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 August 2019 Flashcards
Mark
Mark 1:4 (KRV)
4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이 세례를 누가 받아요, 예수님이. 회개하실 죄가 있으신가요? 우리의 죄를 대신 속량하기 위하여 오셨어요. 새내기 새로운 예배 형식으로 드렸어요. 이렇게 예배 드려도 됩니까? 됩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드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사건 말이 되는 사건이에요 안되는 사건이에요? 말이 안되죠.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세요. 창조주가 피조의 몸으로 오세요. 성육신 으로 망가짐으로 우리 생명을 구하셨어요. 그 은혜가 흘러들어왔습니다. 예배 자체가 예배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이 예배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찾아서 생명을 구원해 내는 일입니다. 그 일이라면 망가진들 어떻습니까. 예배 순서 형식이 뭐 그리 중요합니까. (!)
Mark 1:10 (KRV)
10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올라오시고 성령님은 내려오세요. 맞물려집니다. 하나가 되어요. 요단을 건넌다. 물에 잠긴다. 그리스도인은 매일 요단을 건너요. 죽음 저 넘어 천국 가는 강이 아니에요.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의 출발지점을 말합니다. 백성들과 예수님이 뭘 천명하냐면, 천국 건너기 전의 강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 새로운 사역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전쟁이었고 정복의 싸움이었습니다. 요단강에서 새로운 사역을 천명하시는 사건입니다. 첫번째 사인은 하늘이 열립니다. 정확하게 이 말은 하늘이 임하는 거에요. 하늘이 내려오는 거에요. 하나님 나라가 내려옵니다. 시편에 여호와께 가까이 함이 복이라. 내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야한다고 이해해요. 우리는 그럴 수 없는 존재에요.
비근한 예. 누가복음 15장에, 그지 몰골 된 아들로 아버지가 뛰어요.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가까워집니다. 성경에서 가깝다는 이야기는, 우리쪽에 주권이 없어요. (!) 예배도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사건이지, 불러주시는 사건이지, 가까이 하실 때 우리가 가까이 갈 수 있는 거에요. (!스탠다드가 아니라) 예수님께 하늘이 가까이 와요. (!)
Exodus 20:1–2 (KRV)
십계명 (신 5:1–21)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주께서 베푸신 구원을 날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이 말씀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더 없을 것 같습니다. 돈, 쾌락, 성공이 우상 되는 시대. 자녀들 마저 우상이 아닙니까? 우상이 뭐에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 더 우선적인 가치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 없으세요?
열 살 짜리 딸 하나가 디지털 카메라 사려고 자금을 벌었는데, 성경 보내기 운동, 안나가 동전이 섞인 저금통을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아빠 카메라 살 돈으로 성경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로 했어요. 이 돈을 부쳐주세요. 그 돈을 그렇게 써도 괜찮겠어? 어떻게 모은 돈인데? 딸 아이가 답하기를, 물론이죠 아빠. 크리스쳔이라면 꼭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 어떻게 열살짜리 아이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 아이도 크리스챤이었기 때문에 입니다. (!)
왜 옛날 얘기 꺼내고 있을까요? 잊지 말라. 어떻게 크리스챤 되었는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잊지 말라. 죄와 허물로 망가진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죄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전적인 하나님 은혜. 그것을 날마다 기억한다면 우리 하나님만 섬길 수 있지 않을까요. (!)
Exodus 20:3 (KRV)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하나님을 인생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21세기 리더 스쿨 안에서 아이들을 훈련시킬 때. 무엇보다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이렇게 훈련했습니다. 열 장의 카드 몇묶음을 자녀와서 한 묶음씩 나누어줍니다. 한가지씩 그 카드에 적도록 하여라. 적기 시작합니다. 그 후에, 자, 너희들 앞에 책상에다가, 그 열가지 소중한 카드 중 한 장을 내려놓아라. 한장을 버려라. 가장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 버립니다. 한장 더 버려라. 또 버려라. 언제까지. 두 장 남을 때까지. 그럼 아이들 손에는 두 장. 이제 그 두 장에서 한가지 더 버려라. 그 때, 우왕좌왕 할 때. 한녀석은 웁니다. 한장에는 엄마, 다른 한장에는 아빠를 썼습니다.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래도 버려라. 주저없이 아빠를 버렸습니다. 아이들에게 우선순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마지막 한 장에 너희의 인생을 걸어라. 후회없는 인생 살기 원한다면, 그 마지막 한 장에 너의 인생을 걸어라. (!)
