말 남아요. 정말 떠났어요. 일가들이 다 빠져나가고 교회가 텅빈 것 같아요. 근데 수입이 반 줍니다. 엎지러진 물에 대해서는 후회안합니다. 이것도 뜻이 있어 엉뚱한 짓을 하게 했겠지. 아버지를 믿고 기도했어요. 하나님, 나머지는 주님이 알아서 하십시요. (!) 그 다음 장로분 세 분 그리고 원로목사님까지 데리고 와서 야단을 쳤어요.

저는 사람의 재력으로 교회가 좌지우지 되는 것은 너무 싫었어요. 온 성도들이, 제 와이프도 잘 모르는 스토리입니다. 목회의 스토리는 가능하면이 아니라 절대 얘기를 안합니다. 온 교인이 공격을 하는데 정말 견디기 힘들더라구요. 남편을 잃은 와이프 분이 그대로 그 몫을 헌금하는데 깜짝 놀랐어요. 그 액수를 넘가하는 헌금을 하기 시작해요. 그 헌금이 채워져서 하나님이 도우셨다. 이걸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아 교회라는 곳은 사람이 있고 없고에 휘청 거리는 데가 아니구나. 동의하십니까? (!) 가장 밑바닥에 깔려야 할 논리입니다. 여호수아가 떠난다고, 모세가 떠났다고 가나안에 못들어갈까요? 여호수아야, 걱정하지 말고 가, 내가 할 거니까. (!)

가끔가다가 하구잡이가 있어요. 뭐든지 자기가 다 해야 돼. 내가 없으면 안된데. 주체할 수 없는 잘남. 그말이 맞아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모든 걸 자기가 해야 해서, 옆에서 궁시렁 거리면 저한테, 제가 너무 똑똑하니까 시기해서 저런다고. 건강한 사고구조를 가졌다 생각되더라구요. 아니에요. 물론 전문가가 일하면 좋겠죠. 전문가 안해도 교회 일은 하나님이 다 하시기 되어있어요. 교회 보직은 돌아가야 해요, 순환되어야 해요. 뭐든지, 어떤 조직이든지, 한 사람이 한 군데 앉아있으면 자리가 가져다주는 허물이 있을수 밖에 없습니다. (!) 익숙하고 안전한 자리를 확 흩어버리실 때 있어요. (!) 전능하신 장중에 붙들고 여호수아는 가는 거에요.

젊은 시절에 어떻게 깊은 좌절을 겪습니까. 여기까지 저도, 목회를 몇번이라도 사표내고 싶고 여기까지인가보다. 그런 절망적인 순간들이 있었어요. 근데 이게 교만한지 몰라요. 네가 뭔데 관둔다 만다 하느냐. 관두지 뭐. 나 없이 해봐라. 근데 그거 아니더라구요. 내가 기분 나쁘고 모욕을 겪어도 하나님이 보내셨다면 덮어쓰고 하는 거에요. 왜? 이거 내 일 아니기 때문에. 내 일같으면 싫으면 관두죠. 나도 보람되고 떳떳하고 자존심도 세워지고. 하나님 일은 자존심 밟히며 욕 먹어가며 하는 거에요. 이거, 하나님이 시키는 일이거든요. (!) 주님이 시키는 일이라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굉장히 중요한 원리요. (!) 그리고 하나님이 하세요. 이번에 간사 못나온다는데, 어쩌죠. 괜찮아요. 하나님이 하세요. 역사는 흘러가도, 주의 나라는 왕성해지게 되어있습니다. 홍해 갈라지는 기적을 보고 만나의 떡이 떨어지는 축복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리고가 무너지기를, 새벽에 닭소리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48
Q

Joshua 14:12 (KRV)

Genesis 49:9–10 (KRV)

A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찌라도. 갈렙의 믿음이었을까요? 중요한 단서.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아브라함에 약속했던 언약의 말씀이 이 후손들을 붙들고 있었던 거에요. 우리가 붙들면 놓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일방적인 언약이에요. 내가 한다. 갈렙이, 여호수아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신앙이 푸르렀던 이유는 자기 의욕이고 자기 신앙입니까? 아니요, 하나님이 언제나 아들을 걸고 하신 싸움이요. 이것을 언약에 붙들렸다고 합니다. (!)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요. 갈렙의 뜻이 사자 새끼입니다. 유다지파로 편입됩니다. 이 약속에 붙들린 것은, 나는,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나는 단순히, 그 땅이 가치가 좋고 땅값 올라갈까봐 물리적인 개념에 산지를 요구한 게 아니에요. 85세지만, 그를 늙지 않고 그 기상이 푸르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을 붙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그를 붙든 거에요. (!) 그 인생은 늙지 않습니다. 나이가 중요하지 않아요. 성과 땅을 요구한 게 아니라 누구를 요구합니까? 실로가 오시기 까지.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갈렙이란 사자새끼요. 유다지파가 야곱의 축복속에 사자새끼로다. 실로가 오시기까지. 예수를 붙들 때 그 소망은 늙지 않는다. 이것이 중요한 화두입니다. (!)

나이에 세월에 겁먹지 마세요.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의 언약에 붙들리면 되요. 결코 지치지 않고 늙지 않습니다. 근데 자기가 붙들 때 자기 힘 빠지면 끝나는 거에요. (!) 나치가 지도자를 고를 때 재밌는 방법 하나. 일순위는 능력은 있는데 의욕이 없는 사람을 일순위로 뽑아요. 두번째, 능력도 있고 의욕도 있고. 세번째 제일 안뽑을 대상은 의욕만 있고 능력이 안되는 사람. 의욕은 일을 다 망쳐놔요. 의욕만 있어서. 신앙의 요소속에 내 의욕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언약에 붙들리는 게 중요해요. (!)

