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 Flashcards
동굴 모양을 한 거처에서 태어날 때부터 온몸이 묶인 채로 살아가는 죄수들 을 상상해 보게. 이들은 이곳에서 앞만 볼 수 있고 머리를 돌릴 수도 없다 네. 이들의 뒤쪽에서는 불이 타오르고 있네. 또한 이 불과 사람들 사이에 는 담이 세워져 있고 담 위로 사람들과 여러 동물상이 지나가면, 죄수들 은 벽면의 그림자 외에는 어떤 것도 보지 못하게 되네. 이처럼 그림자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림자가 비치게 되는 이유를 알지 못 하는 죄수들은 벽면의 그림자가 진정한 사람이나 동물이라고 믿을 걸세. 동굴 밖에는 실제 사람들과 동물 등이 살고 있고, 그들이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은 그것들을 본떠서 만든 인형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걸세. 그리고 모든 것의 원인이 태양이라는 사실도 알게될걸세
플라톤
아무도 자발적으로 악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을 아는 사람은 결코 그 반대의 것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과 좋은 것에 대하여 무지하면 그것 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실패하게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
인간은 모든 것의 척도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척도이며, 존재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척도이다
소피스트
우리 인간의 영혼은 마차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마차를 끄는 두 마리의 말이 있는데, 한 마리는 말을 잘 듣는 좋은 말이고 다른 말은 채찍을 들어야 말을 듣는 좋지 않은 말입니다. 실제로 마차를 끄는 것은 이 두 마리의 말이죠.
그러나 말이 마음대로 날뛰면 마차는 위험에 빠지기 때문에 마차가 가야 할 방향은 마부가 결정해야 합니다.
플라톤
‘인간 자체(이데아)에 있어서나 ‘인간’에 있어서나 하나의 동일한 설명, 즉 인간에 대한 설명이 적용되는 한, 그들이
“무엇 자체를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나 ‘인간’ 모두 인간인 한에 있어서는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좋음 자체나 ‘좋음’ 역시 좋음인 한에서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행복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것이요, 이러한 선들 중 최고의 선이다. 따라서 행복은 궁극적이고 자족적 이며, 모든 행동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행복인지를 알려면 인간의 기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간 이 지닌 특별한 기능은 정신의 이성적 활동 능력이다. 인간의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은 바로 이성적 활동을 잘 행하는 것이다. 어떠한 활동이 잘 수행되는 것은 그것에 알맞은 덕을 가지고 수행될 때이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덕과 일치하는 정신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여러분은 실은 모두 형제들입니다. 그러나 신은 여 러분들을 만들면서 능히 통치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금을 섞었는데 이들 이 가장 존경받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또한 신은 수호자들에게는 은 을 섞었고 농부나 다른 장인들에게는 철과 청동을 섞었습니다. 대부분의 경 우에 여러분은 자신과 닮은 자손을 낳게 됩니다. 하지만 모두는 서로 관련 되어 있으므로 때로는 금의 부모로부터 은의 자식이 태어나기도 하고, 또 그 와는 반대의 경우도 일어납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계급의 사람들도 서로 다른 계층으로부터 태어나기도 합니다.
플라톤
법률의 제정에 있어 각 정권은 자기 이익을 목적으로
단은 각 합니다. 법 제정을 마친 다음에는 권력자들에게 이익이 게나 보 될 뿐인 법을 통치받는 사람들에게 정의로운 것인 듯 공 하지 않 표합니다. 이를 위반하는 자들은 정당하지 못한 일을 한 자들로 취급하고 처벌합니다. 그러니 정의란 실은 더 강한 자 및 통치자의 이익이고, 복종하고 섬겨야 하는 을 바탕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해로운 것입니다.