하나님의 10가지 우선순위 라는 책. (!) 최우선순위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3절입니다.
시내 산 정상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왜 이것이 첫째일까요? 인생의 최우선 순위가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뒤로 밀리면, 우리 인생은 무너지고 맙니다. 이것이 뒤로밀리면 아무리 부와, 명예와, 권력과, 남부러운 인생 살아간다할지라도, 코끝에서 호흡이 멈추는 순간, 후회가 밀려올 것입니다.
코리텐붐. 내 아버지. 시계방 사업. 기쁘고 즐겁게 일을 도왔다고 합니다. 경제적 위기에 처하자. 어느 날, 잘 차려입은 신사가 값비싼 시계들을 보았습니다. 코리라는 이 딸은 아빠와 신사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그 시계가 팔리도록 기도했습니다. 제가 찾던 시계입니다. 안주머니 손을 넣고 두툼한 지폐 뭉치를 꺼냈습니다. 코리는 순간, 주께 영광을 돌릴지어다. 드디어 현금이다. 바로 그 때, 말했습니다. 혹시 여기 좋은 시계공을 아세요? 그 사람을 아는데, 벤 휴턴. 코리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벤 휴턴은 죽었고, 그 아들에게서 샀어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 손님, 그 시계를 볼 수 있겠습니까. 시계 뒤를 열어 조절하고 도로 주었습니다. 여기있습니다. 아주 작은 착오. 이제 시계가 잘 갈 것입니다. 젊은 시계공을 신뢰합니다. 그도 그 아버지처럼 좋은 시계공입니다. 시계를 하나 사주셔서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없이 사업의 어려움을 당하면 제가 돕겠습니다. 제 시계를 돌려주십시요. 돈을 돌려주었고 정중히 인사하고 보냈습니다. 코리가 뛰쳐나와 아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대답했습니다. 코리, 내가 벤 휴턴 씨 장례식에 복음 전했던 거 기억하니. 코리 아버지는 크리스챤으로서 장례 때 장례를 인도하곤 했어요. 그 젊은 사람이, 자주 오던 손님이 텐붐씨한테 갔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주님 이름이 영광스럽다고 생각하겠니? 축복의 돈과 저주의 돈이 있단다. (!)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오지 않았니. 그분은 수많은 언덕의 양들을 키우시고 또 우리를 돌보아 주실 거야. (!)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저녁에 생각하기를, 어떻게 하면, 나도 아버지처럼, 그런 믿음과 신뢰를 가질 수가 있을까? (!닉)
어린이 주일, 아무리 자녀가 장성해도 어린아이처럼 느껴진다 하죠. 언젠가 자녀 얻을 때, 무엇을 주시고 계십니까. 그 자녀들은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가족. 오직 주님만을 섬기는 예배하는 가족. 그것 주지 않는다면 오늘 자녀들은 믿음의 길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Mark 1:41 (KRV)
41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깨끗함 받으라 했지 치료받으라 했어요? 종교적 언어입니다. 핵심적인 문제. 가끔가다가 기도 많이 하시는 분들, 많은 기도에서 역사가 있습니다. 이렇게 오해해서는 안돼요. 기도 많이 해서 기도 응답받았다는 공식이 없어요. 시간의 양의 조건에 있지 않아요. (!) 항상 모든 기도응답과 구원의 역사는 그분의 자비와 불쌍히 여기심입니다. (!) 우리 기도도 마찬가지에요. 율법적 기도를 피해야해요. 저 사람 왜 고생할까, 기도 안하잖아. 정죄까지 합니다. 율법적 사고의 독선입니다. 자비만 기초되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예배해야 해요. 혹이라도 그분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기 때문에.
Psalm 84:1–3 (KRV)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제단에서. 누군가 희생 제물이 죽어지는 곳입니다. 오셔서 그리스도가 죽으실 자리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는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는 은총을 누립니다. 이 기초에는, 그리스도의 죽음이에요. 나 환자는 깨끗함을 받고 구속의 은혜를 노래하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삶에서 뼛속 깊이, 내가 이렇게 그리스도의 아픈 죽음을 통해 피어난 자유한 생명이라는 것 잊지 않는 또 한 주 되십시다. (!)