어떤 사람 문자보내요. 준비된 종 여기있습니다. 토플 몇점, 선교 준비, 어느 대학 출신. 정기적으로 문자 보내요. 불타는 마음을 알아주십시요. 반응 없으면 직접 메일로 비서실에 난리나요. 불지를 것 같아요. 무작정 쳐들어와요. 왜 준비되었는데 안써주냐고. 처음 사역자가 부역하면 일 잘 안맡겨요. 두 가지 문제. 불러준 쪽의 기대와 자기 의욕이 맞물려서 반드시 사고칩니다. 신앙을 오히려 무섭게 반응하는 게, 인간의 의욕이 독이 들어가요. 이것이 분명한 하나님 약속에 붙들린 것인가. (!) 갈렙의 신앙에 의욕이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그 인생을 존재케 했던 핵심 가치. 아브람에게 찾아오셔서 일방적으로 하셨던 하나님의 언약이 갈렙을 늙을 때 까지 청년처럼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언약, 살아있는 말씀이 청년으로 붙들도록 축원합니다.

49
Q

Joshua 15:63 (KRV)

A

면면을 들어다보면 도저히 이 땅을 기업으로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인물들이요. 르우벤은, 자기 아버지의 첩과 통간을 해요. 유업으로부터 제외되었었죠. 레위와 시므온은 아버지를 깊은 절망에 빠뜨려요. 딸 디나가 나갔다가 큰 변고를 당했죠. 오라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고 세겜 성에 피의 복수극을 벌여요. 이 때 야곱이 재를 뒤집어쓰고 슬픈 고백은, 이 모든 일들이 나를 해롭게 하는 일이로다. 너희가 나로 죽게 하는 구나. 그래서 사실, 그들도, 장자의 기업받을 자리에서 빗겨갑니다. 네번째가 유다에요. 유다는 장자의 유업을 이어받을 자격 있나요? 지금 봤잖아요. 동생을 애굽에 파는 주동자, 동시에 며느리와 통간하여 불행의 씨앗을 낳은 인물. 지금 온 형제들의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중재의 자리에 던집니다. 하나님은, 이 슬픈 절망을 경험한 유다에게, 오실 메시아가 이 지파에서 나도록 설계하십니다. (!)

여호수아서 15장.

63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니라

인간이 얼마나 질긴지. 그렇게 수많은 풍랑을 겪어내고 주신 하나님의 은총의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유다지파가 분배받은 땅 속에서 이 땅에서 모든 구속의 그림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어디를 못점령했냐면, 예루살렘에 여부스 족속이요. 몰아내야 됩니다. 오실 메시야가 오셔서 수난의 십자가를 지시지 않습니까.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여부스 족속이 거해요. 반드시 회복해야 될 하나님의 유업의 땅입니다. 장차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도성이 되어야 하는데, 여부스 족속이 아직도 강력하게 차지하고 있어요.

도정환 씨가 쓴 시 하나. 제목이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말씀의 힘을 봐요. 하나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불순종을 만나도 절망을 만나도 푸르게 푸르게 뚜벅뚜벅 앞으로 가는 거에요. 가끔 내 꼬라지 보고 절망하다가도 빙긋이 웃죠. 걱정마라. 너보다 말씀의 능력이 더 크다. 그 말씀 붙들고 서는 거에요. 성경의 풀 스토리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 대신하는 샘플 마냥, 징그럽게 말 안들어요. 우리 어머니들이, 애먹이는 자식들에게, 너 더도말고 너같은 새끼나라. 끔찍하죠. 지난 특새에 한 친구는, 자기 같은 자식 나올까봐 결혼 안하려했대요. 다행히, 그 친구 고백을 들어보면, 가끔 초등학교 대구에서 같이 다녔는데, 이런 얘기. 야 나는 지나온 시간들 보니, 내가 손댄건 다 망했다. 근데 손 안댄거는 다 잘되었대요. 뭘 손 안댔는데. 자식을 손 안댔대요.

얼마나 다 잘 반듯이 컸는지. 손댈 겨를 없이 다 미국에서 컸는데 다 잘되었대요. 담벼락같이 징징거리고 습기차고 벽같에요. 근데 말씀은 흑암의 벽을 뚫고 앞으로 가는 거에요. 담쟁이 처럼. 성경을 들을 때마다, 갈렙의 신앙은 그의 신앙이 아니라, 두 가지. 본문 13절.

50
Q

Joshua 14:14 (KRV)
Numbers 14:24 (KRV)
2 Samuel 5:5–7 (KRV)
다윗이 시온을 빼앗아 성을 둘러 쌓다 (대상 11:4–9; 14:1–2)

A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충성하여. 좇아서.

그래서 두 가지에요. 말씀하신대로. 말씀만 붙들었대요. 두번째는 충성하고 좇았다. 이 이야기를 누가 증거하는가.

24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자신으로 열심으로 생성된 신앙이 아니라 말씀만 잡았고 말씀만 좇았어요. 이거 밖에 없어요. 유다 지파의 불순종으로 성지 땅이 또 다 점령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언약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세월과 역사를 넘어 결국 탈환됩니다.

6 ○왕과 그 종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거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저희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결국 다윗이 빼앗습니다. 그의 믿음이나 용기와 신앙 이전에 누구의 언약대로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인간의 의지와 고집을 뚫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우고를 알고 고통을 보았다. 모세를 택해서 구원하려고 계획하십니다. 초야에 묻혀 40년 보낸 보세를 부르세요. 여기서, 부르짖어야 한다. 부르짖으면 그 고통을 알고 보고 들으시고 구원하신다. 감추어진 것은, 중요한 힌트 하나, 앞장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의 모든 역사의 행위는 그 근거와 기초가 어디에? 하나님의 언약이에요. 믿습니까. 우리들이 붙들어야 할 것. 열심과 신앙 이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언약을 붙드는 것, 갈렙처럼 그 언약을 푸르게 푸르게 주장하는 것. 언약이 빠진 깃발과 소리침은 허공에 대고 하는 것과 같아요. 하나님의 꿈이 되고 비젼이 되려면 약속을 붙들어야 해요. (!) 갈렙이 산지를 요구했던 신앙의 이유요 기개였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언약이 중요한 것입니다. 죽어도 말씀이에요 우리는. 왜, 나는 죽어 없어져도 말씀은 살아서 하나님 계획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가 그 기초위에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개판 치고 자빠지더라도, 말씀은 그 진상대로 끌고 가는 거에요. 야, 그만해라 끌고 가는 거에요.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붙들린 그분의 성실하심. 그분의 신실하심 입니다. 여호와의 인자는 아침마다 새롭습니다. 언약에 기초한 거에요. (!아 이렇게. 말씀을 순간순간 적용하는 삶.)