소피스트
두려움 및 대담함과 관련해서는 용기가 바로 중용이다. 대담함이 지나친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고, 두려움이 지나치고 대담함이 모자란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의로운 일들을 행함으로써 정의로운 사람이 되며, 절제 있는 일들을 행함으로써 절제 있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일들을 행함으로써 용감한 사람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우리가 쾌락이 목적이라고 할 때, 이 말은 방탕한 자들의 쾌락이나 육체적인 쾌락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쾌락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에피쿠로스
빵과 물은 배고프고 갈증을 느끼는 사람에게 가장 큰 쾌락을 제공한다. 그러므 로 사치스럽지 않고 단순한 음식에 길들여지는 것은 우리에게 완전한 건강을 주 며, 우리가 생활하면서 꼭 필요한 것들에 주저하지 않게 해 준다. 또한 나중에 우리가 사치스러운 것들과 마주쳤을 때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에피쿠로스
욕망 중 어떤 것은 자연적인 동시에 필수적이며, 다른 것은 자연적이기는 하지만 필수적이지는 않고, 또 다른 것은 자연적이지도 않고 필수적이지도 않으며, 다만 헛된 생각에 의해 생겨난다. 욕망 중 그것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우 리를 고통으로 이끌지 않는 욕망은 필수적이지 않다.
에피쿠로스
너는 작가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된 그러한 인물인 연극에서의 배우라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가 짧기를 바란다면 그 연극은 짧고, 만 일 길기를 바란다면 그 연극은 길다. 만일 그가 너에게 거지의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면, 이 역할조차도 또한 능숙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가 절름발이를, 공직 관리를, 평범한 사람의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고 해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너에게 주어진 그 역할을 잘 연기하는 것, 이것이 해야만 하는 너의 일이다.
스토아학파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네가 바라는 대로 일어나기를 요구하지 말고, 오히려 일어나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기를 원해라.
그러면 모든 것이 잘되어 갈 것이다
스토아학파
쾌락이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일상의 예속과 정치의 예속으로부터 해방해야 한다.
에피쿠로스
행복이 더는 선할 수 없는, 가장 선한 것으로 구성된다면 우리는 이를 최고선이라고 부르 는데, 최고선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지닌 모든 선한 것들의 완전함, 그리고 우리의 완전한 선은 바로 신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사 랑해야 하는지 들었다.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추구해야만 할 것이며, 이것에 맞추어 우리의 모든 계획을 세워 나가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신은 내적인 스승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이 우리에게 그 자신을 이해하도록 하는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조명론을 제시하였다. 어떤 대상이 지각되기 전에 빛에 의해서 눈에 보여야 하는 것처 럼 학문적 진리도 정신에 의해 파악되기 전에 빛에 의해 인식 가능한 것으로 되어야 한다고 전제하였다. 그리고 태양이 사물을 보이게 만드는 물리적인 빛의 원천인 것처럼 신은 지성 적인 지식을 정신에 인식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정신적인 빛의 원천이라고 강조하였다. 즉 태양이 빛의 원천인 것처럼 신은 진리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절제란 자신을 완전히 신에 게 바치는 사랑이며, ‘용기’란 신 그 자체를 위하여 기꺼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사랑이며, 정의란 신에게만 헌신하는 사랑이며, 지혜’란 신을 지 향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랑이다.
아우구스티누스
믿음은 우리를 믿음의 대상인 신에게로 인도하며, 소망은 우리의 의지가 신을 지향하도 록 인도하고, 사랑은 우리의 의지가 신과 영적인 통일을 이루도록 인도한다.
아퀴나스
이성적 피조물은 영원한 이성 안에 참여한다. 이를 통해 이성적 피조물은 적절한 행동과 목적에 대한 자연적 성향을 지닌다. 이성적 피조물 안에서 영원법의 참여가 바로 자연법이다
아퀴나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섯 가지 길로 논증될 수 있다. 그중 첫째 길은 운동 변화에서 취해지는 길이다. 이 세계 안에는 어떤 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확 실하며, 또 그것은 감각적으로 확인되는 것이다. 그런데 움직여지는 모든 것 은 다른 것한테서 움직여져야 한다.
그런데 무한히 소급해 갈 수는 없다.
만일 움직이는 것의 무한한 소급이 인정된다면 어떤 처음 움직이는 자가 없게 될 것이며, 따라서 어떠한 다른 움직여 주는 자도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지팡이는 손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으면 다른 것을 움직여 주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어 떤 것한테도 움직여지지 않는 어떤 제1운동자에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모든 사람은 이런 존재를 신으 로 이해한다.
아퀴나스
나는 이제부터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거짓으로 보 아 던져 버림으로써 전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내 생각 속에 남아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 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실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1원리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 다고 판단했다.
데카르트
사물의 본성에는 어떤 것도 우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은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하게끔 신적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스피노자
신이 자연을 창조한 것이 아니다. 신이 곧 자연이다
스피노자