Mark 1:30 (KRV)
범죄한 인간의 첫째 현상은 하나님을 피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그렇고 아담이 그랬습니다. 영적인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습니다. 엘리야도 동굴 속으로 도망가죠. 그 길 끝에 주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그 때마다, 네가 땅 끝에 도망갈지라도 (!!) 음부에 자리를 펼지라도 내가 거기에 있겠다. (!파리 오층, maid apartment) 집요한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하나님이 아담을 찾으시며,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 심방하셨어요. 예수님이 몸을 입으시고 오신 사건. 성령님까지 우리 안에 집어넣어 주세요. 전부 심방하시는 사건.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베드로가 장모님을 모셨던 것 같아요. 아침 저녁으로 얼굴을 맞대는 그런 관계. 열병. 이 열병은 명사로 되어있지 않아요. 말 그대로 질병일 텐데, 동사 분사형으로 되어있어요. 어떤 상태가 반복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싶었던 거에요. 원문을 보면 열을 받아서. 열을 받아서 생기는 병이 뭐에요? 홧병. 한국 사람들이 제일 잘 알고 있는 문제 아니에요. 한국 사람들 화 많은 거 아세요? 느긋하지 못합니다. 의외로. 운전하다 거리에 가보면 대번 알아요. 별 쌍욕을 다 듣습니다. 한국 사회의 분노가 위험한 수준이에요. 어린아이들 가운데에도 분노 조절이 안되어서 얼굴에 화기가 있어요. 안에 이 화기를 절제하지 못하고 해소하지 못해서 얼굴로 나와요. 끔찍해요 그 얼굴 보면. 홧병 무서워요. (!Anger I need to control) 어떤 반복되는 상태를 설명합니다. 반복되는 동작. 누웠다 일어났다. 이런 상태에 놓여져 있습니다.
사실 어머니 고생하시죠, 장남이라는 놈이 시커먼 가방들고 총신대 왔다갔다. 저희 이모. 집안 형편 안돌본다고 욕했어요. 워낙 입이 거치세요. 이북 분이세요. 말이 세고 욕도 잘해요. 쌈도 잘하고. 저희 어머니 이북분이에요. 이 가정이 그런 가족 구성원 간의 문제에요. 그러자 예수님이 인생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으시고 심방하십니다. 심방해야 합니다. 직장으로 가야해요. 안나오면 좇아가야 해요. 언제까지. 끝까지. 제 인생의 철학은 끝까지 하는 겁니다. 그형제가 나올 때까지. 그 자매가 나올 때 까지. 주님이 나를 그렇게 포기치 않았어요. (!) 우리같은 진상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 구속의 은혜가 내 속에 분명하고 확실했기 때문에, 인간적 끈질김이 아니라, 성령으로. 한 영혼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소탐대실하지말고 기차는 가는 거야. 무시할 수 있어요. (!주여) 아니요. 하나님 일하는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합니다. 맹수가 먹이감을 포획할 때 대충하지 않죠. 작은 것도 사력을 다합니다. 우리 주님도 그러셨습니다. 소자 한 사람도,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셨어요. 똑같이. (!) 무슨 일을 하든지, 십자가의 기본 정신에서 시작해야 해요.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게 이 집에 심방을 오셨습니다.
Matthew 8:14–15 (KRV)
많은 사람을 고치시다 (막 1:29–34; 눅 4:38–41)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사람이 손 맞잡는 것은 중요한 교제의 수단이거든요. 어르신들 만나든, 어르신들은 그냥 안아주세요. 다 보는 자리에서. 손을 잡아 일으켰다.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에게이론. 부활의 용어입니다. 권능이 예수님의 손을 통해서. 죽은 영혼이 회복되고 병든 마음이 고쳐져요. 예수의 생명이 들어가요. 에게이로. 일으켰다. 이 여인이 살아났다. 물질적 세계에 가득차서 그것만 바라봐요. 처자식은 어쩌라고. 이게 당연한 장모님의 근심과 염려일 거에요.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가슴 한복판에, 인생을 바꾸는 불덩어리가 들어온 것입니다. 여기 철저하게 주님이 주도적입니다. 고쳐주세요 이런 호소도 없어요. 일방적으로 찾아오시고 손대시고 일으키는 역사에요. 그렇게 구원은 시작되고 일어납니다. (!) 에게이로.