51
Q

2 Corinthians 9:5 (KRV)

2 Corinthians 9:6 (KRV)

A

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참 연보. 뒤집어 말하면 가짜 헌금도 있을 수 있다는 거에요. 절대 액수의 문제가 아니에요. 많이 헌금해도 혹 가짜로 드리는 헌금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헌금은 본인이 쓰는 게 훨씬 나요. 헌금에는 동기가 잘못된 헌금, 억지로, 인색하게 드려진 가짜 헌금이 많아요.

억지라는 말. 원문의 말로는 탐욕으로 드린 헌금이라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원문의 해석이에요. 플레오 넥시아. 억지가 왜 탐욕일까? 출애굽기 16장의 예. 하늘에서 만나를 주셨어요. 만나는 각 사람에게 며칠 분량으로 주셨죠? 하루 분량이요. 몇일에만 이틀 분량? 안식일 전날에만. 그리고 매일 한 사람에게 족한 분량의 만나가 내렸습니다. 근데 이 만나는 요한복음 대로라면 하늘의 떡, 그리스도입니다. 만나의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주님으로 충분한가 (!), 자족의 싸움이에요. 근데 연보를 드리는 고백속에, 그 개념이 훈련되어져야 한다는 얘기에요.

연 자는 버릴 연. 버려서 나누다. 연보에요. (!) 마가복음 12장에 가난한 과부의 헌금과 부자의 헌금이 예수님에 의해 소개되어요. 부자는 풍족함 가운데 헌금을 하고. 풍족은 넉넉한 게 아니라 잉여에요. 남는 것 중 헌금했다. 헌금은 남는 거에서 하는 것 아닙니다. 마게도냐,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극심한 가난 중에, 극심한 환란 중에 헌금했다고 되어있습니다. 억지로는 못합니다. 즐겁지 않고는 그 헌금 할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던 물질에 대한 훈련은 뭔가요? 만나로 충분하고 자족된 삶을 훈련하는 거에요. 신약식으로 해석하면, 헌금 생활의 의미 속에 주님으로 충분하고 자족된 삶을 훈련하는 것이요. 남은 물질이 헌금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잘라서 어떤 목적, 선교와 구제에 쓰여지도록 드리는 것은, 내가 이것으로 살지 않습니다 라는 하나의 신앙 고백이 되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

주님, 제가 이것으로가 아니라 주님으로 삽니다. 만나의 훈련이요. 남는 것으로 드리는 게 아니라. (!) 하나님은, 많이 내는 자를 사랑하지 않고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사랑해서 내는 것입니다. 헌금을 요구할 때는, 정확하게,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역의 부름입니다. 아무개야, 나는 너와 함께 이 일을 하고 싶다. 삭개오가 영접할 때 즐거이 영접했다 했어요. (!) 절반이라도 자기 모든 재산을 내어주겠다. 그 동기는 구원받은 댓가가 아니라 구원의 결과로 생기는 사랑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의 반응은, 나의 절반이라도 가난한 자를 위해 드리겠습니다. 헌금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남는 것으로가 아니라 잘라내어 사랑의 기초로 드리는 것입니다.

왜 인생이 탐욕이 되는가. 사람이니까, 인색한 마음 들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이면에는, 이 원문이 지적한대로, 뜻밖에도 탐심이 웅크리고 있더라구요. 욕심 내는 게 단순히 탐심이 아니에요. 주님으로 충분하지 못한 태도가 탐심이에요. (!) 주님으로 충분하지 못한 태도가 탐심이에요. 탐심은 우상숭배에요. 주님으로 만족하지 못하니까. 자기 신랑으로 만족하지 못한 것을 간음, 영적으로 우상숭배 라고 표현합니다. 젊은 청년들 가운데 서로 불꽃 튀겨서 그사람 밖에 안보이면 외딴 섬이라도 좋은 거에요. 이 남자만 있으면 되는 거에요. 뜬금없지만. 헌금을 드리는 행위속에 연단되는 심성이어야 하는 거에요.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목사들이 제일 좋아하는 써먹기 좋은 본문. 가보의 검처럼, 유행한 성경구절. 근데 원문으로 보면 전혀 의미가 달라져요. 적게 라는 말은 인색함의 뜻입니다. 그 뒤에 많이 라는 말은 복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물질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잠언서에, 이런 말씀, 가난한 자를 꾸어주는 것은 내가 꾸는 것이다. (!Amy?) 그게 복이거든요. 하나님이 나에게 꾸었는데, 하나님이 떼어 먹겠어요? 물질적인 보상으로 이해해서 왜곡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을 많이 뿌려야 해요. 심는다 라는 표현. 드린다가 아니라 심는다 라는 표현.

어떤 직종이죠? 농부요. 보릿고개 알아요? 언제 옵니까? 춘궁기. 봄에 옵니다. 겨우내 저장된 곡식 다 떨어지고 마지막 종자씨만 남는 시기. 배가 고프다고 홀랑 미음을 끓여먹으면 농사 지어요 못지어요? 그건 애가 등에 업혀서 징징 우는 한이 있더라도 종자씨는 파종할 씨는 절대 꺼내서 먹어치우면 안됩니다. 악착같이 남겨둬야 해요. 심어야 하니까. 이 비유와 이 표현을 한 이유는, 하나님 앞에드리는 것은 그렇게 까지 드려라. 보통 헌금이 넉넉하고 남아서 들이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마게도냐 성도들이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극심한 환란과 어려움 속에 헌금을 드립니다. 그 헌금을, 성경은, 일관되게 복을 심는다라고 설명해요. (!) 복을 심는 행위는 이면에, 하나님 제가 이면에 이것으로 살지 않습니다, 주님으로 만족합니다, 주님으로 삽니다, 주님이 제 삶을 책임지십니다. 다각적인 신앙의 고백이 담겨있는 것이죠.