Mark 10:45 (KRV)
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최초로 마가복음 기자를 통해 육신의 병을 고쳐낸 개인의 기록현장이 오늘 베드로 장모의 열병 고치는 현장입니다. 어떤 결과물로 나타났냐면, 일으킴을 얻고 어떤 자로, 섬기는 자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수종드는 자. 수종든다 에서 집사라는 말이 나옵니다. 수종드는 자에요. 집사라는 자의 말의 어원은 밥상 옆에서 서빙하다. 섬기다. (!) 마가복음 전체의 굵은 주제입니다. (!그래서 다 잘 안하려고 하는구나)
아이패드 사용하세요? 팟캐스트. 팟방이라 하죠. 유익한 방송, 좋은 강해들이 어마어마하게 올라와있어요. 테드. 맛있는 교회사 이야기. 감신대 이덕주 교수. (@) 구수하게 옛날 얘기하듯 들려주셔서 듣다가 뭘 들었냐면.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에 가면. 삼대가 묻혀계십니다.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님. 캐나다의 1860년도에 태어났고 빈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각오로 의사가 됩니다. 의대에 진학해요. 그리고는 뉴욕으로 나와서 학교에 다닙니다. 뉴욕 퀸즈 의대. 학교 졸업하고 실습생으로 병원에 들어갔다가 운명의 여인과 눈이 맞고, 로제타 라는 여인. 굉장히 유명한 여인. 펜실베니아 의대를 선교를 위해 입학한 여자에요. 어느 병원의 실습생으로 들어갔다가 두사람의 뜻이 비슷해서 교제가 이루어지고 만남이 일어나고 약혼합니다. 남자는 중국 선교사로, 여자는 오로지 한국에 여의사가 없다고 해서 의학을 준비하던 특이한 여자입니다.
Mark 1:21–23 (KRV)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시다 (눅 4:31–37)
2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바벨론 포로 당시에, 이스라엘의 고역의 생활을 끝내고 그들에게 자유가 임할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예고한 그림입니다. 위로는 나훔. 가버나움. 가장 거룩한 공간과 시간에 더러운 영에 귀신에게 묶인 자. 위로가 뭘까요? 귀신의 억압에서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자유케 해주세요.) 억눌린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셨어요. 예언의 성취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1절.
이 대조되는 풍경을 그냥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 첫사역지는 나훔의 동네. 내 백성을 위로하라. 해방과 자유를 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첫 선교지로서 위로의 마을에 오셨습니다. 자유케 하고 풀어주기 위해 선교 가는 거에요. 신앙적 긍지를 가지고 가세요. 예수님이 먼저 가셨고 우리가 그를 따르는. 나를 따르라.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우리입니다. 베드로의 어줍지 않은 고백에, 사단아 물러가라, 내 뒤로 물러가라, 베드로보고 하세요. 베드로야, 사탄의 속성처럼 놀아나지 말고 내 뒤에 서라.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대로 쫓아와라. (!앞에가지말고, 사탄의 논리에 놀아나지 말고)
Mark 1:24-26 (KRV)
Romans 7:22–23 (KRV)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귀신이 잘 아는 것 같죠? 마지막 표현에,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이 표현은 헬라말에, 그 당시 어떤 표현이냐면, 헬라에 가장 큰 제우스 신입니다. 제우스 신에게 존칭하는 호칭을 성경에다 도용해서 씁니다. 귀신이 예수를 제대로 안다는 얘기입니까 모른다는 얘기입니까. 아무 인격적 관계가 없어요. 딱 하나는 예수님 오신 목적을 자기 입으로 말했어요.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꾸짖다. 입을 닫게 했다. 잠잠하다는 입닥치라. 무당들은 굿 하는 거 보셨죠. 귀신을 야단치고 좇아냅니까 귀신을 달랩니까. 무속신앙은 신을 달랩니다. 하나님은 그런 귀신들을 달랩니까? 참아, 참아. 꾸짖고 야단쳐요. 생명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잠잠하라 는 입다물어라. 풍랑을 꾸짖었어요. 풍랑은 세파. 세상의 풍조를 얘기합니다. 세상의 풍조를 향해 편하게 친하게 비슷하게 지내는 게 아니라 입을 닫아라. 교회가 세상을 향해 소리쳐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런데 이거 안하죠. 공격들어올 까봐. (!) 역사속에 교회는 이 일을, 이 기능을 상실할 때 교회가 무너졌습니다. (!) 어두움을 꾸짖는 책망의 기능이 있어야 합니다.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스파라소. 어떤 학자는 간질병으로 이해했더라구요. 이 옷같은 것을 양쪽에서 잡고, 힘이 팽팽하면 한쪽이 부르르 떱니다 힘이 딸리니까. 그럼 이게 찢어져요. 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거에요. 사도 바울이 절묘하게 표현합니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어둠의 권세가 내 인생의 한 끝을 붙잡아요. 한 기능이 육체의 한 소욕을, 그리고 성령이 한 소욕을 붙들어요. 이게 정상이에요. 비명을 질러요 이걸 놓으려고 하니까. 얼마나 이 내면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봐야돼요.