만나를 통해 가리키고자 했던 모형이었어요. 예수로 배부르는 심성을 유일하게 훈련할 수 있는 행위가 헌금이에요. 대체적으로 보면, 헌금은 돈이 남는 사람이 드리지 않고 없는 사람이 드려요. 없는 사람이 드릴 수 있는 이유도 즐거운 기초가 있어서 드려요. 계속 9장 전체에 강조하는 바가 인색함으로가 아니고 자원함으로 즐거이 드리라. 계속 반복되어 나옵니다.

52
Q

2 Corinthians 9:8 (KRV)

Psalm 112:5 (KRV)

A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전체 설교중 본론입니다.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셨다. 솔직히 넘치게 주셨어요? 미끼를 물지 않네요. 미끼를 물라고 던진 질문인데. 하나님이 넘치게 주셨죠. 성경에서 말하는 물질을 수식하는 표현같은 것들이 결코 물질이 아니죠. 아니라면, 어떻게 넘치게 하셨습니까. 그 고백을 억지로라도 만들어보세요. 어떻게 우리를 넘치게 하셨을까요? 생명 얻었다면 다 얻은 거 아니에요. 그걸로 넘치는 사랑을 어떻게 더 설명할까요? 우리는 생명을 얻은 자에요. 그 이상 어떻게 넘치는 사랑을 보여주실까요? 우리의 모든 나눔의 원초적 기초는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

돈을 달라고 구해서 얻은 사람은 절대 나누지 못한다. 그러나 은혜를 달라고 구해서 얻은 자는 나눌 수 있다. 헌금 드리는 것은 은혜 나누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기도할 때 돈을 구하죠. 현실이니까. 근데, 이 시간부터 하나님께 돈을 구하는 기도하지 맙시다. 정말입니다. 서로 내 주머니가 빈주머니일지라도 돈을 구하지 말고 은혜를 구합시다. 그래서 얻어진 은혜는 나눌 수 있다구요. 근데 돈을 구해서 돈을 얻으면 나누지 못합니다. 돈이니까. 아직 그 돈의 한계를 못 넘어선 사람이죠. 돈에 지배당하는 삶이요. 우리는, 돈을 얻든, 무엇을 얻든, 그것이 하나님의 의로 들어올 때 나눌 수 있는 거에요. 은혜로 바뀌지 않으면 못 나눠요.

5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꾸어준다. 라와. 히브리말인데, 이 말이 그냥 빌려준다가 아니라 끊어진 관계를 연결시킨다. 꾸어주는 게, 끊어진 관계를 연결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브릿지를 넣는 거에요. (!에이미) 선교이거지금 다 끊어진 것을 연결하는 거에요. 맞죠? 이 이야기를, 고린도 후서 9장. (!선교?!)

53
Q

2 Corinthians 9:12 (KRV)

2 Corinthians 8:7–8 (KRV)

A

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어려움에 처했던 사람들을 보충해주었다. 지난 주에는 평균케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같게 한다. 일정하게 똑같이가 아니라 하나가 되게 한다. 헌금은 복음을 실천하는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네 마음을, 네 진실을 보여줘. 실지 재정으로, 돈으로, 물질로. (!)

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찌니라
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라. 헌금으로 나타나는 구제의 결과이어야 합니다. (도네이션 드라이브) 연결과 나눔을 통해 온 세상의 교회가 우주적인 관점에서 하나라는 것을 피차 확인하고 서로 사모하게 되고, 그들이 고린도 교회를 통해 기도할 수 있다.

54
Q

Genesis 14:21–22 (KRV)

A

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어이, 어깨에 힘 빼. 그분이 주인이셔. 주님이 네 손에 붙이신 거야. 그 때서야 아브라함이 정신 차리고 십일조를 드립니다. 산수로는 십분의 일. 십일조의 진짜 어의는 열의 첫것을 이야기 합니다. 숫자적인 개념이 아니고 나머지 전체의 대표 라는 순입니다. (!) 맡것. 첫것. 모든 것의 대표요 모든 것을 대신하는 숫자입니다. 순서상 앞도 아니고 산수적인 숫자도 아니에요. 애굽 장자가 죽었을 때 애굽 전체가 심판 받듯이, 십일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 둘째는 구속받은 백성의 고백이 십일조입니다.

일각에서는 십일조 폐지 이러는데 귀기울일 필요없어요. 그리스도의 구속이 감추어져 있고 신앙의 고백이며 뿌리는 감사정신이에요. 율법보다 더 큰 개념입니다.

55
Q

2 Corinthians 8:9 (KRV)

A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바로 이 정신이요. 그리스도 예수로 구속받은 백성의 삶의 스타일과 태도입니다. 희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잘라서 내는 거에요. 희생하는 마음 없이 자원과 감사로만 되어져서는 안되요. 힘에 지나도록. 마게도냐 성도들은 어느 가운데에서? 극한 환란과 가난 속에서 헌금을 해요.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마찬가지에요. 극심한 환란 가운데 헌금합니다. 내 주머니가 넉넉하다고 되어지는 게 절대 아니에요. 내것을 잘라내는 희생 정신 없이는 헌금 할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헌금을 가장 잘 하는 성도들은 한국 성도들이에요. 교회 짓기 위해 집 팔았다 논 팔았다 하면 정신 나갔다 할 거에요. 담 쌓고 지붕 씌웠어요. 잠시 시련이 있었지만 이런 열매들이 있는 것은, 누군가 마룻바닥에 없드려서 예배당에서 눈물의 씨를 뿌렸던 성도들이 반드시 있었어요. 보이지 않는 뿌리의 역사를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절묘하고 오묘해요. 어떤 사람은 계속 씨만 뿌리다 가는 사람 있어요. 꽃도 못보고 줄기, 열매 볼 수도 없어요. 계속 씨만 뿌리다 가는 거에요. 그 다음 온 사람은 열매 거둬요. 그 사람 혼자 잘났습니까? 아니요. 부흥의 현장을 잘 보면, 우리 교회는, 그냥 그냥 지날 때, 눈물로 씨를 뿌렸던 선배들이 있었어요. 그거 인정해야 해요. 청년비율이 아직도 많지만, 장년들의 헌신은 참 이해가 안될 정도에요. 사실입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난리가 난 상황들이 너무 많아요. 여기는 와보니까 당연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그런 희생과 눈물의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는 사실 그 열매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씨만 뿌리고 간 마이클 소피아)

야구에도 선발투수, 구원투수 마무리. 박수는 마무리가 받아요. 그럼 마무리 혼자 잘했어요? 선발 투수가 잘 막아주고 안타 안내주었기 때문에 마무리가 박수 받는 것입니다.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렇듯이 헌금도 마찬가지 원리요. 자원, 감사, 희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56
Q

2 Corinthians 9:5 (KRV)

A

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다섯번째, 헌금은 준비하자. 즉흥적으로 감정적으로 하지 말라. 아직도 그런 사례가 보고가 되요. 부흥회를 합니다. 그럼 마지막날 헌금 작정을 시키는 일들을 꼭 해요. 사전에, 콘티를 짜서 분위기를 아주 아리송하게 잡습니다. 구슬픈 비쥐엠을 깔고 거기에 전문가 강사가 나오셔서 조명을 어둡게 한 다음에 전형적인 사용하는 멘트. 여러분 인생이란 뭡니까. 시작하면 여자건 남자건 감정적인 사람들은 마음에 은혜가 소위 빨리 올라와요. 확 충동됩니다. 작정서에 적습니다. 돌아가면서 내가 미쳤나, 뒷감당 어떻게 하지. 이렇게 헌금하면 안됩니다.

대형교회 목사, 보디가드를 데리고 다닌다 해서 물어봤어요. 이렇게 집문서 갖다 내고 통장 째로 집어넣고, 나중에 남편이 추궁하겠죠, 왜 이래, 쭈뼛쭈뼛하다가 부흥회하다가 너무 은혜 받아서 헌금했다고 그러면 목사 엑스엑스 죽인다고 남편들이 목사 찾으러 다니는 거에요. 그러면 목사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니까 보디가드를 세웁니다. 실지 가능하고 있었던 일입니다. 얼마나 추잡스럽습니까. 젊은이들 있으니까 즉흥적으로 하지 말고 계획적으로 하십시요. (!)

57
Q

1 Corinthians 16:3 (KRV)

Romans 15:25–27 (KRV)

A

3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내가 전달하겠다. 내가 갈 때 사도바울 얼굴 보고 헌금하지 않게 하라. 미리 헌금을 준비하라. 감정적으로 하지 말고.

잘못된 동기로 헌금. 사도행전 초대교회의 큰 사고. 부부가 시간차로 시체가 되어 떠매어 나갑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경종을 울리는 사건. 잘못된 동기로 헌금을 드리다가 일부를 감추고 성령의 지적으로 들통나고 시체가 됩니다. 작정한 대로 바치지 않으니까. 그럼 무슨 동기로 헌금 드렸는가? 사도들이 강조했는가? 아니요. 당시에 교회로 가난한 자들이 몰려드니까 엄청난 재정이 필요하게 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헌금의 물꼬를 튼 사람이 요셉이라고 불리웠던 바나바입니다. 그에 대한 칭송이 쫙 쏠렸어요. 몰려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우리도 이러고 있어서는 안되지 않느냐. (!)

아니, 아무개 집사가 오천했다는데, 난 그래도 명색이 저사람보다는 사는 형편인데, 내가 인색하게 할 수 있나, 십원 하나라도 더 써내야지. 비교와 경쟁에 근거한 헌금이 다 잘못된 것이고 기복주의입니다. 축복을 얻기 위한 계약금이나 시드 머니가 아니에요. 말그대로 감사정신이요. 감사헌금을 제대로 하기 원합니다. 감사한 일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하세요. (!@) 감사를 누리는 성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선교 다니다 보면, 교회교회 마다 많이 나누어주고 와요. 경비를 주시기 때문에. 따로 팀들이 헌금을 가는 교회마다 해요. 근데 그것은, 이렇게 이해해서는 안되요. 돕는 우리가 갑이고 그들이 을의 개념이라면 헌금의 진정한 의미가 되지 않습니다. 두가지 의미. 첫째는 당신들과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물질이 나누어지지만 영적인 고백이 함께 가요. 돕고 나누는 관계가 아니라 우리는 하나입니다. 다른 의미는 뭘까요. 우리도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던 그리스도의 도움없이는 존재되지 않았던 사람이에요. (!)

58
Q

Joshua 17:15 (KRV)

A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찐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개척하라. 왠 쓸모없는 땅만 주고. 우리 지파의 규모에 걸맞게 대우해라. 여호수아가 답하기를, 맞아, 다른 지파보다 몇 배의 은혜 준 만큼, 가서 개척해. 심상치 않죠. 개척의 진의를 이해하려면, 요셉 지파의 역사를 파헤치지 않을 수 없어요. 복잡한 내용이 아니어서 좀 들여다 보겠습니다.

우선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서 두 아들을 낳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 요셉지파 들어보셨어요? 열 두 아들 아닙니까? 맞는데 왜 지파에 안들어가죠? 대신 요셉의 아들 둘이가 아버지 대신해서 지파로 들어가요.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는 다산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자동적으로 요셉은 누구와 동격입니까? 야곱과. 자동적으로 아버지와 동격이 되어요. 열 두 아들 중에 레위가 빠지죠. 레위는 지파에 들어갑니까? 거기도 안들어가요. 여호와가 친히 기업이 되셔서 땅 분배도 받지 않죠. 레위와 요셉 대신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들어감으로 열 두 지파가 형성됩니다.