Mark 1:27–28 (KRV)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예수님의 교훈과 가르침은 곧 능력입니다. 사복음서에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나갈 때 귀신이 축출되어요. 귀신은 택한 생명들을 붙잡고 있어요. 말씀이 선포되면서 축출되어요. 이게 새교훈이요. 지금까지 회당에서는, 말씀은 말씀, 교훈은 교훈, 삶은 아니고. 율법사의 가르침이요.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이 되고 삶이 변하고 새 생명 새 빛이 임했다구요. 그런데 이 소문이 퍼졌어요.
Mark 1:14–15 (KRV)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다 (마 4:12–17; 눅 4:14–15)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꽃길 깔고 꽃가마 태우는 것 아니에요. 평생 욕먹는 역할, 박수 갈채 받는 역할 맡을 수 있어요. 누가 더 낫나? 비교할 수 없는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시각에서 인식해야 해요. 세상의 돌팔매질, 비난 받는 역할을 하다가 자기 책무를 다하고 목베임 당하는 참수형을 당하고 숨져갑니다. 그것이 그의 삶의 역할이요, 멋지게 살다가 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복음이라고 하면 안되나요? 의도가 있어요. 뭔 의도가 많냐? 성경은 의도로 가득차 있습니다. 겉읽으면 안됩니다. 말씀에 집착해서 여기 어떤 의도가 있는지, 한 일획이라도 놓치려고 하면 안됩니다. 하나씩 하나씩 붙들도록.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 읽고 또 읽고, 이 행간이 뭘까. 날 좋아한다는 걸까, 고려한다는 걸까, 되씹고 주야로 묵상하고, 성경은 그 이상의 책이에요. (!) 곳곳마다 묻어있다는 걸 알아야해요. 왜 하나님의 복음이라 그랬을까. 기독교만 썼던 말도 기독교의 말도 아니에요. 유황겔리온은 로마황제의 명령입니다. 그 시대 살았던 사람들은 복음은 황제의 명령인 것을 누구나 알았어요. 황제의 명령은 주로 어떤 내용 담고 있는가. 첫째, 로마는 온 세상에 걸쳐 전쟁 벌였습니다. 항상 이겼고 정복자였습니다. 반드시 그 국가에 세금을 어마어마하게 부과합니다. 식민지 국가에 세금 부과의 명령은 로마 황제부터에요. 로마 시민들에게는 부가 들어오니까 복음이에요. 식민지 국가에는 복음일 수 없죠.
또 한 가지. 언제 사용하냐면 군대를 파견하고 황제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도로를 닦았어요. 지금도 가면 도처에 있고 토목이 발전되어서 2천년 전에 걸친 길과 하수도를 지금도 써요. 굉장하죠. (!) 황제의 명령이 내달리는 도로, 거기에는 로마 제국이 만들어지고 형성됩니다. 유황겔리온입니다. 그 때 로마는 온 세상을 향해, 황제의 명령은 평화를 가져다 주는 자, 선포했어요. 인간이 만들어낸 복음, 평화입니다. 로마 황제에 의해 터치되는 복음은 반쪽자리에요. 온 만 인류는 로마 중심적 평화요, 복음이었어요. 굿뉴스. 세상의 복음이었어요. 오늘도 반쪽 자리 복음이 우리의 귀를 속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한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 만민에게 전해지는 복음과 구원이에요. 그냥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 이라고 합니다. (!)
복음을 전파하셨다. 케루소. 선포하셨다.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설교속에 던져지는 주된 메세지는, 하나님 나라의 주제가 빠지면 옳지않습니다. 모든 설교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 땅에 관한 것은 더 똑똑한 학자요, 전문가 많습니다. 그런데 자꾸 세상을 베껴오죠. (!) 그러면 사람들이 들을거라 착각해요. 세상 것을 조금 고상한 거 들어러 와요? 아니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으러 옵니다. 새롭게 증언하고 선포자가 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여러분들이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주님은 그의 사역을 이렇게 시작하셨습니다.