59
Q

Genesis 49:22-26 (KRV)

Deuteronomy 33:13–16 (KRV)

A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요셉에게 복을 빌어요. 무성한 가지인데, 샘 곁에 심기운 무성한 가지이다. 전부 이 복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아멘은 알든 모르든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좀처럼 마르지 않는 가지인데 담을 넘어버렸어요. 요셉의 영향력이 집안에 머무는 영향력이 아니라구요. 어디까지 갑니까. 실질적인 제국의 실력자가 되어요, 제국의 총리가 되어서 그 시대를 먹여살려요. 한 나라를 먹여살린 게 아니라 그 시대자체를 먹여살려요.

Genesis 49:23 (KRV)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고단했던 요셉의 일생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배다른 형제들이 얼마나 학대하고 질시했습니까. 애굽에 팔려가서도 많은 사람들의 공격 앞에 바람 앞 촛대가 불이 꺼질까 말까 합니다. 감옥까지 가요. 시 한 줄로 활쏘는 자가 그를 군박하였으나.

Genesis 49:24 (KRV)
24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이 기도를 누가 하고 있죠? 야곱 자기가 하는데 자기 얘기를 하는 거에요. 아들 앉혀놓고 이 축복을 빌며, 야곱의 전능자, 나의 전능자,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이 본문 때문에, 요셉의 인생은 꼬여왔고 꼬이기 시작합니다. 누구의 손이요?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오실 메시아를 궁극적으로 내다보는 그림인 동시에, 요셉에 담긴 예수님의 상이에요.

신기하게도 예수님의 삶과 오버랩되는 삶을 요셉이 살아요. 미움당하고 쫓겨다니는 그림이요. 주님 오셔서 걸어야 할 길을 요셉의 일생을 통해 보여주세요. 쫓기고 억울한 일을 겪어요. 오실 목자, 그리스도처럼. 더 보십시다.

Genesis 49:25 (KRV)
25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야곱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Genesis 49:26 (KRV)
26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야곱의 축복이 누구보다 낫대요? 선조들보다 낫대요. 앞에다 요셉에게 안수하고 축복하며, 내 축복이 선조의 축복보다 낫대요. 선조는 복수입니다. 이삭, 고 위에는 아브라함. 야곱이 무슨 얘기를 하냐면, 아브라함과 이삭을 합한 복보다 내 복이 낫다. 이야. 어떻게 이런 어려운 엄청난 말을 이렇게 쉽게 할까. 죽기 전에 맛이 가서 그랬을까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어마어마한 약속이 담겨있어요. 내 축복이, 선조들 합한 축복보다 낫다. 물질적이었다면 이삭 한 사람만 놓고도 게임이 안되요. 상대가 안되요. 그런데, 거기다가 아브라함까지 합한 복보다 낫대요. 적어도 주장하고 싶은 복은 물질적인 복은 아니에요. 더더군다나 아브라함과도 상대가 안되죠. 야곱이 말하는 내 복이 낫다는 것은 뭘까요. 하나님을 절절하게 경험한사람이 있다면 나만큼 겪었나 누구든지 나와봐라. 죽을 무렵에서야 야곱이 깨닫게 되요. 평생 그토록 못놓고 모으기 원했고 쌓기 원했고 내려놓지 못했던 악착같이 붙잡고 늘어졌던 세상의 복이 진짜 복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을 얼만큼 경험했나가 진짜 복이었어요. 그 복이 요셉으로 물려진다는 거에요.

어떻게 야곱은 경험했죠? 20년 비바람 에 불순물이 날라갔어요. 나중에는 주님만으로 족하다. 고백해요. 이 신기한 고백을 요셉에게 유언처럼 물려줍니다. 하나님 겪은 자로 나보다 센사람 나와봐라. 매맞고 큰 애가 엄마 아빠 더 잘알까요 범생이들이 더 잘알까요? 매맞고 자란 아이요. 범생이는, 말 잘들어서 엄마 아빠의 고통 잘 몰라요.

13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컨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
14 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과
15 옛 산의 상품물과 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과
16 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인하여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찌로다

요셉이 살면서 맡았던 그림은 애매히 고난받는 (!) 주님의 그림이요. 약한 자로서 쫓겨다니고 당하는 모습이었지만 신기하게 그런 과정을 통해 요셉 때문에 만민이 배불리움을 얻고 먹고 살아요. 지금 그 얘기에요. 주님은 이 땅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 처럼 오셨어요. 쓸모없는 돌들 잘라서 버린 돌들. (!나같다) 그 돌이 집짓는 머릿돌이 되요. 이런 생리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요. 꿈깨자. 만족하고 배부른 영혼을 쓰는 적이 없어요. (!) 다 거덜내고 다 빼앗고 바닥을 쳐서, 내 모습은 간곳이 없을 때 그 때서야 주님이 드러나요. 인간의 끝선은 하나님의 시작이요. 이상하게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떻게 오실까 설명하십니다. 이것이 요셉의 복이에요. 형통이라는 말이 두 군데 나와요. 처음엔 애굽으로 팔려갔을 때. 형통할래요? 또 하나는 감옥에 집어넣고 나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심으로 형통케 되었더라. 뭔 그런놈의 형통이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일관된 방식이에요. 요셉의 일생은, 미움받고 쫓겨다니다가 그 약한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이 만민을 먹여살리시고 만민에게 은혜 주시는 통로로 삼았어요.

경상도 출신 남편이, 부인에게, 짐싸서 나가. 부인이 큰 가방 꺼내서 알았어, 나가지. 당신 들어가, 당신외에는 필요없어. 절대 우리집 얘기는 아닙니다. 주님 한 분이면 되었죠. 더 이상 복 누리는 사람 있을까요? 20대에 광화문 내수동 교회에서 청년 시절 지내면서 예수만난 기쁨으로 미치는 줄 았았어요. 그 때 절 보셨으면 미친놈인줄 알았어요. 집 안들어가고 교회만. 너무 벅차고 감당이 안되어서 미치겠더라구요. 우리교회 젊은이들이 확 미쳐버렸으면 좋겠어요. 더럽고 악하고 저주 가득한 땅에 어둠을 몰아내는 사도행전의 소동케 하는 무리, 휘몰고 다니는 곳마다 복이 임하도록. 너희가 원천의 복 받았던 만큼 길 없는 곳에 길을 내고. 주님을 전하라. 두배의 복을 받고 원천의 복을 받은 너희 지파, 창조하라. 죽었던 생명을. (!) 하나님 구원의 역사. 창조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동역하는 역사입니다. 아침에 뜨는 태양이 기대되요.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까. 어둠이 밀려날 때 어떤 진상이 드러날까. 그런 한주간 축복된 삶 되기 원합니다.

개척하라. 우리는 요셉 지파입니다. 원천의 복 받았습니다. 다된 모습 잘된 모습 이 아니라 세상적으로 잘나고 성공한 모습이 아니라 요셉처럼, 예수처럼, 초라하고 무가치한 그 모습으로 그냥 가는 거에요. 길없는 곳을 향해 떠나는 거에요.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이 생명의 복을 흘려보내야 합니다. 교회 본질의 사도성이요. 이 명령에, 크신 주님께 기대하는 한해 되게 하소서. 그 산지를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60
Q

Genesis 49:5–7 (KRV)
Deuteronomy 33:8 (KRV)
Hebrews 7:5–11 (KRV)

A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6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찌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흩으리로다. 레위 지파는 없어져요. 흩어져서 제사장으로 살도록 하십니다. 레위 지파가, 제사장 역할을 할만한 이쁜 구석이 있나요? 아니에요. 하나님은 언제나, 이런 처절하고 약점 있는 수많은 진저리 나는 인생들을 붙들어서, 자기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여기에 세워서 목사로 씁니다. 레위 지파의 이력이에요. 아무리 악종의 아들이라도. 거의 저주의 예언을 퍼붓는데. 얼마나 평생에 가슴에 못박았으면. 그런데 성경의 신비가 여기 있어요. 아버지는 저주 한 것 같지만 이 저주속에 아픔을 담은 축복이 있어요. 이들의 기질을 알아요. 야곱은 어떤 인간들인지 알아요. 그래서 이들을 흩어서 살도록 합니다. 왜? 모였다 하면 이들은 전쟁에 능하니까. 그 약함을 아버지가 잘 알죠.

신명기 33장. 이랬던 이들이.

8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둠밈과 우림은 제사장의 복장이에요. 잔해하는 기계같은 살인 병기들이 세월이 흘러 어떻게 변해있냐면 경건한 자로 변해있어요.

5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는 자들이 율법을 좇아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가졌으나
6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그 약속 얻은 자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
7 폐일언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느니라
8 또 여기는 죽을 자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레위는 이렇게 인생이 바뀐 인물인데. 아론의 반차를 따라 제사장 역할을 맡는데, 계속 바뀌어요 안바뀌어요. 죽어요. 대제사장 죽고 또 다음 죽어요. 아론의 반차, 제사장 레위들의 한계에요. 별다른 한 제사장.

아론의 반차 레위는 계속 죽고 계속 바뀌어야 해요. 우리가 레위로 온전해 질 수 있었다면, 멜기세덱의 반차인, 누구에요, 오실 예수 그리스도요. 그 제사장이 또 한 제사장, 가장 큰 제사장이 왜 필요하냐. 구약의 레위는 누구의 그림을 상징해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해요. 레위를 보며 우리는 인간의 절망. 인간의 죄성을 봐요. 레위를 보며, 그 처절한 죄덩어리를 어떻게 경건한 자로 만들어가시는가.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이 직분 속에 두가지가 다 감추어져 있어요.

목사가, 술주정꾼에게 가서 당신 이렇게 살면 안돼. 예수 믿고 바르게 고쳐야지. 그럼 그 사람이 웃어요. 너임마 목사니까 그런 말 하지. 여기 모 집사님이 알콜 중독에 빠진 분이 개과천선해서 경건한 집사님이 되셨는데 이분의 전력에 대해서는 청파동이 다 알아요. 어이, 아무개, 나 누군지 알지. 내가 청파동 개고기였어요. 숙대 입구 올라가면 내 발길에 안부서진 간판 없었어. 예수 만나서 이렇게 바뀐거 내 힘 아닌 거 알지. 네 형님 알죠. 집사님 메세지가 더 확실하죠. 목사가 백날 얘기해봐야. 목사는 원리 말하는 사람이에요. 근데 개과천선한 집사님의 한 마디가 더 강력하다구요. 레위가 제사장 역할 하는 걸 보면서 무슨 생각할까요? 나도 소망있다. 쟤가 제사장 하면 나도 소망있어. 목사로 부름받는 사람들이 어디가나 변변한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근데 거꾸로 이해해요. 겸양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는 것을 보여주시는 방식이요. 제가 봐도 이상한 사람들만 부르세요.

가끔가다 어머님이 넌 목사안했으면 뭐 하고 살았겠니. 무슨 경건한 구석이나 조건이 있어서 부름받았던 사람이 아니에요. 처절한 죄성 가진 인생들이 하나님 손에 붙들려서.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 그것이 성경 전체에서 뚝뚝 흐르면서 보혈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누구도 고개 들지 마세요. (!) 나는 주님의 은혜 뿐입니다. 더욱 갈수록 주님 사랑밖에는 고백할 언어가 없는 거에요. (!) 피묻은 복음이, 선교지로 떠나는 사람들, 능력이 아닌 십자가만 우리 힘이 되도록 축복합니다.