Galatians 4:4 (KRV)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무엇때문에요? 하나님의 계획된 결정적 시간이 와서. 여기서 때가 차매라는 말은 뭘까요, 온 세상이 절망에 빠져있었어요.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도 절망스러웠던 시대. 온 천하 백성은 로마라는 강력한 국가 밑에, 힘의 물리적인 지배 아래서 장탄식을 터뜨리며 신음해 있을 때. 온 백성 마음 속에는, 더 지독스럽게 주님이 언제 오실까. 그 날만 대망하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메시야 대망 사상이 절정에 달할 때입니다. 그분만이 오셔서 이 어려움을 해결해주실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 때문에. 그 때가 찼다. 그와 같은 원리로 이 시대로 보면, 정말 주님 다시 오실 시간이 가까이 오셨으리라 믿습니다. 이 주변의 여러 징조를 보면, 성경에서 예고하셨던 모든 징조와 징후들이 도처에서 보여지고 만져지고 느껴지고 있어요. 감정과 육감과 감성을 뛰어넘어서 이 시대의 징조들을 설명한 것이 근대사에 펼쳐지고 나타나고 정말 그 때가 찼어요. (!) 우리교회는 더욱 더 그 다시 오실 시간에 집중해야 해요. 그 정점을 향해서 우리 인생의 모든 타임 스케쥴을 맞추어야 해요. 더 조이고 맞추어서 우리 온 인생을 드려야 하고 떠나야 합니다. 장흥으로, 목포로, 일본으로 떠나서 화급하게 절실한 마음으로 절벽 벼랑끝에 서 있는 그를 붙들고 이리로 가면 죽어! (!) 소리라도 질러야 해요. 소리라도 못질러요. 내가 어찌할 수 없으면 여기 사람 빠졌어요. 된장찌게 잘먹었습니다. 집사님이 잘 먹고 소리지르라고 밥상 잘 차려주셨어요.
Mark 1:16–20 (KRV)
제자 넷을 부르시다 (마 4:18–22; 눅 5:1–11)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으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짧은 앞부분 14-15 에서 왜 예수님이 오셨고 세례 요한은 왜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는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어요. 항상 그런데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해도, 별도, 천지를 지으실 수 있는 분이에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시는데 쓰신 방법은 사람을 준비하여 사람을 통해 하십니다. (!) 교회 기초를 삼으실 열두제자를 부르시기 시작하세요. 열 두 사도를 통해 이 땅에 교회를 기초놓기 위해서. 성경의 사도는 단회성이에요. 오늘날 목사는 사도적 계승자요 사명자도 아닙니다. 목사가 사도다 하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교회의 네 역할, 사도, 집사, 이런 것은…?) 정신, 가치, 목적지, 공유하여 그 뒤를 따르는 주의 종들일 뿐이에요. (!그게 그거 아닌가) 존재해서 감당해야 했던 역할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사도로 부름받습니다. 복음전파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입니다. 모든 우선적 가치입니다. 그러기 위해 사도를 부르고 교회를 세웠다.
부름입니다. 부름. 이 부름이.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어부역할을 했던 삶의 현장에서 부름이 일어납니다. 보통 부름을 콜링. 소명이라 합니다. (삶의 현장…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삶의 현장… 하나님이 이루셨다) 내칼 내션. 콜링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소명 또는 부름, 또는 직업을 얘기합니다. 어부들의 직업이 바뀌나요 안바뀌나요. 똑같이 어부죠. 그런데 속 내용이 바뀝니다. 지금까지 고기 낚는 어부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 직책을 이용해서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과제. 이 부름이 삶의 현장에서 일어났다. 학교 선생님은 학교에서. 방송인은 방송 현장에서. 가정 주부는 가정 현장에서 부름이 일어났다. 곧, 주부 다 때려치고 방송 때려치고 나서자. 이 얘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 삶의 자리가 새로운 소명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 삶의 현장에서 콜링이 일어났어요. (vs 다 끊어야 한다)
모 대학에 강의하고 있는데 강력하게 하나님 소명이 있습니다. 제가 신학을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들. 소명에는 두가지 차원. 내적 외적 소명이 있습니다. 문제는, 외적 소명은 객관적인 기준과 평가로 이 사람이 목사로서 전적인 전임 사역으로 소양과 인격과 모든 것이 합당하다. 객관적으로 교회 커뮤니티에서 평가해줍니다. 내적 소명은 근데 힘들어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밖에 없어요. 내가 받았다는데. 천하 누구도 말릴 수 없어요. 여기서 많은 문제가 일어나요. 해주는 대답. 그 현장에서 하나님 일을 하십시요. 지금까지 밥벌이였다면, 그 현장에서 복음 전하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십시요. 그럼 직업과 현장은 바뀌지 않지만 거기서 하나님의 일꾼이되는 겁니다. 그 부름의 현장이삶의 자리에요. 이렇게 부름받은 사람들은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