61
Q

Joshua 23:1 (KRV)

여호수아의 마지막 말

A

2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나이 많아 늙었다라는 말은 갈 때 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요? 아닙니다. 나이 많아 늙었다는 생물학적인 표현은 이유가 있습니다. 신명기 34장 마지막에 보면 모세에 대한 기록. 그의 눈이 흐리지 않고 쇠하지 않았으나 하나님이 데려가셨더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거의 하나님과 같은존재였던 모세를 미련 없이 데려가십니다. 그리고 그 리더십의 진공상태에서 아무 리더 경험이 없었던 여호수아가 공동체의 리더를 맡게 됩니다. 엄청난 전쟁을 지휘진두하고 끌고 왔어요. 나이가 많아 그도 이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해태를 오랜세월, 나중에는 삼성, 지금은 한화를 맡으셨는데, 김응룡 감독. 코리안 시리즈 우승을 열 몇번 일구었던 명장 중 명장입니다. 해태를 맡았을 때 양 대 산맥 선수중 선동렬 선수와 이종범 선수가 있었어요. 오직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시느라고. 다른 팀으로 가버렸어요. 일본인가 어딘가. 그 후에 그 팀이 곤두박질을 친 적 있습니다. 기자들 인터뷰때, 김응룡 감독이 했던 유명한 이야기. 오… 동렬이도 가고. 종범이도 가고. 패러디해서 놀려먹곤 했습니다. 모세도 가고. 여호수아도 가고. 괜찮다 그말이에요. 누가 통치하신다구요? 하나님이 통치하신다구요. 교회는, 가장 중요한 영적인 원리가. 슬슬슬, 영향력이 생겨서 하나님을 밀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각심을 일깨웠어요. 여호수아가 리더들만 모아놓고 나도 갈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런데, 걱정하지 마라. 여기까지 이 땅에 안식케 하신 것은 하나님이 하셨고 앞으로도 (!) 하나님이 이 백성들을 이끌어가실 것이다. 야구계에서는 이종범이나 선동렬이 없으면 곤두박질 쳐요.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그런일이 생길수 없습니다. 공동체의 머리, 주인되시는 분이 그분이시기 때문에.

문장의 그림으로는 좋은 그림이 아니지만 모세가 중요한 게 아니고 여호수아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런데 자꾸 우리는 사람을 높여요. 서로 망하는 짓인지도 몰라요. 어느 목사님이 은퇴한다니까 아니하옵나이다 성명서를 내요. 어떤 충정심에 광고를 냈는지 모르겠는데, 생물학적으로 우리는 지나가게 되어있어요. 저도 지나가요. 그리스도교회는 그래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이 꿈에도 잊어서는 안되요. 선교든 뭐든 저 사람 없으면 안되는데. (!) 스스로 주인이 되서도 안되지만 주인을 만들어서도 안됩니다. 건강치 못한 병폐에요. 목회자들이 속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속는 게 있어요. 하나님이 역대 어떤 그럴 만한 조건을 가진 목회자를 세워서 일하신 적 없어요. 옷벗고 강단 아래로 내려가면 그렇게 맹할 수 없습니다. 가끔 목양 실에 앉아있으면 별의 별 이유로 찾아와요.

하나님 공동체에서 사람의 잘남을 들어쓰지 않고, 약하고 부족해서 하나님 붙들고 의지하는 사람을 좋아하세요. 순간순간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인생을 즐거워하고 사랑하십니다. 어떤 공동체에서도 사람의 영향력과 영광이 드러나는 것 질색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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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Joshua 23:11 (KRV)

Ephesians 4:11–12 (KRV)

A

11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결국 이 이야기 하려고 고별설교를 거창하게 시작했고 절마다 여호와 하나님 얘기했을까요. 맞습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라. 잠시 쉬고 있는 고린도 전서 강의. 하나님 이 교회에 과제를 맡기죠. 건축. 선교. 헌신과 구제와 봉사의 과제. 단 한 번도 그 과제를 과제의 목적 때문에 맡긴 적은 없어요. (!) 우리 교회, 또는 인생들에게 교회든지 인생 개인사든지 숙제를 주시는 때가 있어요. (!) 사람 자체가 크도록 숙제 주세요. (!) 선교하면서, 봉사하면서, 징징거리고 짜증내고, 저사람만 없었으면 이런 갈등 겪으며 자기 꼬라지 보고 내가 아직도 멀었구나. 절실하게 보도록 하면서 우리가 만들어지는 게 목적이지. 그 다음 선교고, 그 다음 구제입니다. (!) 결국 하나님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거에요.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성도 온전케 하는 게 먼저에요 봉사가 먼저에요. 절대 이 것을 뒤집는 일이 없어요. (!) 배 안에 선장도 타고 승무원도 타고 승객도 있습니다. 이 구성원 중에 누가 중요할까요? 선원이요? 선장이요? 누구때문에 배를 만듭니까? 승객때문에 배를 만듭니다. 목사 때문에 교회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백성과 그리스도의 몸을 건강히 키우기 위해 교회를 두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 여러분들이 교역자들에게 교역자 이상의 만능 엔터테인먼트같은 재능과 관심을 요구하지 마세요. 저희는 철저히 혹독하게 여러분들을 연단시키고 훈련시키는 코치로 서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아버지 어머니 역할은 교회 각자 리더들이 해야 하는 역할이에요. 교역자의 첫째 직무는 하나님 말씀을 잘 가르치는 일입니다. 목사와 교사. 목사는 뭡니까, 교사여야 합니다. 목사의 일차적 책임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일차적 일이에요. 심방 중요하죠, 행정 중요하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관계를 성도와 갖지 않는다면 틀린 것입니다. 목회자는 뭐냐, 양떼들에게 건강한 꼴을 잘 먹이는 일이 생명보다 중요한 일이에요. 그거 못하면 직무 유기입니다. 그다음 심방, 그다음 행정이고, 그다음 인격과 매너입니다. 운동조직으로 말하면 코치에요. 입에 단내나도록 트랙을 돌려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